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0

2016.10.26

커버스토리 | 저무는 스마트폰 왕국

스마트폰 경쟁력 ‘단축’한 단통법

국내 제조사들 지원금 줄여 이익, 소비자만 ‘봉’…해외 제조사 지원금 못 받아 ‘호갱’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10-21 18: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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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폰 시장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의 몰락 뒤에는 스마트폰 시장의 과열된 기술경쟁이 있었다. 스마트폰 신제품 출시 기일에 맞추고자 다양한 기술을 한꺼번에 쑤셔 넣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안전성 검사에 소홀했던 게 화근이었다. 소비자가 항상 몸에 지니고 사용하는 스마트폰인 만큼 당연히 긴 기간을 두고 제3, 제4의 안전성 검사를 했어야 하지만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무모하리만큼 기술경쟁에만 몰두해왔다.

    스마트폰 안전성은 신기술로 시장을 석권하기 위한 밑거름이자 골조라고 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이를 몰랐을 리 없지만 그들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무엇을 내놓아도 잘 팔리라는 믿음이었다. 그 믿음 뒤에는 정부의 은밀한 지원이 있었다. 단적인 예가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다.

    단통법은 보조금 한도를 정해 지역, 경로, 시점에 따라 보조금이 차등 지급되는 것을 막음으로써 소비자가 차별 없이 같은 가격으로 휴대전화를 구매할 수 있게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법은 목적과 다르게 작동했다. 보조금 차등이 없어지자 결과적으로 보조금 규모가 줄었고, 소비자는 비싼 가격에 휴대전화를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제조사는 보조금 상한선이 생겼으니 마음 놓고 비싼 가격에 스마트폰을 판매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보조금 상한선 때문에 국내 소비자가 해외 제조사의 지원금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한국 소비자는 세계 최고 ‘호갱’(호구와 고객의 합성어)이 됐고, 국내 제조사는 일종의 보호무역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소비자 위한 법? 소비자 손해 법!

    단통법은 2014년 10월 시행 초기부터 반발에 부딪혔다. 보조금 상한선이 생기니 그동안 발품을 팔면 싸게 살 수 있던 제품의 가격이 일제히 올랐다. 실제로 단통법이 시행되기 직전인 2014년(당시 출고가가 비공개) 시중 판매가격이 20만 원 정도에 불과하던 갤럭시S가 법이 시행되자 출고가가 49만4400원이 됐다. 단통법 시행 전에는 일부 소비자가 ‘나만 비싸게 샀다’는 불만을 가졌다면, 법 시행 이후에는 모두가 비싼 값에 스마트폰을 구매하게 된 것이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성수 의원과 녹색소비자연대가 단통법 시행 이후 단말기를 교체한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가계통신비가 이전보다 증가했다는 응답이 30.9%에 달했다. 반면 가계통신비가 줄었다는 응답은 11.0%에 불과했다. 즉 응답자의 80% 이상이 단통법 효과를 전혀 체감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단통법이 취지와 정반대 결과를 내는 이유는 2014년 법안 설계 당시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위원회가 보조금 상한제 실시와 함께 고려 대상에 올린 분리공시제를 법안에서 빼버렸기 때문이다. 분리공시제란 스마트폰 보조금 중 이동통신사가 지급하는 부분과 제조사가 지급하는 부분을 분리해 공시하는 제도다. 이렇게 보조금을 분리해 공시하면 소비자가 보조금을 받을 때 제조사 부담분과 이동통신사 부담분을 명확히 구분해 제조사 단말기 가격에 낀 거품을 추산할 수 있다. 소비자가 가격 거품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구매를 줄이면 제조사도 단말기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는 논리다. 김보라미 법무법인 나눔 변호사는 8월 2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말 많은 단통법, 국민과 함께 해법을 찾는다’ 토론회에서 “국내 통신시장에서는 휴대전화 제조업체와 통신사업자 모두 과점사업자다. 이 때문에 통신사업자에게 요금을 낮추라고 요구하는 동시에 제조사에게도 이윤 규모를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분리공시제는 스마트폰 소비자가 기존 약정을 깨고 다른 스마트폰을 구매할 때 생기는 위약금 부담도 덜어줄 수 있다. 심현덕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7월 7일 서울 종로구 YMCA에서 열린 ‘소비자 중심의 이동통신 생태계 조성을 위한 소비자단체 간담회’에서 “위약금은 공시지원금을 반환하는 것이다. 공시지원금은 이동통신사가 2년 약정에 대한 대가로, 제조사가 단말기 구매에 대한 대가로 지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객이 약정을 지키지 않은 경우 이동통신사가 지급한 지원금을 반환하는 것이 맞지만, 제조사 지원금은 반납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지금은 약정을 깨면 제조사 지원금까지 반환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를 위한 법’이 되는 데 최소한의 장치였던 분리공시제가 단통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삭제된 이유는 뭘까. 업계에선 스마트폰 제조사의 ‘반대’ 압박과 그에 조응한 정부의 반(反)소비자적 태도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는 2014년 단통법 제정 당시 “제품을 살 때 원가를 알고 사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단말기별로 제조사 지원금이 얼마인지 소비자가 알 필요는 없다”며 제조사의 스마트폰 보조금 공개를 공식 반대했고, 이후 계속된 개정 논의 과정에서도 별다른 주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 때문일까.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은 10월 13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자리에서 보조금 상한제와 분리공시제 도입을 사실상 반대했다.

