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3

2016.11.16

커버스토리

문재인 책임론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졌다’… 2012년 대선 패배 원죄론 스멀스멀

  • 이종훈 시사평론가·정치학 박사 rheehoon@naver.com

    입력2016-11-11 16:31:07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표정이 밝아졌다. 마치 2012년 대통령선거(대선) 때 ‘나를 뽑았어야죠!’라고 말하는 듯하다.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라고나 할까. 2012년 대선 경쟁자 박근혜 대통령의 불행이 문 전 대표에게는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지지율은 상승세다. 만약 박 대통령이 하야한다면, 또는 탄핵된다면 대권주자 가운데 누가 가장 유리할까. 최대 수혜자는 문 전 대표라는 데 이견이 없다. 조기에 치를 대선에서 당선할 가능성이 현재로선 가장 높기 때문이다. 이미 박 대통령 지지율은 5%대까지 떨어졌다. 새누리당 역시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비박근혜)계의 내홍이 극심하다. 박 대통령이 하야하거나 탄핵되면 새누리당 지지율은 더 하락할 개연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치를 조기 대선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당연히 야권 후보가 당선되리라 봐야 한다.

    야권에서는 민주당이 형님 격이다. 국회의원 수로나 지지율 면에서나 그렇다. 극적인 반전이 없는 한, 국민의당 지지율이 민주당을 넘어설 확률도 낮다. 적어도 단기간에는 그렇다. 조기 대선을 치른다면 반전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다. 당연히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도, 야권 후보단일화 과정에서도 문 전 대표가 지기 어려운 구조다. 문 전 대표의 표정이 밝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 전 대표를 지지하는 옛 친노(친노무현), 현 친문(친문재인)세력도 내심 환호하는 분위기다.



    지난 대선에서 이겼어야 했다!

    그러나 비문(비문재인) 성향의 진보세력은 불편한 심경일 것이다. 특히 친문세력과 갈등한 끝에 탈당의 길을 택한 국민의당 지지세력은 더 그럴 테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까 끝까지 고민하다 박 대통령을 선택한 중도세력과 보수세력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은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문 전 대표에게도 유감이란 반응이다. 지난 대선 당시 흔쾌히 지지하게끔 만들지 못한 데 대한 유감이다. 2012년 대선은 문 전 대표가 거의 이길 뻔한 선거였다. 당연히 패배로 귀결된 책임이 없지 않다.



    당시 안철수 신드롬이 거셌다. 그때 만일 안철수로 야권 후보단일화가 이뤄졌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야권이 이겼으리란 분석이 적잖다. 하지만 문 전 대표는 정치권의 조직적 기반, 곧 친노 지지세력을 기반으로 안철수를 밀어붙였고 결국 양보를 받아냈다. 이후 안철수를 지지하던 중도 지지세력을 온전히 붙드는 데 실패했고, 근소한 차이로 패배하고 말았다.

    문 전 대표를 지지하는 친문세력은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가 끝까지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문 전 대표가 정말 이길 생각이었다면, 안 전 대표가 돕지 않으면 안 될 환경을 만들어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정치력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안 전 대표를 적극적으로 붙들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 문 전 대표 측은 안 전 대표로부터 후보 양보를 받아낸 것으로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선거 막판 문 전 대표 캠프는 승리를 낙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졌다. 그 결과 우리 국민이 최순실 게이트라는 참담한 상황을 맞게 됐다면, 너무 지나친 해석일까.



    ‘박근혜 X파일’을 만들었어야 했다!

    박 대통령과 최태민-최순실 일가의 관계를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은 데 대한 유감도 없지 않다. 박 대통령과 최태민-최순실 일가의 부적절한 관계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 측이 집중 제기했던 문제다. 당시 이명박 후보 선거캠프는 이른바 ‘박근혜 X파일’을 만들어 박 후보를 집중 공격했고, 결국 경선에서 이겼다.

    하지만 문 전 대표 선거캠프는 업그레이드된 ‘박근혜 X파일’을 만들지 않았다. 아니, 만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정보력이 부족했거나 네거티브 전략이 불러올 역풍이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선거 막판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을 밝혀낼 정도의 정보력이라면 박 대통령과 최태민-최순실 일가의 관계를 밝혀내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을지 모른다. 만약 그때 문재인 선거캠프가 이명박 선거캠프가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또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공개된 내용을 토대로 좀 더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했다면 2012년 대선 양상은 확실히 달라졌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는 심지어 옛 친노, 현 친문세력 내에서도 아쉬워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그때 좀 더 확실한 물증을 근거로 의혹을 제기했다면 2012년 대선에서 승리했을 테고 지금처럼 국민으로서 참담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는 이들 말이다. 여기에는 대선용으로 숨겨둔 책임도 있다. 문 전 대표의 책임은 또 있다. 제1야당의 대표가 된 후에도 기회는 있었기 때문이다. 문 전 대표는 정윤회 감찰 문건 파동이 불거진 직후인 2015년 2월부터 12월까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실질적 주인이었지만, 문 전 대표는 정윤회 감찰 문건 파동 이후 청와대 관련 대책을 강구한 흔적이 전혀 없다.

