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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원자력계 부패…정전보다 무섭다

납품비리에 뇌물 커넥션까지 한국수력원자력 날개 없이 추락

  •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원자력계 부패…정전보다 무섭다

부산 기장군 고리를 비롯한 지방 원자력본부에서 일어난 연이은 사건으로 한국 원자력계가 끝 모를 추락을 하고 있다. 5월 4일 140만kW급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 두 기를 짓는 신울진 1·2호기 기공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일어난 고리원전의 정전 은폐나 납품비리 사건은 국민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라며 “철저히 조사해 책임을 묻고 제도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덕담을 해야 하는 날 일침을 가한 것이다.

작금의 원자력본부 위기는 내부에서 비롯한 것이다. 중추적 소임을 담당해야 할 중견 직원들이 규칙을 무시했고, 업자와 결탁해 뇌물을 받는 등 조직적으로 부정을 저질렀다. 공교롭게도 부정은 주민투표로 경주 방폐장 건설을 확정하고 아랍에미리트(UAE)와 원자력발전소 계약을 성사한 시기에 시작됐다. 샴페인을 터뜨리는 순간 한국 원자력계의 허리춤에 종양이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발전을 거듭해온 한국 원자력계는 왜 부패하게 됐는가. 이 사건이 터져 나온 과정을 추적하면서 그 답을 찾아보기로 한다.

고구마 줄기처럼 뽑혀 나오는 고리원자력본부의 부정은 한 시민의 ‘건강한’ 신고가 실마리가 됐다. 음식물쓰레기용기 유통업을 하는 이 시민은 지난해 9월 한 은행 지점에 갔다가 한 남성이 음료수 박스에 거액의 현금(5000만 원)을 담아 자동차에 싣는 모습을 봤다. 뇌물이라고 직감한 그는 차량번호를 기억해 울산지방검찰청(이하 울산지검)에 제보했다. 그 즉시 울산지검은 차주를 확인하고 은행 지점의 CCTV 등을 통해 제보자가 목격한 시각에 5000만 원을 인출한 사람을 찾아냈다. 그는 고리원자력본부의 납품업자였다.

노후 부품 신제품으로 둔갑시켜

네 기의 원전이 있는 고리원자력본부는 두 기씩 묶어 1·2호기는 1발전소, 3·4호기는 2발전소로 나눠놓았다. 울산지검은 납품업자가 고리 2발전소의 부품구매 담당 신모 과장과 자주 통화한 사실을 파악하고, 신고자의 제보가 있은 직후 신 과장의 계좌에 5000만 원이 입금된 것을 확인했다. 그 계좌에는 다른 수상한 거래도 있었다. 울산지검이 신 과장을 불러 추궁하자, 신 과장은 발전소 정비장에 방치된 터빈밸브작동기(이하 작동기) 부품인 ‘매니폴더’를 H사에 빼돌린 사실을 시인했다.



H사는 중고(中古)인 이 매니폴더의 녹을 벗기고 페인트를 칠해 신제품으로 둔갑시켰다. 그리고 이를 넣은 작동기를 만들어 고리 2발전소에 납품했다. 이 작동기는 2발전소 검사를 통과해 사용됐다. 이러한 사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울산지검은 발전 장비를 전문으로 정비하는 한전케이피에스(KPS) 직원 이모 씨가 개입한 사실을 확인했다. 심 과장 등의 부탁을 받은 이씨는 주말에 H사를 찾아가 작동기에 넣을 수 있도록 중고 매니폴더를 수선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 H사는 이런 방법으로 제작한 작동기를 7차례 고리 2발전소에 납품하고 약 32억 원을 받았다.

