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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거품 뺀 비행기가 높이 난다

유럽 저가 항공사 새 항공여행객 창출 … 업계 장기불황에도 꾸준한 성장세

  • 파리=지동혁 통신원 jeast@naver.com

가격 거품 뺀 비행기가 높이 난다

가격 거품 뺀 비행기가 높이 난다

영국의 민간항공사 이지젯의 저가 항공권 광고판과 아일랜드 항공사 라이언에어의 M. 오리어리 최고경영자(작은 사진).

프랑스의 온라인 공간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배너광고 중 하나가 여행상품 광고다. 특히 ‘한 달간의 여름휴가를 위해 1년을 일한다’는 프랑스의 휴가 문화 때문에 휴가철을 앞둔 요즘 여행상품 광고가 봇물 터지듯 넘쳐나고 있다. 이 광고들 중 저가 항공사의 매력적인 항공티켓 광고는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다. ‘파리-니스 간 19유로(약 2만5000원)’, ‘파리-런던 간 22유로’ 등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값싼 항공티켓이 많이 나와 있다.

수년 전 비상한 관심을 모으며 등장했던 유럽의 저가 항공사들은 기존 항공여행과 차별되는 또 하나의 시장을 개척했다. 영국의 민간항공사 이지젯(Easyjet)과 아일랜드 항공사 라이언에어(Ryanair)를 필두로 낯선 이름의 신흥 민간항공사들이 발빠르게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도입 초기만 하더라도 호기심에 한 번씩 탑승해본 사람들이 승객의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나은 시설과 서비스 덕분에 계속 저가 항공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저가 항공의 가장 큰 장점은 ‘군더더기가 없다’는 것. 인터넷으로 예약·결제하고, 기존의 탑승권 대신 인터넷으로 발급받은 예약확인서만 지참해 탑승 수속을 마친다.

인건비 감소· 효율적 스케줄에 만족

물론 저가 항공사의 서비스는 기존 항공사의 서비스와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소형기에서부터 대형기까지 다양한 기종을 보유한 기존 항공사들과는 달리, 이들은 B737이나 A319 등 한두 가지의 중형 기종만 보유하고 있다. 보유 기종을 최소화함으로써 비행기 유지와 보수에 드는 비용을 줄인 것이다. 또한 같은 기종에 배치되는 좌석 수도 다르다. 일례로 기존 항공사들이 평균 110석을 배치하는 A319기의 경우, 이지젯항공은 156석을 배치한다. 저가 항공사는 일등석과 일반석을 구분하지 않기에 이렇게 많은 좌석 배치가 가능하다.



저가 항공 비행기들은 하루 평균 12시간 운항된다. 평균 8시간 운항되는 기존 항공사의 비행기에 비해 빡빡한 항공 일정을 소화하는 셈. 공항 이용료 절감을 목적으로 대형 국제공항보다는 인근의 중·소형 공항 또는 부속 공항을 이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기내에서 제공되는 식음료 등의 서비스는 최소한으로 제한되거나 유료인 경우가 많다. 탑승 승무원의 수 역시 기존 항공사보다 적다. 그러나 평상시 좌석 점유율은 기존 항공사들의 노선에 비해 20%포인트가량 높은 편이다.

이 같은 인건비 감소와 효율적인 운항 스케줄 도입으로 발생하는 혜택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다. 기존의 항공여행에 비해 다소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가격이 현저히 싸기 때문에 많은 소비자들의 구미를 당긴다. 저가 항공기를 즐겨 이용한다는 회사원 파비(36) 양 역시 이 점에 매료된 듯하다. “한 곳을 다녀올 수 있는 비용으로 두세 곳을 다녀올 수 있으니 약간의 불편함은 충분히 감수할 만하죠”라는 그의 말은 저가 항공 이용객들의 만족감을 잘 드러낸다.

