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5

2009.07.21

“파도가 전하는 푸른 사연 귀 기울이면 들려요”

김태호 경남지사가 직접 쓴 ‘남해안 여행 가이드’

  • 김태호 경남지사

    입력2009-07-15 17: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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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도가 전하는 푸른 사연 귀 기울이면 들려요”

    <b>1</b>소매물도<b>2</b>상주 은모래 비치<b>3</b>가천 다랑이마을

    여름휴가는 누구에게나 1년을 꼬박 기다려온 시간일 것이다. 늘 가슴에 품었던 ‘행복한 고민’을 실천에 옮기고, 색다른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삶의 활력을 찾기 위한 인생의 투자. 하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 반드시 챙겨야 할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여행지를 담아오기 위해 마음을 비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떠나볼 여행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챙겨야 할 한 가지는 바로 ‘벗’이다. 평생을 같이하고픈 벗이 제일이겠지만, 한잔 술로 마음을 엿본 이도 괜찮다. 천륜으로 맺어진 가족이면 더 좋다. 여행을 함께 하고픈 벗이 있다는 것은 인생의 가장 큰 힘이 된다.

    “내 벗이 몇이냐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에 달 떠오르니 더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 하리.”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처럼 여행을 통해 자연이라는 영원한 벗을 사귀어보는 건 어떨까? 자, 여행 준비가 다 됐다면 400여 개의 아름다운 섬이 있는 남해로 떠나보자.

    소매물도



    아름다운 섬, 동경의 섬 소매물도는 통영항 동남쪽에 있다. 주민 50여 명의 조그만 섬. 한려해상국립공원이 품은 아름다운 보석 중 하나다. 대매물도, 소매물도, 등대도(글씽이섬) 등 3개의 섬을 ‘매물도’라 부르는데 흔히 소매물도와 등대도를 합쳐 소매물도라 하기도 한다.

    소매물도와 등대도 사이의 해안암벽은 절세의 장관을 연출한다. 통영 3경 중 하나. 사진작가와 배낭족이 연중 몰려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금방 날아오를 듯한 용바위, 의젓한 부처바위, 깎아지른 병풍바위, 목을 쑥 내민 거북바위, 하늘을 찌를 듯한 촛대바위….

    그 사이사이로 바위굴이 입을 벌리고 있는데 ‘글씽이굴’은 배를 타고 아슬아슬 통과할 수 있어 묘미를 더한다. 소매물도와 등대도는 조수가 빠져나가면 걸어서 건널 수 있어 하루에 두 차례씩 ‘모세의 기적’을 연출한다. 통영 여객선터미널에서 매물도 페리호가 하루 2~3회 운항한다.

    ‘보물섬’ 남해와 이충무공 전몰 유허

    누군가 ‘한 점 신선의 섬’이라 했던가. 가공되지 않은 보석과도 같은 신비의 섬 남해. 지리산 쪽에서 하동을 거쳐 남해를 찾으면, 한국 최초의 현수교인 남해대교가 우뚝 바다를 가로지른다. 300리 아름다운 바닷길 한려해상국립공원을 품은 곳. 그 위로 남해대교가 달린다.

    남해대교에서 섬의 한가운데를 향해 4km 들어오면 사적 제232호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 유허가 있다. 이락사라고도 하는 이곳은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처음 육지에 오른 곳이다. 첨망대까지 솔밭길 500m를 걷다 보면, 길 양쪽 솔가지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정취를 더한다. 첨망대에 서면 그 옛날 장군께서 전장에 나서기 전 굽어 살폈을 때처럼 노량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상주 은모래 비치

    해안을 조금 더 타다 보면 남해에서 가장 빼어난 풍경이라 꼽히는 ‘상주 은모래 비치’(남해군 상주면)를 만난다. 2km에 이르는 반월형의 백사장은 모래가 은가루를 뿌린 듯 부드러워 비단 위를 걷는 듯한 감미로운 감촉이 느껴진다.

