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3

2016.11.16

커버스토리

단기필마 반기문 딱한 처지

최순실 게이트 유탄 맞고 지지율 추락, 제3지대 유턴으로 기사회생?

  • 유창선 정치평론가 yucs1@hanmail.net

    입력2016-11-11 16:3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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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실 게이트’는 멀리 미국 뉴욕에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까지 높은 파도에 맞닥뜨리게 하고 있다. 양파처럼 까면 깔수록 나오는 충격적 진상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만 뒤흔드는 것이 아니라, 줄곧 선두를 달리던 반 총장의 대권주자 지지율까지 떨어뜨리고 있다. 그동안 정치에 발을 딛지 않고도 대권주자로서 평탄한 길을 걸어온 반 총장이 지금 최대 고비를 맞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19대 대통령선거(대선)의 변곡점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지지율 하락 이유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10월 31일부터 11월 4일까지 남녀 유권자 252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보면 반 총장은 일주일 전보다 3.8%p 떨어진 17.1%를 기록하며 대선주자 지지율 선두 자리를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에게 내줬다. 문 전 대표는 일주일 전보다 0.6%p 오른 20.9%로 2주 연속 상승한 반면, 반 총장은 3주 연속 하락해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1.9%p). 같은 기관의 9월 넷째 주 여론조사 결과에서 반 총장 지지율이 26.8%였으니 한 달여 사이 9.7%나 하락한 것이다. 따라서 이는 문 전 대표의 의미 있는 상승이라기보다 반 총장의 지속적 하락에 따른 선두 교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파문이 불거지면서 반 총장의 지지율이 하락세로 접어든 것은 분명하다. 그동안 반 총장은 차기 대선에서 새누리당 후보, 그것도 친박(친박근혜)계가 미는 후보로 인식돼왔다. 그러니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폭락이 새누리당 지지율 폭락을 낳았고, 다시 반 총장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는 도미노 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더구나 반 총장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친박은 이제 ‘폐족’이 되다시피 한 상황이다.

    반 총장 처지에서는 이 정도 지지율이라도 나오는 것이 다행일 수 있다. 아직까지 대선판에 뛰어들지 않고 유엔 사무총장 자리를 지키며 거리를 두고 있으니 망정이지, 만약 반 총장이 새누리당에 발을 디딘 후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면 반 총장의 대선 도전은 아예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친박 핵심들과 악수를 하는 장면을 보이거나 새누리당 후보로 나서겠다고 말한 적은 없기에, 반 총장은 급변하는 정국 상황에 맞게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아직 갖고 있는 셈이다.



    지금 반 총장은 대선 출마 문제를 원점부터 하나씩 다시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동안은 집권 여당의 대선후보가 돼 무혈입성하겠다는 꿈을 꿨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순식간에 갈 곳이 없어진 셈이고, 오라고 적극적으로 손 내미는 곳이 있을지도 불확실해졌다. 특별한 자기 정치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정적인 지지층도 약한 반 총장이기에 사실 여론조사의 부침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에서 일단 추락하면 속절없이 무너지게 돼 있는 것이 ‘반기문 대세론’이었다. 야권이 전이나 지금이나 반 총장의 파괴력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지율이 계속 하락한다면 그는 대선 출마 자체를 재고할 수도 있다. 유엔 사무총장까지 지냈는데 대선에 뛰어들었다 괜스레 모양만 구길 위험이 크다고 판단되면 지금이라도 접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반 총장의 마음이 이미 저만큼 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회복불능의 추락 상태라면 모르지만, 어차피 새누리당 덕에 지지율이 뒤따랐던 것은 아니기에 개인의 인기로 이 고비를 넘어서겠다는 판단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래서 반 총장을 여전히 19대 대선의 상수로 보는 것이 현실적인 판단이다. 대선에 뛰어들겠다는 결심에 변함이 없다면 대선이 앞당겨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귀국을 늦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마친 후 비상 시국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실히 잡지 않으면 관심권 밖으로 밀려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친박에서 비박으로 건너가나

    하지만 그 경로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반 총장이 예정대로 내년 1월 중 귀국해 대선 행보에 나선다 해도, 바보가 아닌 이상 새누리당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이를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반 총장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정진석 원내대표는 11월 4일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당이 완전히 버림받게 생겼는데 이런 당에 반 총장이 오겠느냐. 누가 오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며칠 후 다시 “반 총장이 병든 보수의 메시아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반 총장에 대해 미련을 버린 모습을 보였다.

