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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셜록 홈스’만 한 탐정이 어딨니?

시대 넘어 ‘절대악’에 맞서는 영원한 영웅… 영화와 드라마로 계속 불러내

  • 위근우 텐아시아 기자 eight@10asia.co.kr

‘셜록 홈스’만 한 탐정이 어딨니?

‘셜록 홈스’만 한 탐정이 어딨니?
왜 또 셜록 홈스인가. 영국 BBC 드라마 ‘셜록(Sherlock)’ 시즌2는 방송하자마자 국내의 영국 드라마 팬과 장르물 팬, 그리고 수많은 셜로키언(sherlockian)에 의해 퍼져 나가며 팬덤을 형성했다. 심지어 KBS는 영국에서 방송이 끝나자마자 2월 3, 4, 5일 이 시리즈를 연속 방송하기로 결정했다. 얼마 전 극장을 통해 소개된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 역시 이 시대 홈스 캐릭터의 인기를 방증한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왜 또 셜록인가.

이에 대한 대답 찾기는 추측보다 논리적 추론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홈스의 추리와도 비슷한 과정이다. 답을 명확하게 얻으려면 질문 역시 명확하게 만들어야 한다. ‘왜 홈스여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홈스가 가진 추리력, 탐정의 대명사로서 갖는 위상과 역사, 냉정한 이성만큼이나 차가운 감성,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오직 흥미로운 수수께끼만 쫓는 자유로운 태도 같은 특징을 나열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홈스의 매력인 건 사실이지만 그를 단 하나의 존재, 유일무이한 ‘The’ 셜록 홈스로 만들어주는 요소는 아니다. 그래서 질문은 다시 수정해야 한다. 왜 에드거 앨런 포의 뒤팽이 아니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에르큘 포와로가 아니며, 엘러리 퀸의 드루리 레인이 아닌가.

코난 도일은 ‘분홍색 연구’에서 셜록의 입을 빌려 탐정 캐릭터의 원조라 할 오귀스트 뒤팽을 애써 무시하지만, 이야기의 화자가 돼줄 남자 동거인의 존재, 파이프를 이용한 끽연, 뛰어난 지적 능력에 비해 감정이 메마른 듯한 성격, 경찰을 조롱하는 수사 자문 구실, 속세를 떠난 보헤미안적 성격은 이미 뒤팽을 통해 선취된 것이다. 포와로의 결벽증, 레인의 청각장애 역시 수수께끼가 없으면 약물에 의지하는 홈스의 성격적 결함만큼이나 흥미로운 핸디캡이다.

가상의 탐정 캐릭터 중 누구의 지적 능력이 더 뛰어난지 따지는 일은 무의미한 짓이지만, 굳이 비교하더라도 여러 용의자의 진술에서 모순을 찾아내고 심리적으로 파고드는 포와로의 수사가 홈스 특유의 관찰력과 귀납적 추론에 따른 수사보다 못하다고는 할 수 없다. ‘춤추는 사람 그림’에서 보여주는 홈스의 암호해독 방식은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황금벌레’에서 나오는 그것과 거의 같다. 여기서 질문은 다시 바뀐다. 그렇다면 셜록은 무엇이 다른가.

‘모리아티’ 창조한 도일의 천재성



‘셜록 홈스’만 한 탐정이 어딨니?

19세가 배경인 셜록 홈스 시리즈를 21세기로 옮겨온 영국 BBC 드라마 ‘셜록’. 정장을 차려입은 주인공 홈스(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왼쪽)와 왓슨(마틴 프리먼 분)은 영국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다(왼쪽 사진). 2009년 개봉한 영화 ‘셜록 홈즈’의 홈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오른쪽)와 왓슨(주드 로 분). 지난해에는 속편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이 개봉해 전 세계적으로 높은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물론 여러 탐정 시리즈 중 가장 압도적인 분량, 그리고 그 세계관에 매료된 ‘셜로키언’이라는 강력한 팬덤이 있다. 하지만 마니아에 가까운 이들 팬층만으로는 오히려 드라마와 영화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홈스 캐릭터가 계속해서 소비되는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지금 이 시대에 그를 다시 불러낸 ‘셜록’과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은 그래서 이 수수께끼에 대한 일종의 단서 구실을 한다. 다른 탐정들에게는 없으나 홈스에겐 있으며 최근의 홈스 이야기에서 반복되는 모티프는 단 하나, 모리아티뿐이다. 모든 탐정은 범죄자, 그것도 제법 영리한 범죄자를 상대한다. 하지만 ‘범죄계의 나폴레옹’이라 불리는 극악한 천재이자 호적수를 가진 탐정은 오직 홈스뿐이다. 그리고 BBC의 ‘셜록’과 영화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은 모두 원작과 전혀 다른 설정 및 트릭 안에서도 홈스와 모리아티의 대결에 방점을 찍는다.

