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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어로 자본주의 배우기 남한 학생보다 더 치열하게 공부”

박찬모 평양과학기술대 명예총장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영어로 자본주의 배우기 남한 학생보다 더 치열하게 공부”

“영어로 자본주의 배우기 남한 학생보다 더 치열하게 공부”
5월 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스승의 날’ 관련 행사에 참가한 박찬모(77) 북한 평양과학기술대학(이하 평양과기대) 명예총장은 여느 인사들과 달리 평양 학생들에 대한 소회를 밝혀 눈길을 끌었다. 학생들은 교수가 걸어가면 앞질러 가는 것도 어려워하고, 교수가 앞서가라고 하면 ‘생큐, 써(thank you, sir)’ ‘소리 써(sorry, sir)’라고 말한 뒤 걸어갈 만큼 교수를 존경한다는 것. 그 얘기를 들으니 북한 대학에서 일하는 박찬모 총장도, 영어로 수업을 받는다는 평양과기대 학생도 궁금해졌다.

평양과기대는 남북 첫 합작대학이자 북한 최초 사립대학이다. 고(故)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중국 발전을 목격한 뒤 북한 교육성 관계자들을 불러 중국-외국 첫 합작대학인 옌볜과학기술대(이하 옌볜과기대) 김진경 총장과의 협력을 지시하면서 설립됐다. 2003년 시작한 공사는 6년이 걸렸고, 2009년 9월 개교한 데 이어 이듬해 10월 첫 수업을 했다. 고 김일성 주석이 옌볜과기대 첫 졸업생이 성공적으로 중국 사회에 진출한 것을 보고, 김진경 옌볜과기대 총장에게 “북한에 옌볜과기대 같은 학교를 세워줄 수 없겠느냐”는 청을 하면서 평양과기대 설립이 추진됐지만 김 주석의 사망으로 난항을 겪었다.

평양과기대가 언론에 자세히 소개된 적은 거의 없다. 기자는 박 총장에게 “제자에게 평양과기대에서의 생활을 들려주는 것처럼 편한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해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6월 1일 서울 경복궁역 부근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놀랍게도 그는 제자와 함께 자리에 나왔고 손에는 평양과기대의 모습을 사진파일로 저장해놓은 USB와 아이패드가 들려 있었다. 그는 “사진을 보며 얘기를 나누자”고 말했다.

박 총장 자신도 이런 식의 인터뷰를 하리라곤 상상치 못했을 것이다. 과거 북한에서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안내원에게 제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위스에서 유학하며 외부 세계와 접촉한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이런 부분이 비교적 관대해졌다고 한다.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해 일상을 기록하는 박 총장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박 총장은 기자에게 학교 시설은 물론 학생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평양과기대에서의 생활을 들려줬다. 2시간가량 진행한 인터뷰는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고, 다른 사진으로 시선이 옮겨가면서 화제가 바뀌기도 했다. 노학자의 열정이 전해지는 시간이었다.



모두가 남학생…270명 재학

▼ 친북인사라는 얘기를 들으면서까지 평양과기대에 간 이유는 뭔가.

“1985년 독일에서 1년간 살면서 남북통일 전에 기술격차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미국 국적을 갖고 있어 평양과기대에서 일하는 것이 가능했다. 나는 ‘물고기를 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는 조언을 신봉한다. 북한체제를 추종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나는 포스텍(포항공대) 총장을 지낸 후 대통령선거(이하 대선) 때 이명박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고, 대선 이후 대통령과학기술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됐다. 2009년에는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3개 재단을 통합해 만든 ‘한국연구재단’ 초대 이사장도 지냈다.”

▼ 평양과기대 재학생은 얼마나 되나.

“평양과기대에는 학부생 200명과 대학원생 70명 등 총 270명이 재학 중이다. 올 하반기에 학부생 100명과 대학원생 30명이 더 입학한다. 학생은 모두 남학생이다. 여학생 기숙사를 짓지 못해 여학생을 선발하지 못하고 있다.”

▼ 학생 선발은 어떻게 하나.

“학부생은 김일성종합대, 김책공과대, 평양컴퓨터기술대, 원산경제대, 원산농업대, 함흥공업대 등 우수 학교를 2년 이상 다닌 학생 가운데 추천을 받아 선발한다. 한국에서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총 12년간 공부하는 데 비해 북한은 소학교 4년, 고등중학교 6년으로 총 10년을 공부하기 때문에 2년 정도 차이가 난다. 북한에서는 대학 졸업 후 6개월간 실습을 거쳐야 대학원(박사원)에 진학할 수 있으며 평양과기대도 동일한 자격을 요구한다.”

