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5

2009.07.21

16강 특명! 고지와 날씨를 넘어라

남아공 월드컵 현지 적응 가장 큰 변수 … 후반 체력 고갈·볼 빠르기 대처 필요

  • 요하네스버그=양종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yjongk@donga.com

    입력2009-07-15 15: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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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평균 살인 사건 50건, 강간 사건 132건, 노상강도 사건 214건…. 2010년 월드컵이 열릴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에서 날아오는 소식은 치안 부재를 보여주는 수치가 거의 전부다. 남아공 밖에서야 그냥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그 나라를 방문하는 사람은 겁을 먹을 수밖에 없다.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낸 뒤 현지답사에 나선 허정무 한국축구대표팀 감독과 동행 취재를 하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을 때 기자도 그랬다. 현지시간 6월26일 새벽 요하네스버그 국제공항에 착륙해 청사를 빠져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살아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현지 사정은 일부 언론보도와는 사뭇 달랐다. 허정무 감독이 월드컵 본선을 위한 트레이닝 캠프를 방문할 때마다 흑인 주민들은 손을 흔들며 “Hello”를 외쳤다. 6월26일 요하네스버그에서 북서쪽으로 120km 떨어진 루스텐버그를 방문했을 때도 그랬고, 27일 북동쪽으로 120km 떨어진 행정수도 프리토리아를 찾았을 때도 그랬다. 허 감독과 김현태 골키퍼 코치 등 현장답사 일행은 루스텐버그의 선수 숙소 후보지인 헌터스 레스트 호텔과 훈련장 올림픽 스타디움, 그리고 프리토리아 센추리온의 레리바 로지와 즈와트크롭 고교 운동장 등 여러 곳을 찾았지만 ‘별일’은 없었다.

    이틀 만에 코피가 난 허정무 감독

    16강 특명! 고지와 날씨를 넘어라

    허정무 감독이 남아공 현지 숙소들을 둘러보고 관계자들을 만나 준비 사항을 점검하고 있다.

    여행업을 하는 교포 이달훈 씨는 “한국에서도 전국적으로 살인사건이 여럿 발생하듯 남아공에서도 많은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주민 대부분은 아주 평화롭게 산다”고 했다. 남아공 ‘프리토리아 뉴스’ 축구 담당기자 레스터 밀스 씨는 “남아공에도 우범지대가 있다.

    그런 곳만 피하면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했다. 남아공 월드컵조직위원회(SALOC)에 따르면 2000년 초부터 뉴타운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해 우범지대이던 흑인 밀집지역도 건전하게 발전하고 있다. 우범지대엔 많은 경찰이 나와 범죄를 단속했다.



    SALOC 대니 조단 사무총장은 “남아공이 안전하다는 것은 6월29일 끝난 2009 컨페더레이션스컵이 증명했다. 대회 기간에 별다른 대형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1건의 경미한 사건이 일어났지만 경찰이 일찍 출동해 큰 문제는 없었다. 경기장 분위기도 환상적이었다.

    팬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추며 경기를 봤다. 축구팬들이 안전에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경기를 즐겼다는 얘기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한수 주(駐)남아공 대사는 “치안 상황이 완전하지는 않다”며 “도심에서 대여섯 명에게 둘러싸여 강도를 당하는 사례가 자주 일어난다. 우범지대는 피하고 도심에선 여럿이서 다녀야 한다. 저녁에는 절대 바깥출입을 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남아공은 한국과 반대편인 남반구에 자리해 6, 7월이면 겨울이다. 허 감독은 “밤이면 기온이 2℃로 떨어져 춥고 낮에는 20℃의 더운 날씨를 보였다. 현장에서 체험한 것이 내년 대회 준비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 때문에 허 감독은 트레이닝캠프 선수단 숙소를 둘러볼 때 난방이 잘되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그는 “선수들이 집중해 훈련할 수 있는 곳이 좋지만 날씨라는 변수 때문에 컨디션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허 감독은 한국이 1순위로 지명한 루스텐버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헌터스 레스트 호텔도 숙소로 좋고 훈련 환경도 좋다. 이탈리아와 미국이 1순위로 지명한 프리토리아 쪽이 더 좋지만 루스텐버그도 괜찮다”고 밝혔다. 하지만 12월 조 추첨에 따라 1순위 이탈리아와 미국이 다른 곳으로 갈 경우 2순위 한국이 프리토리아에 훈련 캠프를 차릴 가능성도 있다.

