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6

2016.12.07

문화

한류 발목 잡는 ‘금한령’의 실체

사드 배치 발표 후 본격화, ‘차이나머니’로 국내 연예계 쥐락펴락…오래가면 중국도 손해

  • 배선영 스포츠조선 기자 sopiaphro@naver.com

    입력2016-12-02 16: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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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연예계가 중국의 ‘금한령(禁韓令)’으로 꽁꽁 얼어붙고 있다. KBS 2TV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중국 내 한류를 재점화하면서 축제 분위기로 달아오르던 상반기와는 대조적인 분위기다.

    금한령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8월부터.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로 한중 양국의 외교적 대립이 커진 직후의 일이다. 당시 인터넷 공간에서는 중국 정부가 규제하는 한류 연예인과 이들이 출연한 드라마 명단이 확산되고 있다는 괴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금한령이라는 것은 들은 바 없다”고 공식적으로 부인했으나 뒤이어 중국의 사드 배치 반대를 언급하며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내비쳤다.

    국내에서 체감하기로 금한령은 결코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8월 배우 유인나는 중국 후난위성TV에서 방송될 드라마 ‘상애천사천년2 : 달빛 아래의 교환’에서 갑작스레 하차했다.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중국 제작사와 협의 중이고, 그쪽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며 끝까지 조심스러워했지만 유인나는 결국 3분의 2가량 촬영한 드라마에서 하차했다. 유인나의 빈자리를 메운 것은 대만 배우 궈쉐푸(郭雪芙)다. 또 한중 합작 드라마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KBS 2TV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의 주연배우 김우빈과 수지는 예정됐던 중국 팬미팅이 이틀 앞두고 돌연 취소되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 



    중국 심의로 국내 방영 일정까지 미뤄져

    중국에서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 한류스타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드라마 ‘대장금’으로 중국에서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배우 이영애이지만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가 중국 동시 방영과 관련해 현지 심의가 미뤄지면서 국내 방영까지 차질을 빚을지 모르는 상황에 처했다. 당초 내년 1월 한중일에서 동시 방영될 예정이었지만 아직까지 중국 측이 “심의 중”이라며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 한류스타 이민호, 전지현으로 무장한 SBS TV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은 애초 중국 대형 콘텐츠 유통사와 역대 최고 수출가 계약을 맺으려 했으나 사드 배치 결정 후 도장을 찍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양의 후예’ 성공 후 중국의 한 스마트폰 모델로 나섰던 배우 송중기는 몇 개월 만에 중화권 배우에게 그 자리를 뺏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록 공식화되지 않았으나 금한령은 분명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 엔터테인먼트사 관계자들은 “최근 중국에서 심의를 통과한 작품이 거의 없으며, 유명 한류스타가 출연할수록 오히려 제재 수위가 높다” “상반기부터 중국 파트너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사업이 있었는데 현재로선 상황을 낙관하기 어렵다” “소속 연예인들의 중국 스케줄이 많이 줄었다. 현지 관계자들이 눈치를 보는 듯한 조짐이 감지된다” 등 각자가 체감한 금한령을 앞다퉈 말했다.

    앞으로 이런 현상이 심해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국 의존도가 상당히 높아졌다는 점이다. 중국 기업의 투자 및 합작 비율이 급격히 늘면서 국내 대규모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중국발(發) 이슈에 따라 주가가 출렁이기도 한다.

    실제로 11월 들어 금한령이 한층 강화됐다는 소문이 돌면서 국내 주요 영화배급사인 쇼박스, CJ E&M을 비롯해 SM, YG, JYP 등 주요 엔터테인먼트사의 주가가 하락세를 보였다. 공동제작, 동시 방영, 판권 수입 등 다양한 형태로 중국과 합작을 꾀해오던 드라마 제작사는 당장 살림살이를 걱정해야 하는 실정이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그나마 영화는 국내에서 (흥행이) 터지면 제작비 수급이 가능하지만, 드라마는 제작비 충당부터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이다. 보통 방송사에서 절반을 부담하고, 나머지는 제작사에서 자체적으로 해외 세일즈나 PPL(간접광고) 등으로 채워야 한다. 최근 중국과 비즈니스로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는데 그 커넥션이 끊어진다고 생각하면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중동 지역으로 저변 넓혀야 

    요즘 국내 드라마 제작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생존을 위한 새판 짜기에 분주하다. 당장 한류스타의 개런티 및 제작비 조정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중국 자본이 투입된 후 몸값이 크게 높아진 한류스타보다 신인이지만 국내 인지도가 높은 배우를 캐스팅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한편 금한령이 오래가지 못하리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금한령이 공식화될 경우 국내 기업에 투자한 중국 기업의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최대 엔터테인먼트사인 화이브라더스는 국내 드라마 제작사 HB엔터테인먼트의 지분을 인수하고 심엔터테인먼트까지 품어 화제가 됐으며, 중국 알리바바 또한 SM엔터테인먼트의 지분을 사들이는 등 차이나머니의 국내 유입이 급격히 늘어났다. 국내 엔터테인먼트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 기업과 지분 나누기 및 인수합병 형태로 중국 자본이 이미 국내시장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금한령은 중국 측에도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중국 기업도 정부 눈치를 보느라 다소 움츠릴 뿐 금한령 분위기가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한류는 국내 경기활력의 원동력인 동시에 국가와 국가 간 문화 수교라는 점에서 정치적 한계점도 갖고 있다. 특히 지리적으로 밀접한 국가 사이에 정치적으로 예민한 돌발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금한령은 2012년 일본의 우경화와 혐한 분위기가 강화되던 시기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위기를 발판 삼아 국내 콘텐츠산업의 현주소를 겸허히 돌아보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한류스타를 여러 명 배출한 국내 엔터테인먼트사 관계자는 “금한령으로 국내 업계가 상당히 위축된 건 맞지만, 지난 몇 년간 거대 중국 자본이 들어오면서 국내 드라마업계에 거품이 많이 끼었다. 이럴 때 내수시장을 탄탄히 다지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소재와 수준 높은 콘텐츠 개발로 시장 다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최근 드라마 ‘굿 닥터’ ‘나쁜녀석들’ ‘동네변호사 조들호’ 등 다양한 콘텐츠가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미국시장에 수출됐고 중동지역에서 한류 반응이 일기 시작한 만큼, 아시아를 벗어나 다양한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콘텐츠로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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