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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촛불 켠 보수 주판 든 진보 07

한국은 지금 다원주의로 간다

보수·진보의 틀 거부, 삶의 옵션 취사선택 … 때아닌 권위주의에 반감

  •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sachun@sogang.ac.kr

한국은 지금 다원주의로 간다

한국은 지금 다원주의로 간다

사람들의 삶과 요구는 198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졌다. 보수·진보의 정치이념으로 그 다양성을 진단하기엔 역부족이다.

1980년대와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많이 다르다. 물론 바뀌지 않은 것들도 있다. 프로야구의 인기는 여전하며 입시경쟁은 아직도 골칫거리다. 거시 경제지표와 상관없이 거리와 시장에서 목격되는 일반인의 살림살이는 여전히 빡빡하다. 남북평화, 세계평화도 요원하다.그렇다고 변화가 없었을까. 휴대전화와 인터넷은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자동차와 에어컨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다. 대학도 고급 교육기관에서 보통의 교육기관이 됐다. 제조품으로 빼곡한 수출 품목에는 문화적 상품이 새로 올라가 있다. 이른바 한류(韓流)는 현재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의 중요한 상징이다.여전한 것도 많고 변한 것도 많다. 그러나 이런 빤한 결론에 만족할 수 없다. 과거와 현재의 비교가 필요한 이유는,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현재를 점검하고 앞으로 나아갈 바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려면 명료한 기준과 좌표가 있어야 한다.

4가지 사회발전 모델

먼저 사회적 조건이다. 많은 사회적 조건 가운데서 경제, 문화, 정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제와 문화는 일반적인 의미로 이해하자.

하지만 정치는 좀더 넓은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이를테면 정치제도의 측면뿐 아니라 공동생활에 대한 지향점도 다뤄야 한다. 공동생활에 대한 지향점은 두 방식으로 나뉜다. 조화와 합일을 중시하는 방식, 그리고 독립과 분리를 지향하는 방식이다.



전자는 전통과 공동체를 강조한다. 새로운 것은 전통과 조화를 이룰 때 수용된다. 개인의 자기실현보다 공동체의 운명이 더 중요하다. 반대로 후자는 미래와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다. 새로운 것의 수용에서 전통은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다. 공동체보다 개인이 앞선다. 공동체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면 저항이 일어난다.

여기서 우리는 경제와 문화를 간명하게 상호배타적인 것으로 본다. 한때 문화는 경제의 부속물로 간주됐다. 그러나 한국처럼 발전한 나라의 문화는 경제의 지배에서 많이 벗어났다. 따라서 경제적 궁핍이 최우선 과제가 아닌 이상, 문화는 경제와 비교적 무관한 자율적 사회영역이다.

옆의 그림에서 보듯 경제, 문화, 정치 영역은 교차할 수 있다. 그림의 수평축은 경제와 문화가 상호배타적임을 의미한다. 수직축은 위로 갈수록 조화와 합일이, 아래로 갈수록 독립과 분리가 강화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볼 때 각 사회의 조건 및 제도는 4가지 모델로 구분된다. 왼쪽 상단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조화와 합일 속에서 경제성장을 중시하는 모델이다. 일종의 국가주도적 경제성장 모델로 과거 아시아의 신흥공업국가(NICs)가 여기에 해당한다. 왼쪽 하단의 구성원들은 개인 이익을 위해 독자적으로 추구하는 성향을 가졌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여기에 놓인다.

오른쪽 상단은 공동체가 우선되는 문화적 합일을 강조하는 모델이다. 종교적 근본주의를 국가 이념으로 삼는 나라들이 여기에 속한다. 오른쪽 하단은 구성원 개인의 문화적 독립과 분리를 강조하는 특성을 지닌다. 이 모델에 해당하는 현대 국가와 역사적 예는 찾기 쉽지 않다. 그러나 4개 모델이 각자의 속성에만 충실한 것은 아니다. 다만 특정 성향이 주도적임을 표현할 뿐이다. 즉 사적인 경제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이 다수인 사회라 해도 공동체 지향적인 제도와 정책이 존재할 수 있다.