    아마도 반 총장은 귀국 후 새누리당과 거리를 두고 독자 행보에 나설 것이다. 어느 당에도 속하지 않은 ‘유엔 사무총장 출신 반기문’의 상품성으로 지지층을 넓혀가는 활동에 초점을 맞추려 할 테다. 그렇다고 이것이 새누리당과의 완전한 관계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 총장이 대선에 나간다면 여전히 야당보다 여당 쪽에 가깝다. 정권교체를 내거는 야당 쪽과는 정체성 차이가 클뿐더러, 후보가 차고 넘치는 야당 처지에서도 반 총장에게 내줄 자리가 없다. 반 총장을 원하는 곳이 있다면 야당을 상대할 후보가 마땅치 않은 여권 쪽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반 총장은 새누리당의 앞길이 어떨지 일단 지켜보려 할 것이다. 물론 친박이 끝내 당권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그런 새누리당에게는 반 총장도 눈길조차 주지 않을 테다. 폐족이 이끄는 당의 대선후보가 돼봐야 백전백패임은 상식이기 때문이다. 다만 새누리당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대단히 유동적이다. 만약 친박이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물러난다면 새누리당은 대대적인 수술에 들어갈 것이다. 비박(비박근혜)계가 주도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만들어져 당 이름도 바꾸고 박 대통령의 탈당, 친박 핵심 인물의 출당 조치까지 꺼내 드는, 천막당사 시절 이상의 비상요법이 시행될 수 있다. 그래야만 내년 대선을 정상적으로 치를 수 있다.

    그리하여 새누리당도, 더는 여당도 아닌, 친박의 흔적까지 지운 새 간판의 보수정당이 만들어진다면 그때는 반 총장 처지에서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그때는 당에 들어가 김무성, 유승민, 남경필 등 대권주자들과 경선을 치러 대선후보를 가리는 선택을 할 가능성도 있다. 아직은 이들 비박계 대선주자의 지지율이 높지 않기 때문에 반 총장으로서는 통 큰 경선이라는 한판 승부를 생각해봄직하다. 자기 세력이 약한 반 총장이 허허벌판에서 대선 출마를 도모하기보다 그래도 옛 여당 조직을 등에 업고 나서는 것이 대선을 치르기에 더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이대로 유지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만약 이정현 대표 등 친박 지도부가 막무가내로 버틴다면 비박계는 가만히 앉아 함께 무덤으로 가느니 차라리 원치 않던 분당의 길을 택할 수도 있다. 그러면 정치 보수세력은 대선 정국을 앞두고 분화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때 새누리당 간판을 쥐고 있는 친박당은 대선에서 사실상 의미 없는 존재가 될 테고, 비박 주도의 보수 신당이 그나마 대선에서 최소한의 경쟁력을 갖는 세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반 총장이 친박과 결별한 보수 신당세력과 손잡을 가능성은 열려 있다. 따라서 반 총장은 신당에 합류해 김무성-유승민-남경필 등과 경선을 치르든지, 아니면 독자 행보를 하다 마지막에 신당 후보와 보수 후보 단일화를 하든지 선택하면 된다. 그렇게 된다면 반 총장의 파트너가 친박에서 비박으로 180도 달라지는 셈이다. 정치란 그렇게 묘한 것이다.



