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4

2009.07.14

한국식 ‘빨리빨리’ 정신 美 ‘패스트패션’서 성공 일궜다

재미교포 운영 ‘포에버21’ 승승장구 … 머천다이징 능력 키운 것이 주효

  • 뉴욕=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입력2009-07-08 11: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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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식 ‘빨리빨리’ 정신 美 ‘패스트패션’서 성공 일궜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서울 명동의 ‘포에버21’ 매장. 한국인 소비자의 취향을 고려한 트렌디하고 저렴한 의류들이 주종을 이룬다.

    6월20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패스트패션(유행에 맞춰 신속하게 생산, 판매되는 중저가 의류) 업체 ‘포에버21’ 매장. 자그마한 아시아 여성의 체형에 적합한 ‘프티’ 사이즈부터 특대형까지, 또한 빨간색 숏팬츠부터 우아한 파티용 드레스까지 형형색색, 다양한 사이즈의 옷들이 2개 층에 걸친 대형 매장에서 제각각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양팔 가득 욕심껏 옷을 골라든 쇼핑객들은 어김없이 서너 벌 이상의 옷을 한꺼번에 구입했다. 명품 패션회사에 근무하는 크리스티나 팽(30) 씨는 “트렌디한 디자인의 옷을 다른 패스트패션 업체인 ‘자라’나 ‘H·M’보다 저렴한 가격대에 살 수 있어 즐겨 찾는다”고 말했다.

    패션유통업계 절대강자로 부상

    이곳에서는 샤넬 스타일의 블랙 미니드레스도, 저지 소재 블라우스도 20~40달러(약 2만5000~5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 퀴니 왓슨(24) 씨 역시 매장에 들어선 지 10여 분 만에 10벌 정도의 옷을 골라잡더니 피팅룸 앞에 섰다. 로스앤젤레스(LA) 출신인 왓슨 씨는 “LA에서 시작된 ‘포에버21’의 인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설립자가 한국계라는 사실까지 알려졌다”고 전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명동 M플라자 내에 총 4층, 2810m²(850평) 규모의 한국 첫 오프라인 매장을 열고 온라인 매장도 함께 운영하고 있지만 국내에 ‘포에버21’의 성공 스토리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패션업계 정보지에만 한 두 차례 소개됐을 정도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패션유통회사 가운데 하나로 몇 해 전부터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2007년 ‘Faster Fashion, Cheaper Chic(패스트패션보다 더 빠른 패션, 싼 가격에 누리는 세련된 멋)’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포에버21’이 ‘자라’ ‘Mexx’ ‘H·M’ 같은 유럽 패스트패션 브랜드들과 경쟁하며 미국 유통업계의 절대강자(powerhouse)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자체 상표의 생산, 유통, 판매를 총괄하는 이 업체는 ‘포에버21’ ‘XXI 포에버’ ‘헤리티지1981’ 등의 브랜드명으로 여성복, 남성복, 란제리, 신발, 화장품, 액세서리 등을 판매한다.



    이 회사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는 1981년 도미한 한국계 미국인 장도원(51) 씨. 1984년 장 회장은 아내와 함께 LA에 84m²(약 25평) 규모의 패션 매장 ‘패션21’을 열고 사업을 시작했다. 이것이 ‘포에버21’의 데뷔 모습이다. LA에서의 인기가 다른 도시로까지 이어지면서 25년 만에 미국 내 매장 수는 460여 개로 증가했다.

