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3

2012.02.06

미국 소비자 잡지 ‘컨슈머리포트’ 오직 소비자…샘플도 안 받는다

77년 역사의 미국 10대 간행물… 기업 광고 없이 구독료로 운영 신뢰 구축

  • 미국 오스틴=최은정 통신원 islet103@gmail.com

    입력2012-02-06 1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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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소비자 잡지 ‘컨슈머리포트’ 오직 소비자…샘플도 안 받는다
    우리나라에 앞서 소비자 주권 강화에 노력해온 선진국은 소비자에게 제품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을 수십 년에 걸쳐 지속해왔다.

    미국의 ‘컨슈머리포트’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사례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한국판 컨슈머리포트’가 어떤 과정과 노력을 통해 소비자 권리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미국의 대형 전자기기 판매점 ‘베스트 바이(Best Buy)’의 영업 직원 스캇 케이튼은 “텔레비전, 노트북, 카메라 등 고가의 전자제품을 구매하러 오는 고객은 대부분 사전에 ‘컨슈머리포트’를 참고한다”고 말했다. 또한 “‘컨슈머리포트’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제품을 보려고 일부러 매장에 들르는 사람도 있다”며 “젊은 고객은 유튜브에 올라오는 ‘컨슈머리포트’ 동영상을 많이 찾아본다”고 덧붙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베스트 바이 직원들은 ‘컨슈머리포트’ 상위 목록에 있는 제품을 줄줄 외울 정도다.

    ‘컨슈머리포트’는 미국 소비자연맹이 발간하는 비영리 월간 잡지다. 1936년 첫 호를 발행한 이래 소비자를 위한 제품 정보통 구실을 충실히 해왔다. ‘컨슈머리포트’는 2005년 ‘70년사 회고록’을 통해 “우리의 사명은 오로지 소비자 권익 증진에 있으며 이를 위해 독립성을 지켜왔다”고 밝혔다. 실제로 ‘컨슈머리포트’는 소비자에게 공평하고 신뢰성 있는 정보를 제공하려고 기업으로부터 무료 샘플이나 광고비를 전혀 받지 않으며, 150명의 익명 구매자와 기술자의 공조하에 제품을 입수하고 평가한다. 객관성과 정직을 철칙으로 하는 ‘컨슈머리포트’는 미국 10대 정기간행물로 꼽힌다.

    미국 소비자 사이에서 ‘컨슈머리포트’는 ‘무엇을 사야 할지’, 더 넓게는 ‘어떤 물건이 시장에 나와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다. ‘컨슈머리포트’에서 소개하는 제품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선별, 평가되는 것일까.



    시험실과 설문 조사 규모 세계 최대

    1936년부터 지금까지 15만5000여 개 제품이 ‘컨슈머리포트’의 시험대에 올랐다. 600명이 넘는 직원이 뉴욕 주에 있는 50개 시험실과 코네티컷 주 이스트해덤에 있는 오토 테스트 센터에서 제품을 시험한다. 뉴욕 용커스에 자리한 시험실은 비영리 소비자 제품 검사기관 중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검사 대상 제품은 철저하게 소비자 수요를 바탕으로 선별한다.

    가전제품의 경우 25명의 전문 정보원이 가격대와 기술, 시장 점유율, 시장 전략, 광고 등의 자료를 분석해 특정 시장을 대표하는 모델을 추린다. 선정한 제품이 잡지 발행 후 세 달 이상 시장에 남아 있을지도 고려 대상이다. 애널리스트의 최종 확인을 거친 제품 목록이 기술팀에 전달되면 본격적인 검사에 들어간다.

    ‘컨슈머리포트’의 연구진 100여 명이 가전제품, 자동차, 식료품, 아기용품 등 다양한 제품군을 시험한다. 제품 시험 과정에는 최첨단 장치를 동원하며, 필요에 따라 새로운 장치를 직접 고안하기도 한다. 제품 시험은 정부가 정한 기준을 바탕으로 하되, 연구진이 자체 개발한 단계를 추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종 결과가 시험실에서 산출되는 것은 아니다. 설문 조사를 병행하기 때문이다. ‘컨슈머리포트’는 매년 구독자를 대상으로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의견을 설문 조사해 제품 신뢰도 리포트를 작성한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 중 세계 최대 규모다. 설문 조사에 응답하는 사람 수가 미국 인구조사 다음으로 많다.

    미국 소비자 잡지 ‘컨슈머리포트’ 오직 소비자…샘플도 안 받는다

    ‘컨슈머리포트’가 선정한 2011년 ‘최고의 소형차’ 현대 아반떼.

