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4

2009.07.14

MB “서민적 보수의 길로 간다”

‘중도강화론’ 국민통합 위한 현실적 판단 … 서민 체감 정책, 반대세력 포용이 과제

  •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정치학 db827@naver.com

    입력2009-07-08 15: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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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 “서민적 보수의 길로 간다”

    서민 친화적 행보에 나선 이명박 대통령이 6월25일 서울 이문동 골목상가를 방문해 어묵을 먹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사회 전체가 건강해지려면 중도가 강화돼야 한다”는 ‘중도강화론’을 앞세워 서민친화적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 내건 ‘중도실용’의 화두를 다시 꺼내든 것이다. 이를 둘러싸고 정치권에선 논쟁이 뜨겁다.

    민주당은 “국면 전환을 위한 포장에 불과하다”고 혹평했고,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좌도 우도 아닌 순수한 중도가 있다고 생각하면 굉장한 환상”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우파 진영도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조갑제 씨는 “중도는 기회주의이고, 실용은 이념적 원칙을 포기한 것”이라며 “(중도를 내세운) MB를 탄핵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정치권의 논쟁에 대해 이 대통령은 중도강화론의 배경을 “중도실용도 무슨 거창한 이념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갈등하며 분열하지 말고, 국가에 도움이 되고 특히 서민과 중산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우리의 마음을 모으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의 말처럼 중도강화론이 등장한 배경에는 정치 현실적인 고려가 담겨 있다.

    국민 여론조사 중도 39.8%

    첫째, 국민의 이념 지형에선 중도가 강화되고 있는데 오히려 이념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와 ‘동아일보’가 5월1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도’가 39.8%로 가장 많았고 ‘보수’ 33.3%, ‘진보’ 21.9%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한국 사회의 이념 지형이 빠르게 ‘정규 분포화(normalization)’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과거에는 진보 40%와 보수 40%로 균등하게 대세를 이루고 중도(20%)는 약한, 이른바 ‘쌍봉형 이념 지형’이었으나 최근에는 중도층이 두꺼워지는 ‘단봉형 이념 지형’으로 바뀌고 있는 것.

    문제는 국정운영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부정적 이미지가 이념 갈등을 증폭하는 데 한몫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이념 성향에 대한 인식 조사를 살펴보면,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는 국민 전체 평균(5.2점)과 가장 근접한 5.4점으로 중도적인 후보로 인식됐다. 하지만 취임 이후 2008년 11월에는 6.4점, 2009년 6월 현재는 7.0점으로 가장 보수적인 정치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고유의 중도 이미지가 깨지고 극우보수 이미지가 강화된 것이다.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면서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중도층의 이탈이 가속화하고,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집권 초기부터 곤두박질친 것도 같은 이유다.

    둘째, 노무현 전 대통령 조문 정국 이후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고 잃어버린 정국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그 핵심에 대통령의 친서민적 행보가 자리잡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국민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현 정부가 “서민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유층이나 대기업 등 가진 자 위주의 정책을 펼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실제로 KSDC 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서민들의 살림살이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는 비율은 38.6%인 반면, ‘동의하지 않는다’는 51.9%로 나타났다. ‘강부자, 고소영 내각’으로 상징되는 초기 개각의 실패로 이 대통령은 부자의 이익만 대변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셋째, 보수에 대한 국민의 감정이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에 보수의 가치를 토대로 국민통합을 이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도 중도강화론의 배경으로 꼽힌다. 우리 사회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특정 이슈와 정책에 대해 대안을 갖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추구하는 가치를 무조건 배격하는 ‘배타적 감정’이 지배한다.

    밀어붙이기보다는 비판 목소리 수용을

    KSDC·동아일보 조사 결과, 진보가 보수에 대해 ‘나쁘다’고 응답한 비율은 54.6%이고, 보수가 진보에 대해 ‘나쁘다’고 답한 비율은 43.6%였다. 보수와 진보 둘 중 한 명은 상대방을 ‘나쁘다’고 인식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진보가 진보에 대해 ‘좋다’는 비율은 72.2%인 반면, 보수가 보수에 대해 ‘좋다’는 비율은 33.1%에 그쳤다.

    한편 중도층에서는 진보에 대해 ‘좋다’는 비율이 28.5%인 반면, 보수가 좋다는 비율은 19.3%에 그쳤다. 현 정부는 이러한 보수의 취약성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보수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진보를 수용하는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진보는 서민을 대변하고, 보수는 기득권을 옹호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이런 관행에 종지부를 찍고 보수도 서민을 위할 수 있다는 ‘서민적 보수’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 중도강화론의 핵심으로 읽힌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이, 진보진영이 주도하던 교육 분야를 공세적으로 선점해 중도층의 지지를 확보한 ‘온정적 보수주의’와 맥을 같이한다.

    중도강화론이 현 정부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 누구도 단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부 보수 언론에서는 “어설픈 중도론을 펴다간 우파로부터는 지지를 잃고 좌파로부터는 비아냥거림을 듣는 최악의 결과를 빚을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이 대통령이 이러한 경고를 불식하고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정책과 연결돼 지속성을 가져야 한다. 반짝 이벤트에 그친다면 100%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과 탕평 인사도 필수적이다. 반대세력을 대담하게 껴안을 수 있는 근원적 처방이 필요하다. 보수는 성장·효율·자율·경쟁·체제 수호를, 진보는 분배·균등·투명·책임·민족 공존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진보의 가치는 잘못됐고 보수의 가치만 옳다는 식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큰 틀에서 보면 역사는 발전을 향해 나아간다. 지난 정부에서 잘한 것이 있으면 현 정부에서 인정하는 포용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는 더 이상 ‘잃어버린 10년’을 거론해서는 안 된다. 진보정권 10년 동안 잘한 점도 있고, 못한 점도 있게 마련이다. 진보정권 10년을 전면 부정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중도강화론이 성공할 수 있겠는가.

    물론 대한민국 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거나 법치에 도전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정면 대응해야 한다. 다만 대응 방식에서 근원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현 정부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조건으로 유난히 법치를 강조한다.

    그런데 정부가 법치를 전면에 내세울수록 국민은 권위주의 통치로의 회귀로 인식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법치가 야당과 죽은 권력에 대해서는 철저하고 냉정하게 적용되는 반면, 살아 있는 권력과 기득권층에게는 유약하고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국정운영 기조의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전환의 최전선에 중도강화론이 등장한 것이다. 변화된 기조 속에서 정부 여당은 밀어붙이기 국정운영을 포기하고 비판자의 목소리를 수용해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너무 다름만 얘기하고 같음에 대해서는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아가야 할 방향과 가치에 대한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진보와 보수 간에 다름보다는 같음을 더 많이 얘기하는 변화가 시작돼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중도강화론을 통해 실현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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