    허 감독은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한 지 이틀이 지나자 코피가 났다. 고지에서 활동하다 보니 산소가 부족하고 피곤이 쌓였던 것. 남아공 월드컵 개최 도시 9곳 중 1000m 이상 고지가 절반이 넘는 5군데. 1700m 고지인 요하네스버그가 축구장 2곳을 보유하고 있으니 축구장은 10곳 중 6곳이 고지인 셈이다. 한국이 지난 2월 해발 1290m 고지인 이란의 테헤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점을 감안하면 철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결론이다.

    한국은 최소한 한두 경기를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에서 치르게 돼 있다. 허 감독은 컨페더레이션스컵 준결승에서 스페인이 미국에 0대 2로 완패하고 브라질도 이집트를 졸전 끝에 1대 0으로 겨우 따돌린 이유를 ‘고지 효과’ 때문으로 본다. 브라질은 결승에서도 미국에 고전 끝에 3대 2로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컵을 안았다. 미국이 결승에서 초반 경기를 주도하다 후반에 급격히 체력이 떨어진 것도 고지대와 연관 있다고 보는 이도 있다.

    허 감독은 “마라톤 고지 훈련에 대한 연구 결과는 많은데 축구 고지 훈련은 자료가 없어 걱정이다. 체육과학연구원과 협조해 대비책을 찾겠다”고 말했다. 허 감독은 내년 1월 남아공으로 전지훈련을 가 선수들이 ‘현장’을 느껴보도록 기회를 줄 계획. 그는 “내년 초면 남아공은 여름이라 경기가 열릴 겨울을 느끼진 못하겠지만 고지 분위기는 확실히 체험할 것이다. 그 느낌을 얻는 것만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소가 적어 볼의 빠르기가 달라지는 것에 대한 대비책 마련도 과제. 허 감독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 고지에서 경기를 했는데 예상보다 볼이 빠르게 지나가 놓친 적이 많았다. 미세한 차이지만 고지에서 나타나는 볼 빨라지는 현상의 대처법도 숙지해야 한다”고 했다.

    교통, 숙박시설은 태부족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전 세계에서 독일을 찾은 유동 인구는 200여 만명에 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데다 환경이 열악해 훨씬 적은 팬이 방문할 전망이다. SALOC는 약 100만명이 찾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국제축구연맹(FIFA)은 40만명 정도로 추정한다. 40만명이 남아공을 찾는다 해도 숙박시설은 이들을 다 수용하기 어려운 실정.

    FIFA는 선수단 등 각국 대표단을 위해 이미 5만5000개의 객실을 확보했다. 또 남아공 정부가 25개의 고급 호텔을 짓고 있고, 일반 외국인 방문객이 공식 알선업체를 통해 숙박시설을 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하지만 남아공이 보유한 숙박시설은 일개 국제회의조차 소화하지 못할 만큼 크게 부족하다. 대한축구협회 김동대 국제위원장은 “SALOC도 부족한 숙박시설 문제를 인식, 다각적으로 해결책을 찾고 있지만 대회기간 중 숙박난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가이드를 동반한 렌터카를 이용하지 않으면 이동하기 어려운 대중교통 체계도 팬들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옛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의 영향으로 남아공에는 대중교통 시스템이 사실상 전무하다. 기득권층인 백인들이 자신들은 자가용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흑인들은 한 곳에 몰아넣고 활동을 제한하려고 교통 시스템을 확충하지 않았기 때문.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된 지 15년이 흘렀지만 경제권을 쥔 백인들은 대중교통 체계를 확충하는 데 여전히 인색하다. 흑인들은 12∼14인승 미니버스로 자신들만의 대중교통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하는데, 외국 관광객이 이용하기에는 위험한 면이 있다. 남아공 정부는 요하네스버그 국제공항에서 프리토리아로 이어지는 전철 공사를 진행하는 등 대중교통 시스템을 마련하느라 구슬땀을 흘리지만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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