    4월 총선 당시 이 사건의 당사자 가운데 한 명인 조응천 전 박근혜 대통령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을 영입하면서도 정작 최순실 씨의 국정개입을 밝혀내는 데는 실패했다. 문 전 대표가 조 전 비서관을 영입한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정윤회 감찰 문건 관련 의혹이 2017년 대선 캠페인에서 활용 가치가 있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 전 비서관은 문 전 대표의 대표적인 영입 사례다.

    4월 총선이 끝난 이후 문 전 대표는 조 전 비서관으로부터 정윤회-최순실 관련 의혹을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영입 전 관련 정보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 전 대표는 침묵했다. 아껴뒀다 내년 대선 때 활용할 생각만 했을 개연성이 높다. 다른 것도 아닌 국기문란 행위다. 온 국민의 자존심을 손상시킨 행위다. 박 대통령 지지율을 5%대에 이르게 할 정도로 비난이 쏟아진 사안이다.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국격을 실추시킨 대형 사건이다. 그런데 미리 알았을 법한 문 전 대표는 국민에게 이런 사실을 알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변죽만 울린 셈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을 이슈화하는 데는 열심이었다. 정윤회 감찰 문건 관련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정도만 지적했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의 문이 열리자 조 전 비서관이 언론에 힌트를 준 것은 그 나름 의미가 있다. 그런데 그 이상은 없었다.

    지난 정기국회 국정감사 때도 민주당은 최씨를 증인으로 채택하자고 주장만 했을 뿐 관철하지 못했을뿐더러, 결정적 한 방을 끝내 내놓지도 못했다. 이 모든 것을 문 전 대표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전 대표이자 사실상 오너로서 책임은 피할 수 없다고 본다. 문 전 대표가 대표 재임 시절 한 일은 혁신이라는 이름하에 자신의 당내 조직기반을 강화한 것밖에 없다.



    문재인으로는 안 된다!

    야당이라 정보력에 제한이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제1야당으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력도 갖지 못했다면 기본적인 역량 부족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부족한 정보력으로는 또 진다! 최순실 게이트를 밝혀낸 것은 언론이다. 제1야당의 정보력이 언론보다 못한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더욱이 최태민-최순실 일가의 국정개입은 이른바 증권가 정보지에도 자주 등장할 정도로 흔한 정보 가운데 하나였다. 제1야당 전 대표이자 오너로서 이를 제대로 캐내지 못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문 전 대표가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자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활개를 치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어색하다.

    ‘그때는 뭐하다 이제 와서?’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 전 대표는 결정적 국면에서 언제나 좌고우면하는 경향을 보였다. 신중한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것인지 분명치 않지만, 늘 그랬다. 그런데 요즘 문 전 대표가 많이 달라졌다. 친문세력은 이를 권력 의지를 갖기 시작한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 강한 권력 의지만 탑재한 채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 어떤 사달이 나는지 우리는 지금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다.

    최씨와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문 전 대표도 비선(秘線) 관련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그래서 2012년 대선 당시 이른바 ‘3철’을 비롯한 친노 핵심 참모 다수가 2선으로 퇴진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취임 후 이들에게 다시 의존해 당내 공식기구인 최고위원회를 사실상 무력화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대표 사퇴 후에도 문 전 대표가 여전히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정보력 역시 이들에게 의존하고 있고, 이들의 정보력이 이제까지 보여준 정도라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보력이라는 기초체력까지 부족하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그 연장선에서 드는 의문은 이런 정보력과 정치력으로 차기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미 야권 일각에서는 오래전부터 ‘문재인으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당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심지어 민주당 내에서도 그런 지적이 없지 않다.

    옛 친노세력 사이에서는 그래서 안희정 충남도지사로 갈아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앞서 지적했듯이 최순실 게이트를 사전에 막지 못한 책임이라는 측면에서도 문 전 대표는 한계를 보였다고 생각한다. 책임져야 할 공식 직위가 없기 때문에 대국민사과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더욱이 최순실 게이트는 박 대통령의 책임이 워낙 크기 때문에 야권의 책임은 극히 미약하기도 하다. 하지만 대권주자라면 누구나 자신에게도 혹시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책임져야 할 부분은 없는지 한 번쯤 겸허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아울러 스스로 제2의 최순실, 또 다른 비선 실세를 곁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살펴봐야 할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