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5

2009.07.21

‘도슨트 공해’에서 탈출하기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9-07-15 15: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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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슨트(Docent·작품설명 담당자)를 처음 접한 건 2년 전 서울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서였습니다.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 앞에 수십명의 관람객이 운집한 가운데 도슨트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졌습니다. “이 작품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대표작입니다. 그림의 모델은 황제 친위대 곡예단의 소년으로….”

    그때 제가 놀란 건 도슨트의 화법 때문입니다. 암기력 테스트를 받는 학생처럼 도슨트는 외워둔 작품설명을 냉랭하고 무미건조한 어조로 빠르게 쏟아냈습니다. 더 놀라운 건 관람객들이었습니다. 도슨트의 설명을 받아 적던 그들 중 다수가 설명이 다 끝나기도 전에 우르르 다음 작품으로 뛰어가 좋은 자리를 선점하는 겁니다.

    예전에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에서 ‘피리 부는 소년’의 새카만 눈망울을 보고 순간 매료됐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소년은 살아서 저를 정면으로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 강렬함이 내내 마음에 남아 이 그림이 인쇄된 엽서를 사서 고이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무성의한 도슨트와 성급한 관람객들 때문에 소년과의 해후를 망친 것 같아 무지 속상했습니다.

    이후 저는 전시회에 갈 때마다 도슨트 시간을 꼭 확인합니다. 도슨트를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어쩌다 ‘도슨트 무리’와 마주치게 되면 밖으로 나가 차 한 잔을 하며 그들이 해산하길 기다립니다. 물론 모든 도슨트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제가 만난 도슨트는 대부분 ‘빨리 해치우자’는 식으로 이 작품, 저 작품으로 관람객을 끌고 다니기에 여념이 없더군요.

    미국에서 초등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한 선생님은 ‘도슨트 공해’를 토로하는 제게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전시회를 둘러보면서 마음으로 작품을 느끼고 작가와 대화해보라”고 조언했습니다. 작가가 누구고 언제 그린 그림인지, 작품의도가 무엇인지보다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느끼는 행복감에 집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도슨트 공해’에서 탈출하기
    고개를 크게 주억거린 저는 그 후 ‘일자무식’ 상태에서 그림을 보고, 그 다음에 도록을 사서 읽곤 합니다. 첫눈에 반한 낯선 작품을 뒷조사하는 재미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이번 주에 ‘페르난도 보테로’전에 대한 안내 기사를 썼습니다. 이 기사가 도슨트의 횡포와 비슷한 구실을 한다면 독자 여러분께 아예 읽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먼저 이 라틴 작가가 어떤 감동을 줄지를 기대하며 전시장을 천천히 둘러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분명 ‘학습관람’보다 더 큰 행복을 맛보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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