    제3지대 평정도 쉽지 않아

    그러나 자신의 인기를 무기로 대선에 뛰어드는 반 총장이 성급하게 여권 세력과 손잡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대선 때면 새로운 제3 후보를 찾는 민심의 속성에 화답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자기 고유의 색을 띠며 나아가는 것이 유리하다. 비박계 정치세력이 당권을 잡거나 신당을 만든다 해도 그들이 국민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사실 비박계도 박근혜 정부가 이 지경까지 온 데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마찬가지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위장형 신장개업을 통해 살 길을 찾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아마도 보수정치의 새로운 주도 세력이 국민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는지 지켜보고 난 뒤에야 이들과 함께하는 문제에 대해 판단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새누리당이든 보수신당이든 기존 여당 세력과 연대가 여의치 않다고 판단될 때 반 총장이 갈 수 있는 곳은 제3지대밖에 없다. 반 총장이 제3지대에서 독자적인 세력화를 도모하며 지지율까지 호조를 보인다면 새누리당에서 필요한 세력, 그리고 다른 제3지대 세력을 사실상 흡수 통합하는 큰 그림을 그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혈혈단신인 반 총장이 그렇게 넓은 지대를 평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제3지대의 비박-비문(비문재인) 정치 세력도 저마다 강한 생존력을 지녔기에 호락호락하게 반 총장에게 평정되는 길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반 총장이 제3지대를 자신의 근거지로 삼는다면 새로운 정글에서 승부를 생각지 않으면 안 된다. 그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반 총장에게 뭔가를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반 총장이 새누리당 세력과 연대가 아닌, 제3지대에서 대표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선회한다면 관심을 모으는 것은 역시 ‘반기문-안철수’ 연대 가능성이다. 새누리당의 추락으로 문재인 전 대표가 선두를 달리는 판세가 계속된다 해도 사실 문 전 대표의 최종 본선 경쟁력이 어떨지에 대한 판단은 아직까지 유보적이다. 새누리당에서 이탈한 보수층이 내년 12월 20일 과연 문 전 대표에게 투표할 것인지, 아니면 “아무리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은 싫다”며 제3의 대안을 찾을 것인지는 여전히 중요한 변수다.

    그런 점에서 제3지대에서 개척 가능한 공간은 여전히 넓다. 하지만 그 공간을 살려내는 주자들의 역동성은 아직 미약한 편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는 국민의당 중심의 제3지대를 고수하고 있고, 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은 등장하자마자 최순실 씨에게 가린 형국이며, 그 밖의 세력은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런 마당에 ‘반기문-안철수-손학규’의 광범한 제3지대 연대가 구축되고 거기서 단일후보를 만들어낸다면 상당한 파괴력을 예상해볼 수 있다.

    최근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반기문 총장의 주위 분들이 최근 우리 당에도 노크를 한다”면서 “국민의당에 온다면 공정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물론 자가발전적인 성격이 강한 말로 해석되기는 하지만, 반 총장 측이 현 상황에서 국민의당을 비롯한 제3지대 세력과 연대를 여러 옵션 가운데 하나로 고려하는 분위기는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반-안 연대’의 다른 한 축인 안철수 전 대표가 반 총장과 연대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현재로서는 섣부른 정치공학적 연대보다 자기 고유의 색깔로 집권의 길로 가겠다는 것이 안 전 대표의 기조이기 때문이다. 반 총장 지지율에서 거품이 얼마나 더 걷히는지 지켜보려 할 것이다.

    설혹 제3지대에서 통 큰 경선이 이뤄진다 해도, 그 리그에서 반 총장이 단일후보가 되는 것은 험난한 길이다. 박 대통령이 식물 대통령이 된 현실은 내년 대선의 최대 화두가 정권교체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정권교체의 대안을 가리는 경쟁에서 반 총장이 우위를 점하는 데는 여러 난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반 총장이 제3지대에서 대표성을 갖는 단일후보 자리를 쟁취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반기문의 딜레마

    최순실 게이트로 정국이 흔들리면서 반 총장의 향후 행보에 대한 시나리오가 이렇게 다양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 반 전 총장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정국 상황에 관계없이 유지될 수 있는 안정적인 지지기반이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최순실 쓰나미 속에서 반 총장의 앞길은 안갯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반 총장의 대선 출마 의욕만 확인됐을 뿐, 어디서 누구와 어떤 대선 행보를 이어갈지는 더욱 오리무중이 됐다.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에, 국민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후보가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는지를 보면서 그를 평가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반 총장은 대선주자로서는 아직 낯선 인물이다. 반 총장 측이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상황을 보면서 앞길을 판단하겠다는 정도일 테다. 자신이 주도해 판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반기문의 딜레마다.

    반 총장을 등에 업고 편안히 대선까지 모셔갈 세력은 이제 없다. 반 총장은 자기 발로 걸어 19대 대선까지 가야 한다. 정치의 정글에 처음 발을 딛는 반 총장이 그때까지 살아남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반 총장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최순실이 반기문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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