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4

2009.07.14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벌거벗은 통계’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9-07-08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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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발터 크래머 지음/ 염정용 옮김/ 이순 펴냄/ 248쪽/ 1만1000원

    인간의 몸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는 눈이다. 우리는 바라본 것을 중심으로 사고한다. 따라서 인류의 역사는 시각에 의해 발전해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세계적 통계학 권위자 발터 크래머는 ‘벌거벗은 통계’에서 숫자의 난세(亂世)를 이기는 지혜로운 통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루트비히 라이너스의 문체론을 인용한다.

    “인간은 눈을 사용하는 동물이다. 눈은 이성이 지쳐 있더라도 아직 수용할 능력이 남아 있다. 우리는 이 수용 능력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우리는 임팩트가 큰 한 장의 사진에 열광하고, 강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나 한 줄의 헤드라인에 이성과 감정이 동시에 뒤흔들린다. 그래서 요즘 책 제목이나 광고의 헤드카피는 전보문이어야 한다.

    우리는 또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 통계수치와 그래프에 잘 속아 넘어간다. 동일한 통계로 만든 그래프일지라도 가로 세로 축을 달리하는 등의 데이터 분식(粉飾)을 통해 엄청난 허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막대그래프로 그려진 것을 입체적인 그림그래프로 바꾸면 그 격차는 더욱 엄청나 보인다. 수치가 면적이나 부피에 관한 것이라면 그 격차가 실제보다 2배, 4배, 8배 부풀어지는 게 느껴질 정도다.

    물론 이것은 시각적인 것이다. 저자는 이런 것이 ‘인간의 합리적인 가치판단을 가로막는, 의도적으로 조작된 나쁜 통계’라고 주장한다. 이런 통계활용 기술을 다룬 책들이 인기를 끈 것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통계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여론 측정이 아니라 의도된 여론 형성을 위한 지능형 설문조사를 예로 든 부분에서는 웃음이 터진다.



    이 책에서는 어려운 전문용어나 수식은 찾아볼 수 없다. 통계 실무 현장에서 수집한 생생한 사례와 누구나 쉽게 공감할 적절한 비유와 명쾌한 분석이 넘친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졌을 때 “당신은 닉슨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라는 설문이 실시됐다. 탄핵의 뜻을 몰랐던 미국인들은 닉슨 대통령이 ‘유죄판결’을 받을 것이라고 믿었기에 탄핵은 지나친 처사라 받아들였고 닉슨은 일시적으로 면죄부를 받았다. 그러나 질문을 “대통령은 상원조사위원회에 출두해야 하는가?”로 바꾸자, 이것이 탄핵을 의미하는지 몰랐던 대다수 국민은 ‘그래야 한다’고 답했다. 결국 탄핵절차는 진행됐고 닉슨은 자발적으로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한 성(省)에서 징병검사와 세금징수를 위해 조사를 하니 인구가 2800만명에 불과했지만, 흉년이 들어 구호품을 분배하기 위한 조사에서는 1억5000만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뭔가를 속이려는 경향은 동서고금에서 일관되게 나타났다.

    최근 영국에서 실시한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영국 여성은 일생 동안 평균 2.9명의 섹스 파트너를 만나는 반면, 남성은 11명에 달한다. 또 다른 조사결과를 보면 영국은 기혼 남성보다 기혼 여성 수가 훨씬 많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두 경우 모두 여자들은 ‘점잖은 대답’을 택한 반면, 남자들은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려 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예다.

    민주사회일수록 여론이 신(神)보다 우위에 있다. 그러다 보니 국가 정책이나 국회 예산 집행, 사회적 결정과 합의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통계를 이용한 여론조작이 일상적으로 시도된다. 이런 의도가 개입된 통계를 바탕으로 보도된 뉴스는 ‘선별된 팩트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대중매체를 통해 접하는 소식은 항상 모든 가능한 소식의 임의추출 표본에 지나지 않으며, 미디어의 선입견과 세계관도 반영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세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언론사 편집진이 보는 방식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같은 통계수치를 놓고도 정반대의 결론을 내놓거나, 여론조사로 후보를 결정할 때 설문의 문구를 놓고 혈투를 벌이는 장면을 접한다. 이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분적으로 왜곡된 임의표본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려는 의도 개입은 늘 벌어지는 일이다. 기업들 또한 마찬가지다. 기업들도 분식통계로 고객을 확보하려 든다.

    우리는 언제나 정보경영의 기술이 필요하다. 통계와 수치가 난무하고 나쁜 의도가 개입된 조작된 통계가 넘치기 때문이다. 엉터리 정보 속에서 잘못된 의도를 찾아내는 능력이야말로 생존경쟁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이다. 이 책은 통계수치에 가려진 모든 사안의 진실을 감식해내는 안목을 제시한다. 전문지식이 없어도 유머집처럼 가볍게 읽을 수 있을 만큼 재미도 있어 여름밤의 무더위를 잊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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