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제가 놀란 건 도슨트의 화법 때문입니다. 암기력 테스트를 받는 학생처럼 도슨트는 외워둔 작품설명을 냉랭하고 무미건조한 어조로 빠르게 쏟아냈습니다. 더 놀라운 건 관람객들이었습니다. 도슨트의 설명을 받아 적던 그들 중 다수가 설명이 다 끝나기도 전에 우르르 다음 작품으로 뛰어가 좋은 자리를 선점하는 겁니다.
예전에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에서 ‘피리 부는 소년’의 새카만 눈망울을 보고 순간 매료됐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소년은 살아서 저를 정면으로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 강렬함이 내내 마음에 남아 이 그림이 인쇄된 엽서를 사서 고이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무성의한 도슨트와 성급한 관람객들 때문에 소년과의 해후를 망친 것 같아 무지 속상했습니다.
이후 저는 전시회에 갈 때마다 도슨트 시간을 꼭 확인합니다. 도슨트를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어쩌다 ‘도슨트 무리’와 마주치게 되면 밖으로 나가 차 한 잔을 하며 그들이 해산하길 기다립니다. 물론 모든 도슨트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제가 만난 도슨트는 대부분 ‘빨리 해치우자’는 식으로 이 작품, 저 작품으로 관람객을 끌고 다니기에 여념이 없더군요.
미국에서 초등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한 선생님은 ‘도슨트 공해’를 토로하는 제게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전시회를 둘러보면서 마음으로 작품을 느끼고 작가와 대화해보라”고 조언했습니다. 작가가 누구고 언제 그린 그림인지, 작품의도가 무엇인지보다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느끼는 행복감에 집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주간동아 695호 (p74~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