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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가 정치인 놀이터인가

출범부터 ‘잘못된 만남’ 두고두고 시달려 … 야구계 전반 부산상고 출신 득세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프로야구가 정치인 놀이터인가

프로야구가 정치인 놀이터인가

4월2일 개막전에서 시구한 이해찬 국무총리(왼쪽), 전두환 전 대통령은 프로야구 첫 시구자로 야구사에 남았다.

삼성 라이온즈의 권오준 투수가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프로야구를 출범시킨 정치인이기 때문이란다. 프로야구가 꾸려진 건 권오준이 두 살 때인 1982년 3월28일.

“전두환 대통령의 역사적인 시구가 있겠습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삼엄한 경호가 펼쳐진 가운데 삼성 라이온즈와 MBC 청룡의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에 나와 시구를 던졌다. 내외 귀빈과 3만 관중은 전 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올해 4월2일 프로야구 개막전에선 이해찬 국무총리가 시구했다. 그는 97∼98년 해태(현 기아) 이종범의 후원회장을 맡은 야구 마니아. 개막전 시구자는 박철언 씨, 박지원 씨 등 정치인들이 많다. 왜 그럴까. 야구와 정치의 만남이 불온했기 때문이다.

전 전 대통령은 81년 6월 대통령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프로스포츠 출범을 지시한다. 겨우 9개월 뒤 프로야구가 만들어졌다. 국민의 불만을 줄이려는 3S(sports, screen, sex) 정책의 일환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정권 기획으로 출범한 국민 스포츠

정권의 기획으로 출범한 프로야구는 빠르게 국민 스포츠로 정착한다. 전 전 대통령은 “TV에서 프로야구를 중계하라”고 지시했고, 장관들에게 정책적인 지원을 당부했다. 배꼽 잡게 하는 일도 있었다. 스포츠평론가 K 씨의 회고.

“대통령의 말 때문에 서울에 살던 선수들이 반강제로 소속 구단의 연고지인 지방으로 이사하는 일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터무니없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지역에서 스타가 돼야 한다는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프로야구를 소망하던 국민들의 바람과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를 전환해보려는 정권의 의지 덕에 프로야구는 이 땅에 정착했고, 성공할 수 있었다. 복잡하게 깔린 의도가 야구계엔 축복이 된 것.

역대 KBO 총재는 군 출신이거나 정치인 등 힘 좀 쓴다는 사람들이 맡았다. 초대 KBO 총재는 국방부 장관과 반공연맹 이사장을 지낸 서종철 씨. 서 씨는 전 전 대통령이 중령 시절 별을 달고 있었던 군 선배다. 서 씨의 배턴을 이어받은 건 5공 대변인을 맡았던 이웅희 전 문화공보부 장관.

군사정변으로 집권해 정통성 시비가 있는 정권이건 민주화 이후의 문민정권이건, KBO 총재는 야구와 무관한 인사들이 잠시 쉬어가는 자리이거나 재기 혹은 도약을 노리는 정치인들의 감투로 이용됐다. 총재 재임 중에 구설에 휘말려 야구판을 머쓱하게 만들고 떠난 이도 적지 않다.

11대 총재인 정대철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재임 4개월 만에 경성그룹 특혜대출 의혹과 관련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다. 홍재형 9, 10대 총재도 98년 5월 종금사 인·허가와 관련한 특혜 시비로 구설에 올라 물러났다. 군 출신인 5대 이상훈 총재도 율곡 비리에 연루됐다.

잠시 쉬어간 인사로는 20일 남짓 일하고 교통부 장관으로 영전한 6대 오명 총재(현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와 7대 권영해 총재가 있다. 권 총재는 국가안전기획부장(현 국가정보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검찰총장을 지낸 김기춘 8대 총재는 금배지를 달기 전 징검다리로 잠시 KBO 총재를 거쳤다.