    백사장을 감싸고 있는 100년 이상 된 해송들이 잔잔한 물결과 하모니를 이뤄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드려 조선 건국의 성업을 이뤘다는 금산을 배경으로 잔잔한 파도가 가슴속 깊이까지 다가온다. 가까운 곳에 강물이나 다른 오염원이 없어 바다 밑바닥 모래를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물이 맑다.

    가천 다랑이마을

    남해의 꾸불꾸불한 해안선을 따라가다 보면 국가 명승지 제15호, 농촌전통 테마마을로 지정된 ‘가천 다랑이마을’이 보인다. 가천마을의 다랑이 논은 설흘산과 응봉산이 바다를 향해 아래로 내달리는 급경사지에 만들어졌다. 벼농사를 짓기 위해 산비탈을 일일이 깎아 만든 곡선 형태의 100여 층 계단식 논. 인간의 위대함이 빛을 발하는 곳이다. 배후의 높은 산과 전면의 트인 바다는 빼어난 농촌문화 경관으로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노도

    인근 상주해수욕장에서의 피서, 금산 산행과 더불어 가족 단위 관광에 적합한 곳으로 한적한 섬 ‘노도(櫓島)’를 추천한다. 옛날 이곳에서 배의 노를 많이 생산했다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섬에서 바라보는 금산의 절경과 앵강만의 풍광 못지않게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의 작가 서포 김만중이 56세를 일기로 유형의 삶을 마감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바다의 땅, 통영

    남해에 들렀다면 이제 바다의 땅 통영으로 가보자. 통영은 쪽빛 바다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으니 다니기도 좋다. 눈 돌려 굳이 훑어보지 않아도 그냥 머릿속으로 들어와 가슴에 오래 남는 곳이기도 하다. 쪽빛 바다에 점점이 흩어져 전설을 품은 섬들이 우리를 부르기 때문이다.

    “파도가 전하는 푸른 사연 귀 기울이면 들려요”

    <b>1</b>거제홍포<b>2</b>통영 케이블카<b>3</b>노도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는 한국의 100대 명산 중 하나인 통영 미륵산(해발 461m)에 설치된 국내 최장(1975m)의 케이블카. 8인승 곤돌라(총 48기)를 타고 미륵산 정상에 올라 한려수도의 보석 같은 섬들과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항, 이순신 장군 구국의 혼이 서린 한산대첩지 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한산도에서 여수까지 이르는 뱃길은 기암괴석과 바다의 합주곡이다. 이 길을 한려수도라 이름 짓고, 혹은 노래로 혹은 시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흔드는 길이 됐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이 자리해 사시사철 푸르니 때론 바다를 건너오는 바람에 야생화가 소담하게 피고, 먼 바다로 나가면 섬 바위틈마다 풍란이 흐드러지게 피어 낚싯배에 건들거리는 물결 따라 그 향기 오래도록 남는 곳이 통영이다. 250개의 섬이 통영 시내를 에워싸고 펼쳐진다.

    한산도

    “파도가 전하는 푸른 사연 귀 기울이면 들려요”

    한산대첩 기념비

    한산섬으로 향하는 여객선은 통영 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 8회 출발한다. 여객선으로 30분, 유람선으로 15분 남짓이면 이내 한산섬에 닿는다. 구름떼 같던 왜군이 학익진으로 일시에 수장된 견내량은 나라를 구한 통렬한 승리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예술이 꽃피고 바다와 산, 섬, 나무, 물새가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한산도 가는 길에 대·소 죽도, 해갑도, 거북등대, 한산대첩 전적비가 줄지어 있다. 한산만을 따라 하트형으로 길게 소나무길이 이어지는데 잠시 바깥세상을 잊고 솔바람을 맞는다.

    한산만을 훑어오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걷기를 2km 남짓, 이충무공을 모시는 제승당이 나온다. 한산도에는 충무공이 3년8개월 동안 병사들과 함께한 흔적이 섬 구석구석에 지명으로 남아 있다.

