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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잡는 찌질한 야구장

프로야구 700만 관중에도 야구 인프라는 제자리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선수 잡는 찌질한 야구장

선수 잡는 찌질한 야구장

기존 광주구장 바로 옆 종합경기장의 중앙 성화대를 제외한 철거공사가 끝나고 새 야구장 건설을 위한 터파기가 한창이다.

출범 31년째를 맞는 한국 프로야구는 올해 역대 페넌트레이스 최다관중인 700만 명을 바라본다. 4월 29일 역대 최소 경기(65경기) 만에 100만 관중을 돌파하는 등 프로야구 인기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국민스포츠’로 자리매김한 프로야구의 위상과 달리, 인프라는 30년 전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실정이다.

최근 ‘스포츠동아’는 시즌 개막을 앞두고 구단별로 5명씩 총 40명에게 야구장 시설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복수응답을 받은 결과 24명이 ‘원정팀 로커룸 부재’를 가장 큰 아쉬움으로 꼽았다. 서울 잠실구장을 비롯해 대부분 구장에 원정팀 로커룸이 없다. 선수들이 사람이 지나다니는 복도나 구단 버스에서 옷을 갈아입는 게 한국 프로야구의 현실이다.

선수들 “대구구장엔 가기 싫다”

외야펜스도 문제로 지적했다. 신인 시절 펜스에 부딪혀 크게 다친 한화 강동우는 “외야수에게 펜스는 정말 무서운 대상”이라며 “쿠션이 20cm 정도는 돼야 하는데 거의 모든 구장이 5cm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부상 위험 탓에 제대로 된 수비를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 선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내야 그라운드의 푸석푸석한 바닥이나 아직까지 남은 오래된 인조잔디 구장도 개선해야 할 점으로 꼽았다.

‘가장 꺼리는 구장’을 묻는 질문엔 대구구장이 22표로 가장 많은 표를 받았고, 그다음이 광주구장(17표)이었다. 대전과 청주 등 한화의 홈구장도 선수들이 꺼리는 곳으로 나타났다. 반면 선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구장은 SK 홈구장인 인천 문학구장. 문학구장은 현 프로야구 구장 중 가장 최근인 2002년 개장했다. 그러나 문학구장도 나머지 구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은 편일 뿐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 얼마 전 한화 정원석이 외야 수비를 하다 펜스에 부딪혀 손가락 골절을 당한 곳이 바로 문학구장이다.



야구장을 찾는 팬도 시설에 대한 불만이 많다. 트위터를 통해 ‘야구장에서 가장 불편하고, 가장 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할 시설이나 서비스는 무엇인가’라고 물은 결과, ‘불편한 좌석’을 꼽은 답변이 109개로 가장 많았다. 문학구장은 물론이고 그나마 시설이 괜찮다는 잠실구장과 부산 사직구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좌석 사이의 간격이 좁아 3시간 넘게 앉아 있으려면 무리가 따르고, 한가운데 앉은 사람이 경기 도중 일어나 이동하려면 옆쪽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불편을 겪어야 하는 사정을 토로했다. 각 구장이 수년전부터 공간이 넓은 테이블석을 만들었지만 그 수가 적은 데다 일반석에 비해 값이 비싸 다수 팬의 수요를 충족하기엔 무리가 있다.

화장실도 팬들의 불만 사항 중 하나다. 여성 야구팬이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상황에서 여자화장실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한 여성 팬은 “화장실에서 길게 줄을 선 채 DMB로 중계를 볼 때면 내가 왜 야구장에 와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야구장의 열악한 시설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광주구장과 대구구장은 프로야구 경기를 소화하는 것 자체가 버거울 정도로 시설이 열악하다. 다행히 광주시가 뒤늦게나마 신축구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구장 바로 옆에 신축구장이 들어서면 2014 시즌 개막전도 치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축 광주구장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저하게 관중 중심으로 설계한 점이다. 잠실 등 대부분 야구장이 남향으로 지어져 평일 오후 6시 30분 경기가 시작되면 관중은 햇빛에 눈이 부셔 그라운드를 제대로 바라보기 힘들다. 신축 광주구장은 동북동향으로 설계해 관중 편의를 최대한 고려했다. 전광판도 가로 33.3m, 세로 13.2m로 문학구장(14.7m×8.3m)의 2배가 넘는다. 지하에 1155대 규모의 주차장도 만든다. 총 2만2102석이며 외야 관중석은 모두 잔디밭으로 조성된다.

선수 잡는 찌질한 야구장

2011년 4월 두산과 삼성 경기가 열린 대구구장에서 8회에 갑자기 정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반면 대구구장 신축 일정은 여전히 안갯 속이다. 1948년 건립한 대구구장은 국내 야구장 중 가장 낙후한 시설임에도 대구시는 물론 홈팀인 삼성도 몇 년째 말만 내놓고 있다. 뒤늦게 터를 확보하고 4월에 대구시가 턴키방식(건설업체가 설계와 시공을 일괄 수행하는 방식)으로 신축구장 공개 입찰에 나섰지만 어느 기업도 참여하지 않았다. 대구시는 연말 착공을 계획하지만 대구구장 건립은 아직 ‘뜬구름 잡기’ 수준이다.

‘한국 야구의 메카’로 부르는 잠실구장은 서울시 횡포에 시달린다. 잠실구장의 ‘법적 주인’인 서울시가 올해 잠실구장을 통해 벌어들인 금액은 100억 원에 육박한다. 그러나 시설 개보수 등에 투자하는 돈은 수입의 20%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두산과 LG 관계자 사이에서 “재주는 곰(두산)과 쌍둥이(LG)가 부리고, 돈은 서울시가 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올 정도다.

서울시 잠실구장 이용 돈벌이

야구 인기가 높아지자 서울시는 올해부터 임대료를 크게 인상했다. 지난해 두 구단은 구장 임대료로 13억8600만 원을 냈지만, 올해부터 2년간은 매년 25억5800만 원을 낸다. 운동장을 전세냈음에도 광고권은 오히려 서울시가 갖고 있다. 서울시 조례, 공유재산관리법에 따라 시설과 광고가 분리된 탓이다. 지난해 두 구단에 위탁해 광고료로 24억4500만 원을 벌어들인 서울시는 올해부터 광고사용권 경쟁 입찰 방식을 적용해 이미 72억2000만 원을 챙겼다.

서울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 측은 임대료와 광고료의 상당 부분을 야구장 시설 개선에 쓰겠다고 공언하고, 이번 시즌 개막 전 조명타워 조도 개선 공사 등을 실시했다. 하지만 지난해 시설 개보수에 약 18억 원을 썼던 것에서 조금 늘어난 20억 원 안팎을 쓴다는 계획이다. 번 돈은 훨씬 많아졌는데, 쓰는 돈은 별반 차이가 없다. 서울시가 양 구단의 주머니를 털어 자기 주머니를 채운다는 인상을 준다.

700만 관중 시대를 넘어 1000만 관중 시대라는 원대한 꿈을 품은 한국 프로야구. 팬은 점점 늘어가고 야구 열기도 나날이 높아지지만 야구장의 불편한 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한국 프로야구의 슬픈 자화상이다. 언제쯤 선수들이 제대로 된 운동장에서 경기를 펼치고, 팬들은 쾌적한 환경에서 야구를 즐길 수 있을까.



주간동아 837호 (p58~59)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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