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1

2012.06.11

파업 방송사의 몰염치한 ‘기사 베끼기’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12-06-11 09: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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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업 방송사의 몰염치한 ‘기사 베끼기’

    ‘주간동아’ 기사(위)와 MBC TV ‘세상보기 시시각각’.

    10년 전인 2002년 3월, 기자는 당시 ‘주간동아’에 외국에서 수입해 국내에서 사육 중인 반달가슴곰(이하 반달곰)이 1169마리에 달하며, 그 곰이 모두 현행법상 천연기념물에 해당해 사육농가의 사유재산임에도 수출도, ‘처분’도 할 수 없어 자연사할 때까지 사료를 먹여야 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기막힌 실태를 최초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 한 해 전인 2001년 9월 국립환경연구원이 새끼 반달곰 4마리를 지리산에 방사(放飼)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그들의 동면 등 근황을 무시로 언론이 보도할 때였습니다. 더욱이 방사한 곰 역시 국내 곰 사육농장에서 가려 뽑은 개체였습니다. 당시 보도는 ‘국내엔 반달곰이 거의 없다’는 대다수 국민의 상식을 뒤집는 팩트(fact)를 발굴한 덕에 기자는 방송사 기자들로부터 곰 사육업자 연락처를 묻는 전화를 적잖이 받았습니다.

    이후 방송사들은 일제히 ‘주간동아’ 기사 내용과 똑같은 보도를 했고, 이는 수년간 ‘자체 발굴 뉴스’이자 ‘새로운 뉴스’로 둔갑해 ‘재탕’ ‘삼탕’됐습니다. 그러면서도 최초 보도 주체인 ‘주간동아’는 ‘그들만의 프로그램’에서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해당 방송사 중엔 공교롭게도 현재 장기파업 중인 방송사도 두 곳 끼어 있습니다.

    이후로도 기자는 비슷한 일을 ‘데자뷔’처럼 겪었고, 동료들 역시 많든 적든 유사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일부 방송사의 시사주간지(월간지) 취재 아이템 베끼기가 언론윤리를 해칠 만큼 심각하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습니다.

    기자는 최근 또 한 번 방송사의 몰염치를 경험했습니다. ‘주간동아’ 838호(5월 29일 발매)에 게재한 ‘마루타 알바, 생동성시험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하의 기사에 대한 MBC TV의 ‘베끼기’ 보도가 그것입니다. 기사 내용은 제약회사들이 복제의약품 판매 허가를 받기 전 시행하는 생체 내 실험인 생물학적동등성시험(생동성시험)에 수많은 젊은이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등록금과 급전을 충당하려 건강을 담보로 피험자로 참여하는데도 식품의약품안전청의 관리감독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를 접한 방송사 두 곳이 기자에게 구체적인 사례와 취재 협조를 부탁했고, 이후 방송은 예정대로 진행됐습니다. 그러나 그중 한 곳인 MBC 시사프로그램 ‘세상보기 시시각각’의 제작진은 ‘주간동아’ 기사를 카메라로 촬영하고 기자를 상대로 인터뷰까지 하고도 정작 방송(6월 5일)에선 해당 부분을 완전히 뺀 채 자체 발굴 보도로 ‘위장’했습니다. 직접 만난 담당 PD는 물론, 먼저 연락해왔던 작가조차 기자의 항의 문자메시지에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밤 9시 메인 뉴스 직후 방송하는, 비중 있다는 시사교양프로그램의 행태가 이 모양입니다.

    파업 방송사의 몰염치한 ‘기사 베끼기’
    이후 알게 됐지만, ‘세상보기 시시각각’은 이미 적지 않은 제작상 문제를 ‘양산’한 상태입니다. 최근 방송한 ‘인터넷 잔혹사(死)-신촌살인사건’ 편에서 인터넷 욕설 관련 화면을 조작한 의혹을 받고 있으며, ‘충격실태보고-외국인과 이성교제’ 편에선 외국인 남성을 한국 여성을 울리는 부도덕한 성범죄자로 모는 편파성까지 드러내 외국인의 공분을 샀더군요. ‘삶의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프로그램’을 표방하고도 제작진의 ‘시각(視覺)’조차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보기 시시각각’. 이게 과연 공영방송 MBC의 파업 대용 ‘작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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