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6

2016.12.07

사회

파란 약 구매한 파란 집의 진실

최순실發 ‘의료 게이트’, 해명할수록 논란만 키우는 靑…‘세월호 7시간’ 의혹 풀릴까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6-12-02 16:4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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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실 게이트’가 ‘의료 게이트’로 확산되면서 국민의 분노지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비선 자문의’의 주사제 대리처방에 이어, 청와대가 사용처가 불분명한 각종 전문의약품을 대량으로 구매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되는 모습이다.

    11월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청와대는 2014년 3월부터 올해 8월까지 총 31차례에 걸쳐 764건의 의약품을 구매했다. 이 목록에는 태반주사(라이넥주, 멜스몬주) 200개, 백옥주사(루치온주) 60개, 마늘주사(푸르설타민주) 50개, 감초주사(히시파겐씨주) 100개 등 미용주사제와 함께 리도카인염산염수화물 등 마취제 4종이 포함돼 있다.  

    의구심을 더욱 키운 것은 구매 목록에 포함된 발기부전 치료제인 한국화이자제약의 ‘비아그라정’(50mg 60정, 37만5000원)과 비아그라 복제약인 한미약품의 ‘팔팔정’(50mg 304정, 45만6000원)이다. 이 약품들이 구매 목록에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외신도 ‘청와대가 비아그라 구매처였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기사를 쏟아내 ‘국제적 망신’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특히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태를 ‘파란 집의 파란 알약, 그리고 파란 농담(blue joke·음담패설)’이라고 표현하면서 ‘비아그라가 독신인 여성 대통령의 새로운 스캔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초 고산병 치료제는 구매조차 안 해

    그럼에도 청와대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지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으로 국민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었다. 정연국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은 비아그라 구매 목적에 대해 “5월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을 앞두고 에티오피아 등 고산지대 국가를 방문할 때 사용할 고산병 치료제로 구매했으며, 실제 복용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순방을 6개월이나 앞두고, 그것도 고산병 치료제인 아세타졸아마이드 성분의 약(다이아막스정, 아세타졸정)이 따로 있음에도 굳이 비아그라를 구매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특히 의학 전문가들은 산소가 부족한 고산지대에서 비아그라를 복용하면 혈관만 확장될 뿐 체내 산소 공급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처럼 비아그라를 둘러싼 논란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자 이선우 청와대 의무실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추가 해명을 내놨다. 이 의무실장은 “2015년 4월 콜롬비아 보고타 방문 당시 휴대용 산소와 다이아목스, 덱사메타손 등 3종을 고산병 예방을 위해 준비했지만 예상외로 고산 증상을 호소하는 수행원이 많아 향후 고산지대 행사에 대한 추가 대책을 고민하게 됐고, 2016년 3월 멕시코와 5월 에티오피아 순방에 대비하고자 ‘실데나필’ 성분인 비아그라정과 팔팔정을 추가로 구매했다”고 밝혔다. 즉 미리 준비했던 고산병 치료제의 효과가 낮아 추가 약제가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번 해명 또한 의문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논란을 불러왔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청와대는 2013년부터 2015년 11월까지 정식 고산병 치료제인 다이아막스정과 아세타졸정을 구매한 적이 없다. 2015년 12월 비아그라 등을 구매할 때 고산병 치료제인 아세타졸정을 함께 사들였을 뿐이다.



    비아그라와 ‘국가안전보장’의 상관관계는? 

    그렇다면 비아그라는 과연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처방됐을까. 더욱이 비아그라 같은 전문의약품은 의약분업에 따라 약국 개설자가 아니면 의약품을 판매하거나 판매할 목적으로 취득할 수 없다. 그럼에도 심평원이 밝힌 청와대로 공급된 의약품 현황표를 보면 구매처는 대통령경호실, 청와대경호처, 대통령실, 청와대경비단 등 총 4곳으로 기록돼 있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법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심평원 자료에 써 있는 대로 대통령경호실 등에서 직접 구매하고 사용까지 했으면 일단 무면허 의료행위가 될 수 있고, 전문의약품을 처방전 없이 직접 조제한 것이기 때문에 약사법 위반에도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심평원 관계자는 구매처 기록에 대해 “의약품 도매상들이 신고한 자료 가운데 청와대 혹은 대통령경호실 등의 키워드를 입력해 찾아낸 사업자등록번호로 나머지 명세를 산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사업자등록번호로 실제 의약품 구매처도 알 수 있다는 얘기인 바, ‘주간동아’는 심평원 측에 “사업자등록번호를 공개해달라”고 몇 번에 걸쳐 요청했지만 심평원은 끝까지 알려줄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항간에는 대통령경호실이 아닌 대통령 치료를 담당하는 국군서울지구병원에서 비아그라 등을 구매해 처방했을 가능성도 제기되는 만큼 사업자등록번호의 실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정식 절차로 의약품을 구매했다 해도 의무실에서 경호원에게 직접 약을 조제해서 줬다면 이 또한 의약분업에 위배되는 사항은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의무실은 의사가 상주하는 곳이라 약 처방을 내릴 수 있어도 약 구매는 엄연히 약국에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약사법 제23조 4항에 해당하는 경우라면 의약분업 예외 사항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약사법 제23조 4항에는 의사 치과의사의 처방전 없이 조제할 수 있는 사항이 총 14가지로 명시돼 있는데, 이 중 13번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된 정보 및 보안을 위하여 처방전을 공개할 수 없는 경우’와 14번 ‘그 밖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 등 두 가지 정도가 청와대 의무실에 해당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해도 과연 비아그라 처방이 국가안전보장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대통령령으로 정하기만 하면 비아그라는 물론, 어떤 약물도 청와대 안으로 반입 가능하다는 점 또한 국민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하다. 한 의약품 전문가는 “이번 문제는 모든 것이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어떤 해명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소화제, 두통약 같은 상비약이 아닌 비아그라를, 그것도 몇백 개씩 사서 경호원들에게 나눠주려 했다니 황당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비아그라는 통념상 ‘해피 드러그’(happy drug·인생을 즐기는 약) 아닌가. 국민 세금으로 비타민주사, 비아그라 같은 약물을 구매했다는 것 자체가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또한 청와대는 ‘제2의 프로포폴’로 알려진 마취제 에토미데이트리푸로주도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신마취제로 분류되는 에토미데이트리푸로주는 수면내시경, 성형외과 수술 등에 사용되며 프로포폴과 유사한 효과를 지닌다. 만약 다량으로 사용할 경우 환각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자발적 호흡이 불가능한 응급상황에서 기관삽관술을 할 때 진정제와 근이완제로 쓰이며, 응급상황 시 신속하게 처치할 수 있도록 구매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청와대에서 발생하는 응급상황에 대비해 구매했다고 보기에는 양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 청와대는 2014년 11월과 2015년 11월 대통령경호실 명의로 각각 10ml 20개(8만7880원), 10개(4만3940원)를 구매했다.