    소비자의 ‘컨슈머리포트’ 활용도는 자동차 등 고가 제품을 구매할 때 특히 높게 나타난다. ‘컨슈머리포트’의 냉정한 평가는 2010년 미국인이 선호하는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인 도요타 렉서스에 큰 타격을 입힌 바 있다. 당시 ‘컨슈머리포트’ 오토 테스트 센터에서 제출한 평가서에 따르면 렉서스 GX 460 SUV 모델은 안전상의 이유로 가차 없이 ‘구매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급커브를 돌 때 전자 차체 제어 시스템(Electronic Stability Control)이 발동하기도 전에 차체 뒤쪽이 심하게 돌아 전복 위험성이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도요타는 재빨리 해당 모델을 리콜하고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했다. 이후 ‘컨슈머리포트’는 재시험을 거쳐 ‘구매 부적합’ 평가를 철회했다. 당시 도요타 대변인 빌 퀑은 “‘컨슈머리포트’가 문제를 일깨워줬고, 우리는 문제를 해결했다”고 발표했다.

    한편 ‘컨슈머리포트’는 2011년 ‘최고의 소형차(Best Small Car)’로 현대 아반떼(미국명 엘란트라) 2011년 모델을 선정했다. 아반떼는 세련된 외관과 안전성, 그리고 훌륭한 연비를 갖췄다는 호평을 받았다.

    2012년 1월 별책으로 발간한 ‘컨슈머리포트 구매 가이드(Consumer Reports Buying Guide)’는 자동차 준럭셔리(Sedans : Upscale) 부문 최우수 모델로 현대 제네시스 3.8을 선정했다. 총점 92점으로 동일 부문 렉서스 ES 350보다 1점, 도요타 아발론 리미티드보다 6점 높다. 현대 그랜저(미국명 아제라)는 같은 부문에서 81점을 받아 7위에 올랐다.

    아반떼 ‘2011 최고의 소형차’

    미국 소비자 잡지 ‘컨슈머리포트’ 오직 소비자…샘플도 안 받는다

    ‘컨슈머리포트’ 구매 가이드에서 준럭셔리 부문 최우수 모델로 선정된 현대 제네시스.

    ‘컨슈머리포트’는 기업이 평가 결과를 광고로 활용하는 것을 철저히 금한다. 자칫 기업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고 소비자가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컨슈머리포트’에 ‘추천 상품’으로 소개되는 것만으로도 큰 광고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소비자의 생각이다. 지난해 8월 아반떼를 구입한 폴 샌더스(42)는 “현재 나와 있는 소형 세단의 가격대와 연비를 따진 후 선택의 폭을 좁혔다”며 “‘컨슈머리포트’에서 실시한 주행 실험과 설문 조사 결과가 최종 선택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현재 ‘컨슈머리포트’ 구독자 수는 800만 명이 넘는다. 그중 절반은 ‘컨슈머리포트’ 인터넷 잡지를 구독하려고 매년 24달러를 낸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인터넷 유료 회원보다 세 배 정도 많다. ‘컨슈머리포트’의 인터넷 공간을 적극 활용하는 소비자도 크게 늘었다. ‘컨슈머리포트’ 웹사이트의 ‘커뮤니티’ 섹션에는 소비자가 직접 금융 서비스에서부터 식품 안전에 이르까지 다양한 주제에 관한 의견을 올려놓는다. ‘자동차 정비 포럼’에서는 자동차에 대한 기술 문제나 의문 사항을 주제로 소비자가 열띤 토론을 벌인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이용해 ‘컨슈머리포트’와 소비자가 함께 기업에 더 안전하고 나은 서비스를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컨슈머리포트’의 유료 정책이 젊은 구독자층 확대를 막는다는 지적도 있다. 대학원생인 첼시 라이트(25)는 “제품에 대한 리뷰를 무료로 제공하는 사이트도 많아서 굳이 돈을 내고 정보를 열람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매튜 레밍턴(30)은 “부모님이 ‘컨슈머리포트’를 우편으로 받아본다”며 “‘컨슈머리포트’의 내용을 신뢰하지만 무료 사이트를 더 자주 이용한다”고 밝혔다.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평가를 시행하려고 광고에 의존하지 않는 ‘컨슈머리포트’ 정책상 구독료 유지는 불가피해 보인다. 기업이 아닌 소비자가 제공하는 구독료에 의지해 소비자를 위한 질 좋은 제품 가이드북을 출판하겠다는 것이 ‘컨슈머리포트’의 역사 깊은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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