평양과기대에는 전자컴퓨터공학부, 국제금융 및 경영학부, 농생명과학부가 있다. 전자컴퓨터공학부 학생이 다수를 차지하고 농생명과학부 학생이 그다음으로 많다. 요즘에는 학생들이 돈에 관심이 많아 국제금융을 많이 공부하는 추세다. 박 총장은 “우리 학교가 북한에서 자본주의 경제에 대해 가르치는 유일한 대학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 북한은 자본주의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꺼리지 않나.

“전혀. 북한에서는 문호 개방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 김일성종합대 교수들이 주축이 돼 캐나다 UBC(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에 시장경제를 배우러 갔고, 북한 정부 관료와 경제 전문가가 싱가포르 소재 대학에서 경제정책 관련 연수를 받고 있다.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은 10년 전부터 중국에서 일하며 국제무역을 공부했다.”

▼ 평양과기대에서 어떤 과목을 가르치나.

“나는 2011년 봄에는 시스템시뮬레이션이라고 해서 연속체계, 이산체계 시뮬레이션을, 2011년 가을학기에는 가상현실을 가르쳤다. 다른 교수들은 4개월 동안 머물지만 나는 여러 일을 하는 터라 장기 체류가 어려워 2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지도한다.”

▼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바는 무엇인가.

“학생들에게 가능성 사고(possibility thinking)를 권한다. ‘늘 긍정적인 생각을 갖자’라는 말이 화두가 된 적이 있는데 가능성 사고는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포항공대에서도 강조한 것으로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국제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연구 분야에서도 국제적으로 공동연구를 추진해야 인정받는 추세다. 학생들을 가능한 한 많이 외국 유학이나 연수를 보내려 한다.”

▼ 평양과기대 학생들은 영어로 수업한다고 들었다. 어려운 점은 없나.

“평양과기대 입학 후 학부생은 1년, 대학원생은 6개월 동안 어학공부를 마친 뒤 전공과목을 공부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다. 국제화 역군을 키우기 위한 일환으로 수업을 영어로 진행한다.”

평양과기대 학생들은 특별대우를 받는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공개석상에서 “평양과기대를 국제적인 대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며 특별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2011년 6월부터 2012년 3월까지 평양 만수대지구 재개발과 주택 10만 호 건설을 위해 전국 대학생을 대부분 건설현장에 투입했다. 김일성종합대, 김책공과대 학생도 당연히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하지만 평양과기대 학생들은 국제대학이라는 이유로 이 일에서 제외됐다. “이 시기에 공부한 대학생은 평양과기대 학생들이 유일할 것”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영어로 자본주의 배우기 남한 학생보다 더 치열하게 공부”

평양과학기술대학 기숙사와 다목적 빌딩. 박찬모 총장이 가르치는 대학원생들. 뷔페식당에서 박 총장과 함께 식사하는 북한 학생들. 교내 체육대회에서 학생과 교수가 줄다리기와 팔씨름을 하는 모습. 평양과학기술대학을 방문한 스페인 공산당원들(왼쪽부터).

군대 면제·인터넷 사용 등 다양한 특혜

▼ 그 밖에 학생들에게 어떤 혜택을 주나.

“북한에서는 머리 좋은 학생은 군대 면제를 받는데 평양과기대 학생이 대부분 그렇다. 그리고 학비는 물론 숙식 등을 무료로 지원받고 용돈도 받는다. 학생들이 돈을 다른 곳에 쓸 수 있어 전자카드에 입금해준 뒤 학교 안에서만 쓸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으며, 뷔페식당에서 원하는 것을 마음껏 먹을 수도 있다. 우리 학생들이 평양사람들도 쉽게 먹지 못한다는 돼지고기를 실컷 먹는다는 소문이 돈다고 들었다.”

▼ 평양과기대 학생들은 인터넷을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나.

“대학원생만 과제와 연구를 하는 경우에 한해 사용할 수 있다. 현재 교내 인터넷실에는 컴퓨터 30여 대가 있는데 구글, 위키피디아 같은 웹사이트를 많이 활용한다. 아마도 평양과기대가 북한에서 유일하게 학생에게 인터넷 접속을 허용하는 곳일 것이다.”

▼ 학교 운영비는 누가 지원하나.

“한국에 있는 교회로부터 주로 지원을 받았는데 요즘에는 미국, 캐나다, 유럽 등지에 있는 교회로부터 지원받는다. 한국 정부의 지원은 거의 받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10억 원을 받은 것이 전부다. 현재로서는 학교 운영비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

▼ 학생들의 실력과 수업 태도는 어떤가.