이 기준으로 1980년대와 오늘날을 비교하면 그림의 두 원과 같다. 80년대 초반까지 한국의 국가·사회는 경제성장을 중시했다. 이전 시대와 달리 절대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은 눈에 띄게 줄었다. 경제적 측면에서 엄청난 성장을 했지만, 여전히 경제성장은 모든 제도와 의식의 가장 중요한 기준점이었다.

또한 전통과 조화를 중시했다. 새로운 문화의 유입은 ‘전통 보존’을 이유로 저지됐고, 개인의 자유는 공동체 유지를 위해 희생될 수 있다고 여겼다. 이러한 특성은 전두환 정권의 권위주의를 정당화하는 중요한 근거로 작용했다. 경제성장을 이끄는 대기업을 위해 노동자들의 권익은 무시됐다. 북한과의 경쟁을 이유로 현 체제에 대한 도전은 용납되지 않았다. 개인의 사적 이익과 문화적 자기실현은 억압됐다.

물론 이런 상황은 점차 바뀌었다. 사람들은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문화적 자율성 요구가 거세졌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가 ‘정권유지’와 동일시되는 것을 거부하는 움직임도 커졌다. 이렇게 정치와 사회(문화)에 대한 민주화 요구가 거세졌다. 경제성장과 공동체 발전을 위해 유예된 개인의 자유와 문화적 독립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87년 6월은 이러한 추세의 잠정적 완성이었다.

한국은 지금 다원주의로 간다

경제·문화·정치의 기준에 따른 1980년대와 오늘날의 비교

이후 한국 사회는 바뀌었다. 비록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공동체 중심의 문화는 약화되고 개인에 대한 문화적 억압도 줄어들었다.

1990년대 초반 이른바 ‘신세대’의 등장은 이러한 변화의 시그널이었다. 개인의 이익 추구는 장려되기 시작했다. 김영삼 정부 이후 지금까지 추진되는 신자유주의적 사회정책 확산은 ‘분산화’라고 요약할 수 있는 이런 변화를 선도한다.

그림의 점선으로 된 원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오늘날 한국의 국가·사회는 다양한 사회발전 모델을 모두 포함하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사회학은 이를 ‘개인화’라고 정의한다.

개인화란 전통과 규범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법과 제도 역시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것을 뜻한다. 요컨대 사람들의 삶과 요구는 과거보다 다양해졌다.

‘개인화’ ‘분산화’가 현대사회 키워드

최근 한국 사회에 대한 여러 진단이 나오고 있다. 그중 사회의 ‘보수화’ 혹은 ‘진보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주장이 눈길을 끈다. 이는 정치적 이념을 중심으로 현 사회의 추세를 가늠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진단은 일면적이다. 물론 일부 구성원은 전통적 의미에서 보수적인 혹은 진보적인 정치 관념을 새롭게 취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시각에서 보면 그 추세는 매우 한정된 변화일 뿐이다. 오늘날 한국의 가장 중요한 추세는 ‘개개인의 분산화’다. 각 개인은 과거보다 훨씬 다양해진 삶의 옵션과 대면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그것을 재구성한다.

변화된 상황에서 개인과 조직은 기존의 관성과 작별해야 한다. 경제조직들은 이미 이러한 변화를 잘 읽어냈다. 소비자의 다양해진 니즈를 충족시킬 묘책을 찾아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최근 정부의 행보는 관성을 되살리는 방향으로 간다. 되살아난 ‘대한늬우스’에서 알 수 있듯 권위주의적 밀어붙이기가 부활한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사람들의 삶과 요구는 그림의 아래 방향으로 넓어지고 있는데,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는 다시금 위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듯하다. 과거 통치방식, 즉 사람들을 일렬종대로 세우고 정부가 스스로 최고의 계몽자(전문가)가 되어 지시한 바를 따르라고 명령하는 것은 현재 상황에서 무리일 수밖에 없다. 단연코 그렇다.



주간동아 2009.07.14 694호 (p36~37)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sachun@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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