    제승당을 나와 선착장에 가면 왼쪽으로 한산일주도로가 이어진다. 산책으로 그만인 트레킹 코스가 옆으로 따라붙는다. 이 길 따라 올라가면서 남해안 일대에 자생하는 갖가지 풀과 야생화를 볼 수 있다. 인근의 봉암 몽돌해수욕장도 명물이다. 해변은 넓게 휘어지며 1km에 걸쳐 펼쳐지는데 모래밭(沙場)은 없고 몽돌과 색채석만이 빛을 발한다. 그 색채가 아름다워 ‘봉암수석’으로 불리기도 한다. 산책로도 좋아서 남쪽 바다를 품기 좋은 곳이다. 이래서 ‘겨울 산, 여름 바다’라 했을까.

    여차-홍포 해변

    “파도가 전하는 푸른 사연 귀 기울이면 들려요”

    지심도(위).바람의 언덕(아래).

    통영의 산양일주도로를 타면서 해안의 비경에 넋을 잃는 사이 어느덧 거제에 이른다. 여차-홍포 해안도로를 걸으며 바다를 바라보면 구도를 달리하는 여러 폭의 동양화가 시시각각 눈에 들어온다. 저물녘에 닿으면 일몰이 일품. 어느 것 하나 장관 아닌 것이 없다.

    등산객의 숨을 고르게 하는 망산에 오르면 한려수도가 한눈에 들어오고, 바다 안개에 싸인 다도해의 풍경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점점이 박힌 섬 사이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일몰이 내려서는 발길을 붙잡는다. 가파른 산자락 아래에 있는 여차만의 몽돌해변은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갈 때마다 자연의 소리를 던져주고는 시치미를 뚝 뗀다. 그 자연의 소리를 먹고 자란 자연산 돌미역 맛은 일품.

    신선대, 바람의 언덕

    함목을 지나 해금강으로 가는 길목에서 북쪽으로 내려서면 그림 같은 도장포 어촌마을이 나오고, 고개만 들면 ‘바람의 언덕’이 수채화처럼 눈에 가득 찬다. 다시 되잡아 언덕을 올라 도로의 남쪽 전망대에 서면 신선이 되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이름하여 ‘신선대’다. 바람의 언덕은 띠가 덮인 언덕이라 옛 이름도 ‘띠밭늘’이다.

    길게 뻗은 이곳은 청정해역에 감싸여 있기에 언제나 바닷바람이 찾는 이를 맞이한다. 바다와 언덕이 조화로워 드라마 촬영장소로도 각광받는다. 푸른 바다와 갈매기가 어우러지고, 저 멀리 남해안의 맑은 파도가 몽돌을 굴리면서 ‘자글자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학동 흑진주 몽돌해변과 수산마을이 지척에 펼쳐져 절경을 이룬다. 학동 몽돌해변 앞에 펼쳐지는 야생 동백림 군락지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팔색조의 울음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지심도

    끝없이 펼쳐진 여러 해변에 잠깐이나마 질렸다는 생각이 들고 바다와 가까이하고 싶다면 배를 타자. 떠나자. 마음속의 섬, 천혜의 자연휴양림, 지심도로. 거제 장승포항에서 바라보면 손에 잡힐 듯 떠 있는, 동백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 ‘동백섬’이라 불리는 지심도는 그야말로 남해안의 숨겨진 보물섬이다. 지심도는 마음 심(心)자를 옆으로 돌려놓은 모양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지심도에는 원시림에 가까운 굵은 동백나무가 많은데 동백숲 터널을 천천히 걸으며 먼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국내의 유일무이한 곳이다.

    쪽빛 바다와 붉은 동백이 연출하는 환상적 어울림, 동박새와 직박구리가 지져대는 환상교향곡도 좋고, 이제는 아이들 소리마저 사라진 폐교, 너럭바위에 누워 잠시 속세를 벗어난 듯 세상사를 뒤로한 채 선경에 젖어보아도 좋다. 선창 낚시터에서 갓 잡아올린 자연산 물고기의 회도 일품이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아름답고 앙증맞은 남해안의 섬 여행을 지금 떠나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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