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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내 미국민 10만명 유사시 일본으로 대피시킨다”

美 대사관 민간인 소개 ‘NEO 계획’ … 열차로 부산 도착, 비행기로 수송

“한국 내 미국민 10만명 유사시 일본으로 대피시킨다”

“한국 내 미국민 10만명 유사시 일본으로 대피시킨다”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자국민 소개계획은 서울 탈출에서 일본 도착까지 10일을 시한으로 잡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니까 궁금한 건, 그게 어느 시점에 가동되느냐는 거죠.”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의 긴장지수가 전례 없이 치솟던 6월 중순. 한 외국계 투자회사 관계자가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가 궁금해하던 것은 ‘NEO(Non-combatant Evacuation Operation)’, 즉 주한 미국 대사관이 유사시 가동하게 될 민간인 소개(疏開)계획이었다. 연이은 북한의 강경행보에도 주가 등 경제지표가 꿈쩍 않고 있지만, 막상 미국 정부가 자국민을 서울에서 대피시키는 상황이 오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뉘앙스였다. 한국에 투자한 외국 자본의 입장에서는 그 징후를 먼저 확인하는 게 관건이라는 얘기.

물론 실제로 이러한 상황이 닥칠 가능성은 극히 낮고, 현재 시점에서 이를 궁금해하는 것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무렵 기자는 서울의 다른 외국 대사관 관계자들에게서도 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최근의 한반도 긴장고조를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시선은 우리의 그것과 사뭇 다를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일단 장사정포 사정거리 밖으로!

실제로 미국 정부가 이러한 프로그램을 갖고 있으리라는 사실 자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사시 대비계획인 만큼 그 구체적인 내역에 접근하기가 간단치 않아 보이지만, 그 얼개를 살펴볼 수 있는 여러 경로가 열려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1994년 이른바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 측 인사들의 회고다. 클린턴 행정부가 영변 핵시설에 대한 제한공습을 검토하던 이 무렵, 주한 미 대사관을 중심으로 한국 내 미국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계획은 상당 부분 체계화됐다.



이후 십수 년이 흐르는 동안 당시 이 작업에 관여했던 당사자들은 적잖은 분량의 기록물을 남겼다. 당시 미 국무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일한 조엘 위트, 대니얼 폰먼, 로버트 갈루치 세 사람이 2004년 공동으로 저술한 ‘Going Critical’이 대표적인 저작. 이 책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담과 함께 게리 럭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을 포함한 한미 당국자들을 인터뷰한 자료를 통해 주한 미국인들에 대한 소개계획 전모를 밝히고 있다. 이들 자료를 중심으로 유사시 가동될 NEO 프로그램의 핵심사항을 정리한다.

1차 북핵 위기 때 주한 미 부대사이던 찰스 카트먼은 20년 가까이 캐비닛에 잠들어 있던 NEO를 당시 상황에 맞게 체계화한 인물이다. 당시의 NEO는 전쟁이 발발할 경우 전시 증원 병력을 싣고 한반도로 날아올 군 수송기에 민간인을 태워 대피시킨다는 것이 핵심 개념이었다. 그러나 그 무렵에 이미 10만명을 넘긴 주한 미국인들을 이러한 방식으로 소개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수송기가 도착할 주요 공군기지까지 대규모 인원을 수송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카트먼 부대사는 주한미군과의 협조 아래 새로운 NEO 개발에 착수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NEO 계획은 크게 다음의 3단계로 나뉜다. 일단 대피상황이 벌어지면 미국 시민권자들이 ‘각자 알아서’ 최대한 장사정포 사정거리 밖인 서울 이남지역으로 빠져나오도록 유도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대중매체나 미 상공회의소 등을 이용한 비상연락망 ‘워든 시스템(warden system)’을 통해 대피를 통고하는 것이다. 다음 단계에서는 이렇게 서울을 빠져나간 미국인들에게 열차편을 제공해 부산 등의 집결지로 이동한다. 이때 열차편은 한국 정부로부터 협조받도록 규정돼 있다.