    청와대 내에서 간단한 수술도 가능

    2014년 6월에는 청와대경호처 이름으로 ‘엠라5%크림’도 구매했는데, 이것 역시 성형외과 시술을 위한 마취크림으로 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다. 그럼에도 이선우 의무실장은 “주삿바늘 삽입 시 또는 표재성 외과적 처치 시 피부 표면을 마취하는 데 사용하는 약물로, 짧은 시간 통증 완화를 도모할 수 있는 약제”라고 밝히면서 “거듭 말하지만 청와대 의무실은 피부과나 성형외과 시술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역시 거짓 해명일 개연성이 높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과거 대통령 주치의, 자문의의 증언에 비춰볼 때 대통령은 주로 숙소인 관저에서 진료를 받고, 의무실에서는 간단한 수술까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눈꺼풀처짐(안검하수)을 교정하려고 받은 쌍꺼풀수술도 청와대에서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기에 “청와대 의무실은 시술을 할 수 없다”는 이 의무실장의 말이 오히려 이상하게 들린다.

    무엇보다 청와대 내 시술은 ‘세월호 7시간’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내에서 미용 관련 시술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이는 만큼 그 열쇠를 쥐고 있는 곳 또한 청와대 의무실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청와대 의무실은 대통령 관저에서 50m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하며, 청와대 의무실장과 간호장교가 교대근무로 24시간 상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의무실장은 통상 국군서울지구병원 소속 군의관이 맡으며 간호장교도 그곳에서 파견된다.

    한편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청와대 의무실에 근무하던 간호장교가 당초 알려진 1명이 아닌 2명인 것으로 밝혀져 새로운 논란에 휩싸였다. 처음 국방부는 세월호 참사 당일 근무한 간호장교 조모 대위가 정상 절차를 거쳐 8월 미국으로 연수를 갔다고 밝히면서도 또 다른 한 명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치권에서 간호장교가 국내에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혼란이 일자 국방부는 뒤늦게 나머지 한 명은 현재 전역해 민간인 신분임을 밝혔다.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 의무실에서 근무했던 간호장교 출신 신모 씨는 11월 29일 현재 자신의 근무지인 심평원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참사 당일 의무실장의 지시로 부속실에 대통령 가글액을 전달했고, 프로포폴이나 태반주사 등 주사 처치를 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씨의 고백은 또 다른 의문을 낳는다. 박 대통령의 ‘비선 자문의’로 밝혀진 김상만 전 녹십자아이메드 원장이 서울 강남구보건소 조사 과정에서 “서울 강남 차병원 계열 차움의원에서 근무할 당시 최순실, 최순득 이름으로 대통령의 주사제를 대리처방한 뒤 약을 직접 청와대에 가지고 들어가 정맥주사는 간호장교가, 피하주사는 (내가) 직접 대통령에게 놓았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회견에서 신씨는 “지난해 2월까지 2년 가까이 청와대 파견 근무를 했는데 대통령에게 주사 처치를 한 적이 없다. 그분이 왜 우리 얘기를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말이 엇갈리는 건 이 2명만이 아니다. 이번 ‘의료 게이트’의 핵심 인물 모두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먼저 박 대통령의 두 번째 주치의였던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은 “청와대에서 의무실장, 주치의, 간호장교가 배석한 상태에서 진료를 봤다”는 김상만 전 원장의 주장에 “김 전 원장은 주치의를 거치지 않고 청와대에 들어왔으며, 태반·백옥주사 등은 적어도 내가 배석한 자리에서는 없었다”고 밝혔다. 또한 서 원장은 “주치의 자문을 통해 비아그라를 구매했다”는 이선우 의무실장의 주장에 대해서도 “주치의는 비상근으로, 모든 약 구매는 의무실장이 진행하며 주치의는 결재선상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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