“내가 포항공대 수재들을 가르쳐봤는데 북한 학생들도 남한 수재들 못지않다. 아니 오히려 더 열심히 한다. 서울대, KAIST(한국과학기술원) 학생도 이 정도로 공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학부생들이 대학원생을 우대한다. 장유유서 정신이 있어서 같은 교실 안에서도 앞자리는 대학원생들이 앉고 학부생들은 뒷자리에 앉는다. 밥을 먹을 때도 대학원생들은 교수와 함께 배식을 받지만 학부생들은 따로 줄을 선다. 학생들이 깍듯하다. 수업시간에도 넥타이를 매고 들어온다. 학생들이 매지 않고 들어와야 나도 푸는데, 그러질 않는다. 그런데 이번 봄학기에 넥타이를 안 매고 들어오는 학생이 한 명 생겼다.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이다.”

▼ 식사 때 교수와 학생은 함께 앉나.

“처음에는 학생들이 교수를 어려워하기도 하고, 교수와 함께 앉으면 밥을 편히 먹을 수 없어 따로 앉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교수와 학생이 자유롭게 어울리는 편이다. 영어권 교수들과 대화하면서 영어를 익힐 수도 있어 그런 것 같다.”

▼ 영어권 교수들이 많이 있을 것 같은데, 교수진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

“교수는 총 45명 정도로 그중 절반은 영어를 가르친다. 학생들이 영어를 익혀야 하기 때문에 영어 교수가 많이 필요하다. 교수 절반이 한국 출신 동포이고 나머지 절반은 미국,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중국, 프랑스, 독일 출신이다. 북한 교수는 학사 관계를 담당하고 강의는 하지 않는다. 교수는 대부분 1학기에서 1년 정도 머물며 가르치는데, 한 번 온 사람이 다시 오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소개하기도 한다. 학교 직원과 경비 중에도 여성이 있기 하지만, 그래도 여성 교수(15명)가 단연 인기다.”

▼ 교수들이 평양과기대에 자원한 이유는 뭔가.

“대부분 기독교 사랑을 바탕으로 자원봉사 차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교수들은 북한이 국제화하는 데 학생들이 초석을 다지는 소임을 맡길 바란다. 그래서 북한 미래가 이 학생들에게 달렸다는 마음으로 일한다. 교수들과 학생들의 노력이 더해지면 통일할 때 남북 간 기술격차, 경제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 교수들이 그곳에서 생활하는 것이 어렵지 않나.

“교수들은 안내원의 지도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주로 캠퍼스에서 생활하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밖으로 나가 외교관 상점이나 일반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때때로 햄버거 가게에서 외식도 한다. 교회에서 외국인과 교우관계를 맺기도 하며 국제학술대회를 준비하면서 자극을 받기도 한다.”

한국 국적 교수 방북 거절한 통일부

박 총장은 평양과기대가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 것에 주목해달라고 당부했다. 2011년 10월 초 ‘제1회 국제과학기술대회’를 진행했지만 그 과정이 순조롭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국제학술대회를 제안하자 북한 정부는 과학기술 분야의 국제학술대회를 열어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했던 것. 하지만 국제학술대회는 미국의 피터 아그리 노벨상 수상자와 영국의 데이비드 올턴 상원의원 등 세계적인 석학 30명이 참석해 성황리에 마쳤다. 박 총장은 “학술대회를 통해 평양과기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북한 학자들이 세계적인 석학과 인적 유대를 형성할 수 있어 기뻤다”는 소감을 밝혔다. 당시 북한 정부는 평양과기대에서 초청한 모든 인사들에게 비자를 발급해주며 적극 협조했다.

▼ 아쉬운 점은 없었나.

“통일부에 한국 국적을 가진 교수의 방북 허가를 요청했지만 ‘과학자들의 북한 입국을 허가하면 비정부기구(NGO) 관련 사람들에게까지 문을 열어야 하기 때문에 방북 허가를 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끝내 한국 국적의 교수들이 평양과기대에 오지 못해 아쉬웠다. 하지만 홍원기, 김대만 교수 등 한국에서 활동하지만 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은 올 수 있었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한국 국적을 가진 학자들도 방북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등 많은 나라가 과학외교를 펼치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남한 교수가 북한을 오간다면 남북한 모두 더 큰 과학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측 고위 인사도 이 제안을 환영한다.”

▼ 평양과기대가 남북관계 개선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리라 보나.

“평양과기대는 북한 심장부에 있다. 그만큼 한반도의 전쟁위협을 억제하고, 통일을 향한 교류협력의 터전이 될 것이다. 핵개발이나 해커 양성 등은 평양과기대와 무관하다. 평양과기대는 북한 유일의 국제 사립대학이자 세계가 주목하는 대학이다. 나는 북한 정부가 체제를 공고히 하려고 평양과기대를 이용하리라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평양과기대 인재들이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는 데 크게 공헌함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주간동아 2012.06.11 841호 (p24~27)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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