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3

2016.11.16

스포츠

제왕적 감독 가고 프런트 야구 왔다

한화는 박종훈 단장 영입, 김성근 감독 입지는 축소

  •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lkh@naver.com

    입력2016-11-11 17:3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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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 베어스의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 통합우승으로 끝난 2016 KBO리그는 포스트시즌 종료 전후 두 건의 충격적인 발표가 있었다. 첫 번째는 넥센 히어로즈의 장정석(43) 신임 감독 선임이다. 만 43세 젊은 감독의 탄생부터 이채롭다. 그러나 이보다 더 충격적 혹은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따르는 이유는 장 감독이 코치 경험이 전혀 없어서다. 장 감독은 현역시절 프로에서 8년을 뛰었다. 스타플레이어는 아니지만 대졸 선수로 프로에서 8년간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던 것은 팀에서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현역기록은 통산 580경기에서 타율 0.215, 176안타, 7홈런, 75타점. 2군에 머문 시간이 많았고 주로 백업 수비수로 출장했다. 은퇴 후 장 감독은 매니저로 오랜 시간 활동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감독을 매니저라고 부르지만, KBO리그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인다. 매니저는 클럽하우스와 원정에서 살림살이를 책임져야 해 팀 내에서 가장 고된 자리로 꼽힌다. 식사, 간식, 빨래, 숙박 등 챙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코치 경험 없는 감독

    장 감독은 몇 안 되는 프로선수 출신 매니저였다. 넥센 히어로즈가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한 후 메인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자금난에 시달릴 때 열성을 다해 뛰며 이장석 대표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운영팀장으로 승진하며 능력을 인정받았고, 염경엽 감독이 팀을 떠나자 감독으로 선임됐다.

    미국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에는 코치 경험이 없는 감독이 이미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천문학적 연봉을 받는 선수들을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야구단에는 선수뿐 아니라 수십여 명의 코치가 있는데, 이들을 장악하는 일이 결코 녹록지 않다. 그동안 KBO리그가 경험 많고 코치로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이를 감독으로 찾았던 이유다. 염경엽 전 감독 역시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아니다. 장 감독처럼 은퇴 직후 매니저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염 전 감독은 운영팀장은 물론, 수비 및 주루 코치로 이미 능력을 인정받은 상태에서 감독이 됐다. 장 감독의 취임은 넥센이 국내에서 메이저리그 시스템 이상의 프런트 야구를 하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장 감독은 “코치 경험은 없지만 우리 팀만의 시스템을 신뢰한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넥센은 이장석 대표라는 오너 경영인이 존재하는 팀이다. 이 대표는 그동안 1군 엔트리 및 선수 보직에 깊이 관여해왔고 종종 염 전 감독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장 감독은 매니저와 운영팀장을 맡으며 이 대표에게 가장 신임받는 프런트로 꼽혀왔다. 넥센은 앞으로 메이저리그처럼 감독은 1군 경기 지휘에만 집중하고 프런트가 선수단 구성 및 육성 등을 맡는 시스템을 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장 감독의 취임에 이어 두 번째 충격적인 발표는 한화 이글스의 박종훈(57) 단장 영입이다. 한국시리즈 종료 직후인 11월 3일 발표된 박 단장의 영입 소식은 그동안 온갖 추측이 난무하던 김성근(74) 감독의 유임과 구실의 대대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장 감독이 KBO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코치 경험이 없는 감독이라면 박 단장은 사상 첫 감독 출신 단장이다.

    김성근 감독은 그동안 한화에서 메이저리그로 치면 단장과 감독에 팜 디렉터, 스카우트 디렉터 구실까지 더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었다. 홈경기 때마다 퓨처스(2군) 투수들은 1군 경기를 앞둔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불펜에서 김 감독에게 직접 지도를 받고 다시 퓨처스 서산야구장으로 향했다. 김 감독이 원하는 선수는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바로바로 영입됐다. 트레이드도 직접 주도했다. 그러나 계약기간 1년을 남기고 70대 노장은 전혀 다른 환경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일본에서 마무리 훈련을 지휘하던 김 감독은 한국시리즈 기간에 서울로 호출됐다. 경질 분위기가 감지됐던 이유다. 그러나 한화는 김 감독에게 이 같은 환경 변화를 직접 설명했다. 한화는 “업무 영역을 확실히 구분해 김성근 감독은 1군 감독 본연의 임무에 집중하고, 박종훈 단장은 내부 유망주를 발굴하고 선수단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등 전반적인 운영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사촌인 김신연 한화 이글스 대표이사의 결정이다.



    첫 감독 출신 단장

    박 단장은 SK 와이번스와 두산의 퓨처스 감독으로 재임하면서 선수 육성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지도자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그는 LG 트윈스 감독을 역임했고, NC 다이노스에서 육성 이사로 프런트 경험도 쌓는 등 다양한 경력을 자랑한다. 앞으로 김 감독과 관계 설정이 큰 숙제지만, 프로야구 역사상 첫 감독 출신 단장의 탄생에 여러모로 기대가 모아진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때부터 코치를 맡았던 김성근 감독은 이제 1군 경기에만 주력하는 메이저리그 시스템에 처음으로 적응해야 한다. 그동안 스스로 구단 사장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그 이상의 권한을 원했지만, OB 베어스 감독 시절 선수였던 박종훈 단장이 구성하는 선수 전력에 맞춰 경기를 지휘하는 일만 남았다.

    프런트 야구는 세분화한 통계가 전력운용에 반영되며, 그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단장의 계약에 따라 감독이 선수 보직에 관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만큼 유니폼을 입은 감독은 그라운드, 야전 사령관 구실만 하고 나머지는 단장이 결정하는 구조다.

    KBO리그도 점차 메이저리그 시스템을 지향하며 감독 권한을 축소하는 흐름이다. 한국시리즈 2연패를 달성한 두산도 프런트의 권한이 큰 팀이다. 롯데 자이언츠 역시 올 시즌 중반 갑자기 외국인 코치들을 1군에 대거 합류케 해 프런트의 강한 입김이 외부로 드러났다. 한국보다 감독 권한이 더 막강하던 일본 프로야구도 프런트 야구 바람이 거세다. 올해 저팬시리즈 정상에 오른 니혼햄 파이터스는 야구기자 출신인 요시무라 히로 단장이 팀 설계와 육성 등 전반적인 부분을 모두 관장하고 있다. 기자 시절 메이저리그에서 연수를 받은 요시무라 단장은 일본 프로야구에 메이저리그 단장직을 도입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과거 카리스마 강한 감독이 팀 전체를 이끌어갔다면, 이제는 100명에 가까운 선수를 어떤 방향으로 키우고 어떻게 연속적으로 세대교체를 이어갈지 등을 고민하고 시행할 철저한 시스템 및 운영 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다. KBO리그의 프런트 야구는 감독 세대교체, 전문화된 프런트 인력의 등장과 함께 그 비중이 점차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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