    한국 캐나다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 약 15개국에 진출, 2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등 해외 진출도 본격화했다. 최근 ‘시카고트리뷴’은 지난 3년 사이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이어나가면서 ‘포에버21’의 전체 매장 수가 2배로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2008년 미국 내 소수 인종 소유 50대 기업 가운데 매출규모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포에버21’에 따르면, 2008년 총매출액은 18억 달러(약 2조2660억원)에 이른다. 전 세계적으로 4278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세계 최대 패스트패션 업체 ‘자라’의 1/6~1/5 수준. ‘포에버21’ 관계자는 “세계적 금융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2007년 대비 30% 성장했다”며 “2009년에는 24억 달러 규모의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포에버21’의 급부상에는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미국의 유통컨설턴트인 하워드 데이비도위츠는 “10대만 집중 공략하기보다 가족 구성원 모두를 타깃으로 다양한 라인을 선보인 점, 경쟁업체들보다 훨씬 큰 매장을 운용함으로써 차별화를 꾀한 점” 등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포에버21’ 매장의 평균 면적은 2323m²(약 702평)로, ‘앤트로폴로지’ ‘갭’ 같은 다른 브랜드 매장의 5배에 달한다.

    패션트렌드 컨설팅업체 인터패션플래닝은 한국인 특유의 순발력으로 패스트패션에 적합한 트렌드 흡수력, 빠른 유통 패턴을 이뤄낸 장 회장의 역량을 성장 비결로 꼽았다. 인터패션플래닝 김해련 대표는 “회사에 자체 디자이너를 두지 않는 대신, 얼마나 빨리 제품을 기획하고 저렴하게 공급할지 등 머천다이징 능력을 핵심 역량으로 삼은 게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트렌드 정보·컨설팅 업체 PFIN의 이현주 수석연구원은 “주로 LA 소재 업체로부터 제품을 공급받지만 일부 아이템은 우리나라의 동대문에서도 상품을 사들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다양한 아이템과 가격 경쟁력, 빠른 회전율을 바탕으로 한 시즌별 기획력 등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한국식 ‘빨리빨리’ 정신 美 ‘패스트패션’서 성공 일궜다

    올 4월 오픈한 일본 도쿄 하라주쿠의 ‘포에버21’ 매장.

    ‘LA비즈니스저널’ 역시 다양한 의류 공급업체로부터 많은 제품을 신속하게 확보하는 한국 스타일의 업무 추진력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포에버21’은 동대문 패션거리와 비슷한 미국 LA ‘자바시장’의 의류업체들과 돈독한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 ‘LA비즈니스저널’은 또한 급속도로 변화하는 패션업계에 발맞춰 로컬 상품 위주로 판매 전략을 세우고, 기존 업체의 인수 합병으로 매장을 확보해나간 점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한국 내 사업 투자에도 큰 관심

    7월1일 찾은 서울 명동의 ‘포에버21’ 매장에서는 맨해튼 매장에서 봤던 것과 똑같은 제품들도 있었지만 국내 소비자를 겨냥한 귀엽고 캐주얼한 디자인이 특히 눈에 많이 띄었다. 로컬 시장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해 상품을 구성한다는 뜻이다.

    ‘포에버21’ 코리아 마케팅팀 유미현 팀장은 “최근 월 평균매출이 오픈 직후인 지난해 말보다 2배가량 늘어났다”고 전했다.

    ‘포에버21’은 2012년 완공 예정인 경기 과천의 대형 쇼핑몰 ‘몰 오브 코리아’의 개발을 맡아 진행에 착수하는 등 한국 내 사업투자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장 대표가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 지분을 16%대까지 매입, 이 회사의 2대 주주로 올라서기도 했다.

    성장과 함께 악재도 끊이지 않았다. 특히 미국 내에서는 디자인 무단 도용과 관련된 소송이 줄을 이었다.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그웬 스테파니, 안나수이 등의 패션 브랜드는 패션쇼에서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자마자 ‘포에버21’이 유사한 디자인을 도용, 대량 판매해 피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주식시장에 상장되지 않은 사기업(private company)인 ‘포에버21’은 현재 언론 노출과 홍보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편. 비전, 발전 방향과 관련해서도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정신을 강점으로 미국의 대표적 패스트패션 브랜드로 성장한 ‘포에버21’은 얼마나 빨리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것인가. 또 한국의 패션, 유통업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아직은 베일에 싸인 듯한 이 업체에 패션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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