야구와 정치의 교합을 참다 못한 야구인들은 98년 말 구단주 회동을 갖고 당시 박용오 OB(현 두산) 베어스 구단주를 총재로 추대한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마자 정대철 전 의원을 총재로 앉힌 김대중 정부도 다를 게 없었다. 감독 관청인 문화관광부는 박용오 당시 OB 베어스 구단주의 총재 승인을 내주지 않는다. 명분은 이랬다.

“특정 구단의 구단주가 총재직을 맡으면 중립적이어야 할 스포츠가 훼손된다.”

당시 정치권엔 KBO 총재로 A 씨, B 씨 등을 배려한다는 말이 떠돌았다. 그럼에도 야구인들은 여론을 뒷배 삼아 낙하산 인사는 더 이상 안 된다며 로비를 벌였고, 어렵게 민선 총재 시대를 열 수 있었다. 박용오 총재는 우여곡절 끝에 98년 12월8일 취임한다.

그런데 시계추가 거꾸로 돌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인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이 KBO로 내려오려 한다. 야구와 정치가 다시 교접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KBO의 한 관계자는 “군사독재 시절도 아니고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12월1일 경찰청 야구단 창단식장에서 만난 박용오 총재는 마음을 비운 모습이었다. KBO 관계자들을 통해 사퇴 외압설을 흘리던 때와는 사뭇 달랐다. 부산상고 출신 김응룡 삼성 라이온즈 사장이 부산상고 인맥을 동원해서 총재 사퇴를 부추겼다는 게 외압설의 줄거리. 박 총재는 12월11일 골든글러브 시상식을 끝으로 7년간의 임기를 마무리한다.

구단주들이 신상우 씨를 총재로 추대하면 문화관광부의 승인을 얻어 내년 1월께 취임하게 된다. 부산상고 인맥을 중심으로 한 추대 움직임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총재가 바뀌면 부산상고를 나온 K 씨에게 밀려날 거라는 이상국 KBO 사무총장을 비롯한 반대파의 PK 코드인사+관선 총재 여론 몰이가 명분이 조금 더 크기 때문이다.

“꼭 5공화국 때 분위기다”

야구계가 부산상고 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회자된다. 최근 야구선수들의 병역 문제를 해결해줄 경찰청 야구단의 초대 감독으로 부산상고 출신인 김용철 씨가 선임됐다. 그는 2003년 롯데 감독권한대행에서 물러난 뒤 2년 만에 야구계로 돌아왔다. 경찰청 관계자는 “실력 때문에 뽑았다”고 밝혔으나 야구계에선 “부산상고 출신이라는 점이 고려됐다”는 뒷말도 나온다.

그는 한동안 정치판에서 일했다.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문인 조영동 전 국정홍보처장의 요청을 받고 잠시 외도를 했던 것. 조 전 처장이 지난해 총선 출마하면서 도움을 요청했고, 그는 헌신적으로 도왔다. 조 전 처장이 금배지를 달았다면 그는 정치판에 남았을지도 모른다.

강병철 신임 롯데감독도 부산상고 출신. 노 대통령의 1년 선배다. 양상문 전임 감독은 만년 꼴찌 롯데를 중위권에 올려놓고도 옷을 벗었다. 한 야구계 인사는 “양 감독은 한창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해임을 통보받고 괴로워했다. 팀 운영과 관련해 양 감독을 해임할 사유는 없었다”고 말했다.

일부 야구인들은 대통령의 동문이자 측근이 총재를 맡으면 돔 구장 건설을 비롯한 야구계의 숙원사업이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또 기업인들로 이뤄진 구단주들에게 영이 서려면 정치권 인사가 필요하다는 논리도 있다. 과연 그럴까. 노 대통령의 측근인 김혁규 의원을 회장으로 ‘모셔온’ 배구협회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쨌거나 야구계는 한동안 정치판이 될 것 같다. 신주류와 구주류의 힘 겨루기가 거세다. 정권이 바뀐 98년에도 그랬다. 한 구단 관계자는 “꼭 5공화국 때 분위기다. 모두들 입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5.12.13 514호 (p70~71)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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