이렇게 보면 코난 도일의 천재성은 셜록보다 모리아티의 창조에 있다. 셜록은 탐정의 대명사일지언정 원조는 아니다. 하지만 슈퍼 악당의 원조는 모리아티다. 자신의 상대가 세상을 범죄로 물들이는 슈퍼 악당이 될 때, 셜록은 다른 탐정 캐릭터와는 다른 슈퍼히어로의 자격을 얻는다. 아무리 수많은 사건에서 진실을 찾고 정의를 구현한다 해도 한 명의 탐정이 개별 사건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모든 범죄를 사주하는 절대악을 제거한다면 탐정은 악에 대한 정의의 상징적 승리를 구가할 수 있다.

드라마 ‘셜록’의 모리아티는 시즌2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셜록을 향해 “넌 내가 필요하잖아.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지”라고 말한다. 이 말에는 분명 일말의 진실이 들어 있다. 영화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배트맨을 향해 “네가 날 완전하게 만든다”고 했지만, 오히려 영웅을 완성하는 건 절대악과의 싸움이다. 코난 도일의 ‘마지막 사건’은 목숨을 걸고 모리아티와 함께 폭포에 뛰어든 홈스의 이야기를 전한다. 비록 이후 작품에서 작가는 셜록을 부활시키지만, 수수께끼를 푸는 즐거움 외에는 인간사에 무심한 홈스가 추리가 아닌 육탄전을 하면서까지 목숨을 걸고 악당을 제거하는 결말은 그에게 슈퍼히어로, 그리고 정의를 위한 순교자의 오라를 부여한다.

인간의 옳은 선택 그 욕망 투영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이 세계대전을 계획하는 수준으로 모리아티의 악행을 원작보다 훨씬 거대하게 확장하고, ‘셜록’ 시즌2가 모리아티가 만든 게임 안에서 게임의 승리와 윤리적 선택 사이에 선 셜록의 내면에 파고드는 것은 영웅과 순교자인 셜록의 정체성에 대한 흥미로운 두 갈래 길이다. 전자의 경우 셜록은 유럽을 종횡무진하며 모리아티의 음모를 막아내 세계를 구한다. 셜록 홈스를 액션 활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셜로키언들은 불만을 가질지 모르지만, 액션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탐정은 오직 홈스뿐이다.

그에 반해 ‘셜록’ 시즌2의 홈스는 그동안의 업적을 부정하고 자살해야만 친구 셋을 구할 수 있는 선택의 기로에서, 몰락한 영웅이 되더라도 왓슨의 목숨을 구하는 길을 택한다. 특히 그는 자살할 경우 친구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자신이 그동안 사기를 쳤고 그게 밝혀져 자살하노라 거짓말을 한다. 여기에 세계를 구하는 슈퍼히어로의 거대한 업적은 없다.

그 대신 오직 이성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만 아는 듯하던 그가 모리아티를 상대로 한 승리 대신 윤리적 길을 택할 때, 오히려 역설적으로 ‘선’이라는 가치가 증명된다. 감정 없는 탐정은 좋은 머리로 악당을 잡을 수 있지만, 그가 진실로 선과 정의를 수호하거나 믿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드라마 속 셜록은 순교적 죽음으로서 그 가치를 증명해낸다. 이것은 슈퍼히어로와는 또 다른 지점에서 영웅적이다.

과연 원작의 홈스는 재탄생한 자신의 모습 가운데 어느 것을 더 마음에 들어 할까. 이 마지막 수수께끼의 답은 알 수 없다. 다만 말할 수 있는 건 우리가 이 세상의 수많은 범죄와 악을 합리적 이성으로서 해결하는 누군가를 요청한다면, 어떤 진퇴양난의 순간에서도 인간은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싶다면, 그 욕망을 투영할 수 있는 원형적 캐릭터를 불러내고 싶어진다면, 셜록 홈스는 언제나 그 시대에 가장 걸맞은 이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주간동아 2012.02.06 823호 (p56~57)

위근우 텐아시아 기자 eight@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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