H사 대표 황모 씨가 신 과장에게 건넨 돈은 모두 3억3500여만 원이다. 이에 대해 신 과장은 납품가의 1% 정도인 3500만 원은 뇌물임을 인정했으나 3억 원은 황씨에게 빌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울산지검은 신 과장의 상사인 김모 팀장의 계좌에도 부정한 돈이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구속했다. 그리고 수사 대상을 확대하자, 검찰 소환 통보를 받은 직원 지모 씨가 자살했다. 지난해 12월경 고리 2발전소는 검찰 수사로 초토화됐다.

그러나 지방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간주해 중앙에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그때는 누구도 이것이 한국 원자력계를 침몰시킬지도 모를 ‘쓰나미’의 1파라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올해 2월 9일, 정기 점검을 받던 고리 1발전소 1호기에서 모든 전기가 나가는 사고가 일어났다. 천만다행으로 핵연료가 없었기 때문에 원자로가 과열되지는 않았지만, 고리원자력본부 측은 이 사고를 은폐했다가 나중에 김수근 부산시의원의 문제제기로 공개했다. 중고 부품 비리 수사로 몸살을 앓던 고리원자력본부는 이로써 직격탄을 맞은 듯 어수선해졌다. 이 쓰나미 2파로 김종신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사장이 낙마했다.

그러다 김수근 의원과 고리원자력본부 간 커넥션이 밝혀지면서 3차 쓰나미가 몰아쳤다. 김 의원은 “2월 20일 식당에서 우연히 들은 노무자들의 대화에서 고리 1호기에서 정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고리 1호기 완전 정전은 일반 노무자들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김 의원의 말에 의문을 제기했다.

정전사고 은폐 파문 일파만파

원자력계 부패…정전보다 무섭다

2011년 4월 15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한수원 고리본부 시찰식에 참석한 김종신 한수원 사장이 수명 연장에 들어간 1호기의 고장 원인에 대해 난감한 표정으로 답변하고 있다.

고리원자력본부가 있는 부산시 기장군에는 오규석 기장군수가 위원장을 맡고 김 의원도 위원으로 참여한 ‘고리원전민간환경감시기구’(이하 감시기구)가 있다. 4월 30일 이 감시기구가 김 의원과 관련한 중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감시기구는 “김 의원의 부인이 운영하는 G사가 지난 6년간 고리원전에 50여억 원의 물품을 납품해왔다. 그런데 초기 4년간은 수의계약으로 물품을 납품했다. 김수근 위원은 감시기구 회의에 두 번밖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발표한 것. 이 발표가 있자 김 의원은 바로 감시기구 위원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김 의원의 부인이 고리원자력본부와 가까웠다는 사실은 김 의원이 외부인이 알기 어려운 고리 1호기의 정전을 안 것과 관련해 새로운 의혹을 낳을 수 있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H사는 목장갑 등 소모품을 구입해 고리원자력본부에 공급하는 단순한 회사라 내 아내는 원전 정전 같은 일은 알 수가 없다. 나는 노무자들의 대화를 듣고 이상하다 싶어 전화를 해 진실을 알았다. H사는 일부 수의계약을 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경쟁을 요구하는 전자입찰로 낙찰받았다”고 대답했다.

김 의원과 고리원자력본부의 관계가 밝혀짐으로써 고리원자력본부는 또 한 번 쓰나미를 맞았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울산지검이 중고 부품을 수사하던 지난해 12월 부산경찰청이 흥미로운 수사 결과를 공개했다. 중고 부품을 이용해 가짜 신품을 제작한 H사가 거꾸로 당한 경우였다.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원전 부품 국산화부터 살펴봐야 한다. 원전 부품은 한수원과 전문 업체가 공동 개발하는 경우, 그리고 전문 업체가 단독 개발하는 경우가 있다. 대세는 공동 개발이다. 2011년 34건의 개발 가운데 단독 개발은 3건에 그친다. 하지만 단독 개발에 성공해 국산화 업체로 지정된 곳은 3년간 한수원과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어 대박을 터뜨리는 셈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전문 업체들은 반칙을 한다. 국산화를 가장 쉽게 하는 방법은 수입한 부품의 설계도를 구해 똑같이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는 수입한 부품을 뜯어보고 모방 제작하는 것인데, 이는 모두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불법 행위다. 따라서 전문 업체들은 한수원 직원과 몰래 접촉해 금품을 주고 매뉴얼이나 수입 부품을 제공받고자 한다. H사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작동기를 개발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아무튼 H사는 작동기를 국산화하고 특허등록까지 마쳤다. 이 때문에 3년이라는 수의계약 기간을 넘기고도 계속 이 제품을 납품할 수 있었다.

