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6

2016.12.07

국제

유럽 정치권 풍향계 프랑스 대선

4파전 양상…극우정치인 르펜, 엘리제궁 입성 가능성도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6-12-06 11: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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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 장미(blue rose)’는 ‘있을 수 없는 것’ ‘불가능한 것’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장미 종류가 2만여 종이나 되지만 파란 장미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전자 조작 기술로 파란 장미가 탄생했다. 파란 장미의 꽃말도 ‘기적’이 됐다.

    프랑스 대통령선거(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가 11월 16일 선거본부에서 출정식을 갖고 파란 장미를 선거운동 상징물로 쓰겠다고 밝혔다. 르펜 대표의 의도는 대선에서 기적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파란색은 우파의 상징색이고, 장미는 좌파인 사회당을 대표하는 꽃이다. 반이민·반난민·반이슬람을 주장하는 르펜 대표는 “낡은 좌파와 우파를 모두 뛰어넘자”고 주장해왔다. 유럽의 대표적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은 2014년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26% 득표율로 프랑스 제1당에 올랐으며, 같은 해 9월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의원 2명을 당선시키면서 상원에 처음 입성했다. 국민전선은 지난해 12월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도 예상을 깨고 1위에 올라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중도우파 공화당 후보 유력

    르펜 대표는 2012년 대선 1차 투표에서 17.9% 득표율로 3위를 차지해 결선 투표에 진출하지 못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르펜 대표는 2017년 4월 23일 대선 1차 투표에서는 1위 또는 2위를 차지해 결선에 진출하지만, 5월 7일 결선 투표에서 중도우파 후보에게 패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미국 대선에서 여론조사가 빗나갔듯 이번 예측이 어긋날 가능성도 있다. 장피에르 라파랭 전 프랑스 국무총리는 “여론조사는 대부분 르펜 대표가 예선을 통과해도 결선에선 패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이제 그런 전망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르펜 대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종전까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던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면서 “프랑스 국민도 미국처럼 테이블을 뒤집어엎길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또한 “내년 대선에서 승리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트리오를 구성하면 세계평화가 올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르펜 대표는 여느 유럽 지도자와 달리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했고, 유럽연합(EU)과 갈등을 빚는 푸틴 대통령에게도 우호적이다.  

    르펜 대표의 급부상에 중도우파이자 제1야당인 공화당(대중운동연합의 후신)이 가장 강한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공화당은 11월 20일 대선에 나갈 예비후보   7명에 대한 경선 1차 투표를 실시했다.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가 44.1%를 얻어 1위, 알랭 쥐페 전 총리가 28.6%로 2위를 차지하면서 11월 27일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 결선 투표에서 피용 전 총리는 66.5% 득표율로 33.5% 지지를 받은 알랭 쥐페 전 총리를 압도했다.



    대처리즘 신봉자를 자처하는 피용 전 총리는 중도우파에서도 오른쪽에 가까운 정치인이다. 강경 시장주의자인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동성결혼을 반대해왔고, 이민 문제에도 단호한 쪽이다. 외교정책도 친러시아 성향을 보여왔다. 피용 전 총리가 부상한 것은 국민전선과 르펜 대표의 득세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자동차 경주를 즐기는 피용 전 총리는 1981년 27세에 최연소 하원의원으로 당선하면서 정계에 입문했고 노동·복지부 장관 등을 거쳤으며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총리를 지냈다.

    에마뉘엘 마크롱 전 경제산업부 장관도 만만치 않은 후보다. 마크롱 전 장관은 파리 정치대학과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한 뒤 투자은행인 로스차일드를 거쳐 2012년 대통령실 부실장을 맡았고, 2014년부터 올해 8월 말까지 경제산업부 장관으로 일하다 대선에 출마하려고 사임했다. 대통령실 부실장 시절 마크롱은 “상위 1%에게 75%의 고(高)세율을 부과하겠다”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대선공약을 철회시키고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게 400억 유로(약 49조9940억 원) 세금을 감면해주는 ‘책임 협약’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만 36세에 경제산업부 수장이 된 마크롱 전 장관은 지난해 경제활성화를 위해 파리 샹젤리제 같은 관광지구 내 상점의 일요일·심야 영업 제한을 완화하는 경제개혁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사회당의 대표 노동정책인 35시간 근무제 개정도 주도했다. 한편 마크롱 전 장관은 4월 현직 장관임에도 좌·우파를 아우르는 정치운동단체인 ‘앙 마르슈(en marche·전진)’를 출범했다. 앙 마르슈의 회원은 9만6000명에 달한다. 마크롱 전 장관은 기성 정치에 실망한 사회당과 공화당의 중도파 유권자 표를 끌어올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나는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다”라면서 “기존 정치에 맞서 민주혁명을 일으키겠다”고 주장해왔다. 



    올랑드 대통령 지지율 폭락

    집권 여당이자 중도 좌파인 사회당은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율 폭락으로 자칫하면 정권을 내줄 위기에 직면했다.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때 4%까지 하락했다 지금은 10%대에 머물고 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저치다. 올랑드 대통령이 인기가 없는 이유는 실업률이 10%대를 기록하는 등 경제상황이 나쁘기 때문이다. 특히 청년(15〜 24세) 실업률이 25.1%로 2012년 이후 최고치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잇단 테러 사태로 국민이 불안감을 표출하며 치안 부재를 비판해왔다.

    또 ‘르몽드’ 탐사보도 전문기자 2명이 10월 올랑드 대통령과 인터뷰 내용을 묶어 발간한 ‘대통령이 이걸 말하면 안 되는데’라는 제목의 대담집도 문제가 되고 있다. 올랑드 대통령은 이 책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화학무기로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의혹을 받을 때 자신이 알아사드 대통령 암살을 지시하고 그의 본거지를 파괴할 계획을 세웠다는 등 각종 비화를 털어놓았다. 이 내용은 국가기밀이었다. 공화당 피에르 를루슈 의원은 올랑드 대통령이 국가기밀을 누설해 안보를 위태롭게 했다면서 헌법 제68조에 따라 탄핵안을 발의했다. 대통령 임기가 6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아 탄핵안이 가결될 가능성은 낮지만, 올랑드 대통령에게는 상당한 타격이 되고 있다. 올랑드 대통령은 다음 달 대선 출마 여부를 결정할 예정인데, 만약 출마 포기를 선언한다면 이는 프랑스 역사상 현직 대통령이 재선을 포기하는 첫 사례가 된다.

    올랑드 대통령이 출마를 포기할 경우 마뉘엘 발스 총리를 비롯해 아르노 몽트부르 전 경제산업부 장관, 마르틴 오브리 릴 시장 등이 사회당 대선후보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2014년부터 총리직을 맡아온 발스 총리다. 스페인인 아버지와 스위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성인이 된 이후인 20세에야 프랑스로 귀화했다. 발스 총리는 국립행정학교를 졸업한 후 1986년 파리 일드프랑스 지역구 시의원에 당선했으며, 2001년부터 11년간 에브리 시장을 역임했다. 2012년 내무부 장관이 된 후 불법이민자를 강제 추방해 ‘사회당의 사르코지’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4파전 양상을 보이는 프랑스 대선에서 누가 당선하든지 앞으로 유럽 정치권의 풍향계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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