가격 거품 뺀 비행기가 높이 난다

이지젯항공의 승무원이 비행기에 오르고 있다. 이탈리아 베르감에서 프랑스 보베를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고객들이 수속을 밟고 있다. 라이언에어의 항공기 기내 모습(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런 ‘가격 경쟁력’ 덕분에 유럽의 저가 항공사들은 항공업계의 장기불황에도 꾸준하게 입지를 넓힐 수 있었다. 2001년 9·11 사태 이후 조류독감의 전 세계적인 유행, 아메리카와 아시아 항공사들의 도약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유럽의 기존 항공사들에 저가 항공사들은 또 다른 위협적인 존재로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저가 항공사들에 큰 위기로 작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큰 타격은 날로 치솟고 있는 유가. 국제 유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요즘, 저가 항공사들은 기존 항공사와의 경쟁에서 더욱 불리한 처지에 놓였다. 전체 비용 중에서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기존 항공사들은 비교적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제반 비용을 과감히 줄여 최대한 낮춘 항공권 가격을 생명으로 하는 저가 항공사는 연료비 인상으로 인한 가격 압박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물론 저가 항공사들이 매력적인 가격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광고에서 제시한 티켓 금액을 그대로 믿는 것은 금물이다. 먼저 이 가격은 세금을 제외한 금액. 또한 성수기와 비수기 간의 가격 차이가 큰 점을 이용, 비수기 가격을 전면으로 내세웠다. 그러니 실제 가격은 예약 시기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같은 시기로 예약하더라도 빨리 예약을 하는 것이 가격에 큰 영향을 미쳐 일찌감치 예약한 고객에게는 큰 할인혜택이 주어지지만, 출발 시일에 가까워서 예약할 경우에는 혜택이 줄어든다.

새 비행기 도입과 노선 확장 거듭

이 때문에 일부 소비자 단체에서는 저가 항공사의 티켓 광고가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지젯항공의 한 관계자는 ‘르피가로’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반박했다.

“우리가 내세우는 가격이 오히려 더 투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고객은 자신들이 지불하는 금액 중 얼마가 항공사로 들어가고, 얼마가 공항세로 들어가는지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대형 항공사들은 최근 유가 인상 요인을 반영한 유류할증요금을 만들어 추가로 부과한다. 그러나 저가 항공사들은 아직 종전 가격으로 비용 인상분을 감내하고 있다. 결국 저가 항공티켓의 경쟁력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이지젯과 함께 유럽의 저가 항공사를 대표하는 라이언에어는 2월 보잉기 140대를 주문했다. 대부분의 항공사들이 불황을 호소하고 있는 현실에서 라이언에어의 공격적인 사업 확장은 항공업계 전체에 적잖은 충격이었다. 한편 이지젯항공도 노선 확장을 거듭해 현재 유럽 내 63개 공항을 연결하는 210개의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유럽의 저가 항공사들이 내세우는 이러한 여행상품은 소비자의 수요를 더욱 면밀히 분석해 갈수록 계층화, 세분화되는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기존 항공여행의 허식적인 요소를 떨쳐내고 ‘비행기는 비싸다’는 선입관을 과감하게 깨뜨린 이들은 출범 초기의 우려를 불식하고 새로운 항공여행의 패턴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프랑스 통계청은 올해 프랑스 소비자들의 평균 구매력이 2% 이내로 소폭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최근 계속되는 인플레이션 현상을 감안하면 일반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오히려 감소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각종 대형 할인점이 점차 늘어나는 등 저가상품의 소비가 꾸준히 증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소비 경향이 항공 교통에도 반영되어 저가 항공사의 상승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도 한성항공, 제주에어 등 저가 항공사의 취항이 가시화되면서 기존의 항공여행 시장 구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 세계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저가 항공사들의 출범이 항공여행의 대중화를 얼마만큼 앞당길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주간동아 2005.07.05 492호 (p48~49)

파리=지동혁 통신원 jeas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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