정비를 담당하는 원전 직원들은 이 작동기 설계도를 갖고 있다. 4월 중순 고리 2발전소 이모 직원이 ‘다음 인사에서 도움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이 설계도를 다른 전문 업체 간부인 조모 씨에게 제공했다. 조씨는 이 설계도를 토대로 제품을 만들어 45억 원에 응찰했으나, 이 입찰은 조씨 회사만 참여한 관계로 자동 유찰됐다. 다시 열린 2차 입찰에는 3개 업체가 도전했는데, 조씨 회사는 H사의 도면을 도용한 것이 밝혀져 실격되고 H사가 68억 원에 낙찰받았다. 부산경찰청은 원전 부품 국산화를 한 H사 설계도가 누출된 사실을 수사한 것이다.

원자력계 부패…정전보다 무섭다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원전에 대한 정기점검이 3월 7일 고리원전 1호기에서 열렸다. 안전팀과 주재원들이 원전1호기 주제어실을 둘러보고 있다.

수의계약 대가로 돈 건네

이때부터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한 것이 ‘3년간 수의계약을 해준 국산화 부품이 짝퉁이 아니었는가’라는 의문이었다. 원전용 부품은 한수원 본사가 구매해 원자력본부로 내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각 원자력본부가 바로 구매한다. 월성원자력본부를 제외한 한국 원전은 전부 경수로라서 동일한 부품을 쓰는 경우가 많다. 한 원자력본부에서 국산화 부품 개발을 인정받은 전문 업체는 다른 원자력본부에도 3년간 수의계약으로 단독 납품할 수 있다. 그러니 전문 업체들은 결사적으로 원자력본부의 설비·정비 담당자들을 매수하려 든다.

중고 부품 비리를 수사하려고 고리 2발전소 직원들의 계좌를 뒤지던 울산지검은 여러 명의 계좌에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또 다른 자금을 발견해 추적했다. 송금처는 ‘밀봉유닛’이라는 부품을 국산화해 3년간 수의계약으로 지방 원자력본부에 납품한 M사로 확인됐다. 밀봉유닛은 원자로 내부를 검사할 때 쓰는 장비다. 원자로 안은 압력이 높아 검사를 위해 관을 넣을 경우 그 관을 타고 원자로 안의 물질이 빠져나온다. 이를 막으면서 검사하려면 강한 압력을 막아내는 밀봉유닛을 써야 한다. 밀봉유닛은 세계 1위 원전 기업인 프랑스 아레바가 제작한다.

그런데 수입한 이 밀봉유닛을 고리 2발전소 직원 몇 명이 몰래 M사에 건넸다고 한다. 그때 이들이 악용한 것이 국산품을 개발하려는 전문 업체를 도와주려고 만든 ‘현장기술개발과제’라는 제도였다. 밀봉유닛을 제공받은 M사는 개발에 성공해 고리 2발전소 검사에 합격했다. 그 덕에 고리는 물론이고 영광원자력본부에도 부품을 납품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M사는 거래대금의 2~3%에 해당하는 금액을 정기적으로 구매 담당자에게 제공했다.