부산에 도착한 미국인들은 김해공항에서 항공편을 이용해 일본으로 대피한다. 전시 증원 병력의 수송거점인 부산의 공항시설이 북한군의 공습으로 파괴되는 경우에는 부산항을 이용해 배를 타고 일본으로 빠져나간다. 일본에 도착한 미국인들을 수용하는 문제는 일본 정부의 협조를 받는다. 이를 위해 당시 미 국무부는 일본 외무성과 함께 계획을 수립했다. 서울 탈출에서 일본 도착까지 소개가 완료되는 데 총 열흘이 걸린다는 게 계획의 골자.

美 국적 한국인 가족은 포함 안 될 듯

이후 주한미군은 NEO 계획의 실행을 위한 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했다. 특히 1위기가 정점으로 치달았던 1994년 6월6일 벌어진 훈련은 실제 상황을 방불케 할 만큼 수위가 높았다고 한다. 당시 이를 공개 비난하는 논평을 발표한 평양은 물론, 한국 정부에서도 미국이 조만간 군사작전을 개시하려는 최종 준비 작업에 나선 게 아니냐고 의구심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Going Critical’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한 청와대 관계자는 “사람들은 베트남을 기억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1990년대에 만들어진 NEO 계획이 이전에 비해 현실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적잖은 한계가 있다. 먼저 10만명이 넘는 서울 소재 미국 시민권자 전체를 수송할 열차편을 제공받는다는 것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통상 열차 1량에 입석까지 사람을 가득 채워도 300명 이상을 수용하기란 불가능하다. 10량을 하나로 묶은 열차가 30편 이상 마련돼야 서울의 미국 시민을 모두 대피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시 상황에서 경부선 철도에 30편의 철도를 마련한다는 것은 간단한 과제가 아니다. 이들 계획에는 한국 정부의 협조가 명시돼 있고, 1994년 당시에도 한국 외무부와 주한 미대사관, 한국 국방부와 주한미군 사령부 사이에 상설 채널을 열어둔 채 NEO 계획 협력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상황이 발생했을 때 100% 가동될지 여부는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유사시 대피계획이 미국 시민권자 전체를 대상으로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우선순위가 정해져 있다. 이는 베트남, 이라크 등 미국이 참전한 주요 해외분쟁지역의 민간인 소개 당시에도 확인된 바 있다. 우선은 주한미군 가족이 1차 대상이며 국방부, 국무부 소속 민간 관리와 그 가족이 2차 대상이다.

이들 우선대상자가 성남공항에서 바로 주한미군이 제공하는 항공편을 이용해 일본 등지로 향하는 부속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 다음이 기타 미국 시민권자이고, 마지막이 미국 시민권자의 직계가족이다. 부산으로 가는 열차편이나 일본으로 가는 항공편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할 경우에는 미국 시민권자라고 해도 대상자가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1990년대 이후 이어진 해외유학과 원정출산 붐으로 서울에는 ‘미국 국적의 한국인’이 많이 살고 있다. 부모는 모두 한국인이지만 아이만 미국에서 출생해 시민권을 가진 경우다. 이 경우 개념적으로는 아이만이 대피계획에 포함되고, 운송수단에 충분히 여유가 있을 때에만 그 직계가족이 포함되는 셈이지만, 실제로는 대피수단을 제공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듯하다.

또 한 가지 쟁점은 미국이 아닌 외국인에게 어느 선까지 대피수단을 제공할 것인지의 문제. 주한미군 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임하고 있어 유사시 주한미군이 제공하는 대피계획에는 다른 유엔군사령부 참여국의 군인 가족이나 대사관 직원들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국제법적 해석이 가능하다. 미국 시민의 최종 수용을 맡은 일본의 주한 교민들도 마찬가지. 전통적으로 미국 정부는 다른 외국인들의 대피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일본 등 다른 국가들과도 별도 협약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NEO가 가동되는 시점의 문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1990년대 이전의 NEO는 전시 증원 병력이 타고 오는 수송기를 대피수단으로 상정했다. 미군의 전시 증원은 크게 3단계로 진행되는데, 이 가운데 지상군의 본격 증원은 마지막 단계인 TPFDD(시차별 부대전개제원)에서 이뤄진다. 뒤집어 말하자면 NEO는 실제로 전쟁이 벌어져 데프콘1이 발령돼야만 가동될 수 있었던 셈이다.

