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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두 번 우는 보이스 피싱 피해자들

잘못 입금된 돈 돌려받기 너무 복잡 … 민사소송 이겨도 전액 반환 어려워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두 번 우는 보이스 피싱 피해자들

두 번 우는 보이스 피싱 피해자들

보이스 피싱을 당해 일단 돈이 이체되면 대부분 범인들에 의해 금방 인출된다. 돈이 이체된 통장에 남아 있다 해도 피해자가 다시 돌려받기는 쉽지 않다.

#. 5월 이모(61) 씨는 카드가 분실됐으니 비밀번호를 바꿔야 한다는 전화에 그만 비밀번호를 상대방에게 알려주고 말았다. 통장에서 500만원이 넘어가는 순간 보이스 피싱임을 알게 됐고, 이씨는 경찰에 신고하는 동시에 거래 은행에 지급정지를 신청했다. 즉각적인 조치 덕에 다행히 돈은 빠져나가지 않았지만 이씨는 그 돈을 바로 찾지 못했다. 은행에서는 돈을 돌려줄 권한이 없으니 재판을 거치라고 권했다. 이씨가 확정판결을 받아 다시 돈을 찾으러 간 것은 11월. 하지만 그때도 이씨는 돈을 찾을 수 없었다. 지급정지된 대포통장 명의자가 세금을 체납해 관할 세무서에서 이 돈을 압류해버렸기 때문이다.

우체국 택배, 보험금 환급, 수도요금 감면, 정치 및 사회 현안 이용, 검찰 사칭까지 보이스 피싱은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이에 비례해 피해 사례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2006년 6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보이스 피싱 관련 접수 사건은 1만 1648건이고, 피해액은 1189억원에 이른다. 보이스 피싱을 통해 돈이 피해자에게서 범인에게로 이체되면 보통 몇 번의 계좌이체를 거쳐 세탁이 이뤄진다. 이때 이용되는 통장은 대부분 대포통장이며 명의자들은 자신의 통장이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피해자가 사기를 당한 순간 범인들은 바로 돈을 인출해가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고 지급정지 신청을 하더라도 늦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돈이 빠져나가지 않았어도 다시 돈을 되찾기는 쉽지 않다. “피해자에게 거꾸로 이체해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겠지만 법리적으로 여간 복잡하지 않다.

입금되면 돈 소유권 범인에게 넘어가

일단 통장에 입금되면 그 돈의 원인관계를 떠나 소유권은 범인에게 있다. 국민은행 준법지원팀 박옥자 팀장은 “법적으로 예금은 돈이 이체돼 예금원장에 입금이 기록된 순간 성립된다. 대포통장으로 잘못 들어갔든, 정당하게 들어갔든 은행이 임의로 통장에서 돈을 빼내 피해자에게 돌려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피해자가 범인, 대포통장 명의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및 부당이득반환의 민사소송을 통해 돈을 되찾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민사소송을 하는 데 6개월 이상 걸릴 뿐 아니라, 소송을 통해 ‘이체된 돈이 사기로 인해 잘못 입금된 돈’이라는 확정판결을 받는다 해도 돈을 돌려받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보이스 피싱의 경우 대포통장이 악용되는데, 대포통장 명의를 빌려준 사람은 대부분 신용불량자다. 지급정지 신청을 한 경우에도 대포통장 명의자가 세금 등을 체납했다면 원인관계를 떠나 국가도 국세체납에 대해 채권을 갖게 된다. 국세청 및 관할 세무서에서는 이를 근거로 일단 대포통장으로 입금된 돈을 압류할 수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개개인의 사정을 고려해 세금 체납자에 대한 압류를 부분적으로 풀 수는 없다. 피해자가 세금 체납자와 짜고 하는 일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돈을 돌려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피해자가 세무서에 고충을 내면 세무서 산하 보호위원회에서 검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법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개인 처지에서는 억울하겠지만 국가도 법적으로 정당한 채권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돈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배당문제가 제기된다. 확정판결을 받고 가더라도 국세청 및 관할 세무서에서는 압류한 돈을 피해자에게 전액 돌려줄 수 없는 것이다. 보이스 피싱을 비롯한 여러 금융 사건을 다룬 법률구조공단 중앙지부 민선향 변호사는 “범인 통장에 있는 돈에 대해서는 피해자와 국가가 동시에 권리를 갖기 때문에 누가 우선순위에 있는지를 따지게 된다”며 “확정판결을 받고 경매법원에서 집행절차를 거치게 될 텐데, 일반적으로 국세가 우선순위이기 때문에 피해자는 자신의 돈을 전부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절차에 피해자들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보이스 피싱을 당해 넘어간 돈은 일종의 장물인데, 이 돈에 대해 국가가 권리를 주장해 일부밖에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다 보니 보이스 피싱에 대한 신속한 피해자 구제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피해자의 재산을 돌려주는 ‘압수물 환부’나 범죄로 인한 재산상의 피해를 별도의 소송 없이 형사재판에서 결정하는 ‘배상명령제도’를 활용할 것을 조언하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특별법 제정, 신속한 구제책 필요

민 변호사는 “압수물 환부의 경우 계좌 압수 자체는 가능해도 돈 인출은 압수영장만으로는 부족하다. 배상명령의 경우에도 피고인의 배상 책임 유무 또는 책임이 명확해야 하는데, 보이스 피싱의 주범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실효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이 취하는 대책은 보이스 피싱에 대한 대국민 홍보, 일일 계좌이체 한도 제한, 외국인 명의 계좌개설 자격요건 강화 등 간접적인 것들이 전부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현행법하에서는 소송을 통해서만 돈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에 피해자가 구제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일본처럼 특별법을 제정해 신속하게 구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본은 지난 6월부터 보이스 피싱 범죄 계좌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60일이 지난 뒤에도 예금주가 나타나지 않으면 금융기관이 피해자의 신청에 따라 예금을 돌려주는 ‘계좌이체사기 피해자 구제법’을 도입했다. 한국에서도 17대 국회 때 일부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관련법 도입을 추진했으나 사유재산권 침해 문제로 위헌 논의가 제기되면서 흐지부지된 상태다.

보이스 피싱에 대한 구제가 신속히 이뤄졌다면 이씨는 6개월의 민사소송을 겪지도 않았을 테고, 피해금액 전액을 구제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보이스 피싱을 당하지 않는 것이 먼저겠지만, 보이스 피싱을 당한 경우 피해자에 대한 신속한 구제 절차가 뒤따라야 제2, 제3의 이씨 같은 피해자를 막을 수 있다.



주간동아 2008.12.16 665호 (p28~29)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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