이러한 금품 제공은 울산지검의 중고 부품 비리 수사로 고리 2발전소 직원 지모 씨가 자살한 이후에도 계속됐다. 울산지검은 고리와 영광에서 밀봉유닛 건으로 돈을 받은 한수원 직원을 줄줄이 구속 기소했다. 밀봉유닛이 불법으로 국산화된 사실이 밝혀지자 아레바 측이 관심을 보였다. 아레바는 UAE 경쟁에서 한국에 패한 바 있으니 짝퉁 국산품을 소재로 지적재산권을 침해당했다고 소송을 걸면 한국으로선 난처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아레바 한국 지사의 한 임원은 “그 사건에 대해 본사 차원에서 결정한 방침은 아직 없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과거에도 한국은 우리 회사 부품을 모방해 짝퉁 국산품을 만든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한-프랑스 관계와 아레바-한수원 관계를 고려해 그냥 넘어갔는데, 이번에도 그럴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직 내 비리 척결 최우선 과제

아레바가 소송을 걸지 않는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절대 공짜는 아니다. 관계자들은 “소송을 걸지 않는 대신 밀봉유닛을 비롯해 아레바가 생산하는 주요 부품을 한수원이 몇 년간 구입해주는 조건을 제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요구를 받아들이면 전문 업체들의 원전 부품 국산화 완료 시기는 그만큼 늦춰진다. 짝퉁 국산화가 진정한 국산화까지 막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이 4파 쓰나미로 고리원자력본부는 풍비박산났다. 그런데도 해일은 물러나지 않았다. 고리 등 지방 원자력본부를 삼킨 쓰나미는 본사로 방향을 틀었다.

울산지검은 고리원자력본부 등에 뇌물을 주고 부품을 공급한 전문 업체들의 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 회사들이 송이사업을 하는 윤모 씨에게도 거액을 제공한 사실을 포착했다. 윤씨는 경찰 치안감 출신으로 2008년 7월까지 한수원에서 감사를 한 조모 씨의 오랜 지기다. 감사 시절 조씨는 한수원 임원과 식사하는 자리에 자주 윤씨를 참석시켜 인사하게 했다. 울산지검은 이런 방법으로 한수원 간부들과 관계를 튼 윤씨가 특정 직원의 진급을 위해 로비를 벌인 것으로 본다.

즉 지방 원자력본부 직원들이 특정 전문 업체를 봐주는 대신, 인사를 부탁하면 전문 업체들은 윤씨와 다른 거래를 하는 형식으로 돈을 주면서 특정 직원을 진급시키는 로비를 했다고 보는 것이다. 중고 부품과 완전 정전 은폐, 짝퉁 국산품 사건은 지방 원자력본부 차원의 일이지만 인사는 본사 차원의 일이다. 검찰이 입수한 윤씨 자료 중에는 특정 직원을 어디로 진급시킨다는 내용이 적혀 있지 않았다. 일부 직원들은 윤씨 메모대로 진급이 됐으나 일부 직원은 진급하지 못했다.

전문 업체의 부탁을 받은 윤씨가 한수원 간부들에게 로비해 특정인을 진급시켰는지를 밝히려면, 윤씨를 한수원 간부에게 소개한 조씨의 진술, 그리고 윤씨와 전문 업체 사이의 돈거래 성격이 규명돼야 한다. 그러나 조씨는 입을 다물고, 윤씨는 사실을 부정해 수사는 답보 상태다. 윤씨 로비가 사실로 밝혀지면 한수원은 전체가 복마전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눈 밝은 시민의 제보가 고구마 줄기처럼 연결된 한국 원자력계의 치부를 태양 아래 드러냈다. 이러한 비리가 한국 원전의 발상지 고리에서 터져 나왔다는 것은 원자력계의 굴욕이다.

원자력계의 한 원로는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샐 수밖에 없다. 새로 한수원 사장에 임명된 사람은 대대적인 감사로 비리를 도려낸 후 조직을 추슬러야 한다. 그래야 세계 원자력 시장을 개척해나가는 힘도 얻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간동아 837호 (p34~37)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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