미국 측 정부 당국자들의 회고에 따르면, 이렇듯 ‘최후의 순간까지’ 미뤄둔 시간 설정은 대피계획 가동이 한반도 위기를 심각하게 증폭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미국인들이 대피에 나서면 이는 곧 전쟁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가 되므로, 이를 본 북한이 최악의 경우 선제공격에 나설 가능성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한국 내 미국민 10만명 유사시 일본으로 대피시킨다”

1차 북핵 위기 당시 북핵 특사였던 로버트 갈루치(왼쪽)와 국무부 북한담당관 조엘 위트. 두 사람은 ‘Going Critical’(2004)의 공저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 데프콘1이 발령되면 서울에서 대규모 인원을 소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공황상태에 빠진 서울 및 수도권 거주자들의 피난행렬 때문에 성남공항 등 1차 집결지에 도착하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1994년 주한 미 대사관은 철수작전 착수시점이 예상보다 앞당겨질 수 있음을 워싱턴에 거듭 경고했다.

당시 국무부는 NEO 가동시점의 문제를 검토하는 태스크포스를 설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백악관과 국무부의 검토 결과는 미국이 북한에 대한 병력 증강을 결정한 이후에야 NEO가 가동되리라는 사실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 구체적인 시점은 막상 닥친 상황에 따라 가변적임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데프콘이 어느 단계로 올라가면 NEO가 가동된다는 식의 기계적인 매뉴얼은 존재하지 않는 셈.

실제 전쟁 나기 전엔 실행 가능성 낮아

이는 1994년에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한 미 대사관이 NEO 가동 재가를 요청하는 공문의 초안 작성에 착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게리 럭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나 제임스 레이니 당시 주한 미 대사도 NEO 가동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알지 못했다는 회고가 이를 방증한다.

럭 사령관의 부관들은 “사령관의 애견이 서울에 계속 남아 있는지를 꾸준히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농담을 주고받았고, 레이니 대사는 마침 자신을 찾아와 있던 딸과 손자들에게 귀국하라고 미리 말해두기도 했다.

이렇듯 상황은 극단적으로 치달았지만, 이후 전개는 익히 아는 바와 같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긴장은 가까스로 한숨을 돌렸고 백악관은 병력 증강과 영변 제한공격, NEO 프로그램의 가동에서 한발 물러선다. 이어지는 협상을 통해 미국과 북한은 제네바협정을 맺어 1차 핵 위기를 마무리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한 가지 사실이 명확해진다.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 정부는 이미 NEO 프로그램을 매우 정교하게 다듬고 실행훈련도 마쳤지만, 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는 시점까지 이를 가동하지 않았다. 연일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상당수 외국인이 서울을 떠났으며, 자체 철수계획을 검토하는 외국계 기업이 속출한 데다, 각국 대사관이 만일을 대비해 항공편을 예약해두던 시점까지도 미국 정부는 NEO를 가동하지 않았다.

많은 미국인이 한국에 체류 중임을 알려 대피계획에 등록하느라 대사관 전화를 불통으로 만들었지만, 백악관의 판단은 끝까지 미뤄졌다.이는 만에 하나 한반도 위기지수가 더욱 고조되고 전쟁 발발이 현실적인 우려로 떠올라도 미국이 자국민 소개계획을 먼저 가동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전적인 말로 표현하자면 ‘미국은 한국을 쉽게 떠나지 않는다’고 할까. 앞서 봤듯 미국 정부는 NEO의 가동이 한반도에 얼마나 심각한 위기 증폭 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 충분히 검토한 바 있으며, 이를 최후의 시점까지 미룬 전례도 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서해상에서 남북간 무력충돌이 벌어진다고 해도, 미국이 이를 계기로 NEO를 가동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NEO의 가동 여부로 한국에 대한 투자 리스크를 가늠하려 했던 서두의 외국계 투자회사 관계자의 생각이 별로 유용하지 못해 보이는 이유다. NEO가 가동될 즈음 이미 한국의 경제지표는 전시(戰時)에 준하는 바닥을 헤매고 있을 테고, 아마 그 관계자는 벌써 서울을 떠나고 없을 테니까 말이다.



주간동아 2009.07.14 694호 (p50~53)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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