    결국 스마트폰 제조사가 보조금 미공개로 반사이익을 보는 동안 소비자는 그만큼 손해를 본 셈이다. 보조금 상한제가 사실상 단말기 가격 하한제로 기능하면서 해외 제조사가 높은 보조금을 지급해도 한국 소비자는 그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10월 17일 애플 아이폰7 시리즈의 국내 출고가가 공개됐다. 가장 저렴한 아이폰7 32GB 모델의 출고가는 86만9000원. 그러나 미국 애플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된 아이폰7의 판매가격은 이보다 저렴했다. 미국에서 아이폰 출고가는 32GB 기준 649달러, 한화로 72만 원 정도로 10만 원가량 저렴하다. 가격 차는 고가 제품일수록 커져 가장 비싼 아이폰7 플러스 256GB는 미국과 한국의 출고가가 20만 원 이상 벌어졌다



    단통법 수혜자는 제조사와 이통사

    단통법이 막 시행되던 2014년 상황은 더 심각했다. 단통법 시행 14일 만에 출시된 아이폰6의 당시 국내 출고가는 70만 원대 후반. 가장 높은 가격의 요금제를 사용해 최대 공시지원금 33만 원을 받는다면 40만 원 중반대로도 구매가 가능했다. 반면, 같은 기간 일본에서는 자국 내 3대 이동통신사를 이용할 경우 사실상 공짜로도 살 수 있었다. 미국에서도 199달러(약 22만 원)만 내면 아이폰을 구매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국내 소비자는 제조사 보조금이 많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아이폰을 구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 결국 제조사의 보조금 공시를 막은 단통법은 국내 스마트폰과 해외 스마트폰의 치열한 가격경쟁을 가로막는 실질적 관세장벽이 된 셈이다.  

    이러한 문제는 해외 스마트폰을 보조금 혜택을 모두 받고 제조사로부터 직접 구매해도 해결되지 않는다. 해외에서 구매한 무선기기를 국내에서 사용하려면 전파 인증 등록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절차가 까다로운 해외 스마트폰의 직접 구매 과정에 전파인증 등록과정까지 거쳐야 하니 일부 마니아층을 제외하고는 해외 제조사로부터 스마트폰을 직접 구매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단통법(분리공시제 미실시)으로 이득을 본 것은 스마트폰 제조사만이 아니다. 이동통신사도 짭짤하게 재미를 봤다. 이동통신비 보조금으로 지급하던 마케팅 비용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이동통신 3사(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의 2015년 마케팅 비용은 총 7조8619억 원. 이는 단통법 시행 전인 2014년(8조8240억 원)에 비해 1조 원가량 줄어든 것이다. 마케팅 비용 축소는 번호이동을 통한 경쟁사 가입자 유도 경쟁이 그만큼 줄었다는 방증이다. 통상적으로 인구 제한이 있는 이동통신 시장에서 마케팅 비용은 신규 고객 유치보다 경쟁사 가입자를 끌어오는 데 사용된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에 따르면 2014년 865만4125건이던 번호이동 수가 단통법이 시행된 후인 2015년에는 693만3874건으로 172만251건이나 줄었다. 지출이 줄자 영업이익은 당연히 늘었다. 이동통신사가 공시한 영업이익은 3사 합계 2014년 1조6170억 원에서 2015년 3조1690억 원으로 2배가량 증가했다.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ICT소비자정책연구원 정책국장은 “단통법 시행 후 이동통신사의 영업이익이 대폭 증가하고 있다. 단통법이 이동통신사의 배만 불리는 법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만큼 조속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동통신사 한 관계자는 “이동통신사의 영업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는 단통법뿐 아니라 다양한 사업 요소가 있다. 단통법 때문에 이동통신사의 이익이 높아졌다는 평가는 옳지 않다”고 해명했다.

    단통법 효과는 미래부의 거짓말?▼ 갤럭시S7 출고가 한국이 가장 비싸…“통신비 부담이 줄어든 것은 알뜰폰 사용 때문” ▼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 국내 소비자의 희생을 강요하고 종국에는 국산 스마트폰의 경쟁력을 약화한다는 비판 속에서도 계속 시행될 수 있었던 데는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는 말만 반복하는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의 책임이 크다. 미래부는 지금까지 각종 통계를 통해 “단통법 시행 이후 소비자의 통신비 부담이 줄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소비자는 “나아진 것이 전혀 없다”고 맞선다. 과연 누구 말이 진실일까.

    단통법은 원래 3년 한시제 법안이다. 내년 10월이면 그 기간이 끝나 보조금 상한제도 함께 사라진다. 하지만 보조금 상한제로 스마트폰 가격이 올라가자 국민의 불만도 거세졌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이 7월과 8월 각각 보조금 상한제를 조기 폐지하는 내용의 단통법 개정안을 들고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은 7월 가격경쟁을 통해 단말기 가격을 내릴 수 있는 분리공시제를 넣은 별도의 개정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단통법의 폐해를 고치기 위한 개정안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정작 실행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의 반응은 차갑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은 10월 13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자리에서 “보조금 상한제는 1년 후 사라질 제도로, 그때 가서 논의가 이뤄지면 그에 따를 것”이라며 보조금 상한제 조기 폐지 의지가 없음을 내비쳤다. 분리공시제 도입에도 의지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보조금 지급 주체를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소비자 처지에서는 실제 받는 보조금 수준이 중요하지 주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분리공시제가 스마트폰 제조사의 해외 마케팅 비용 같은 영업기밀을 유출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장단점을 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2014년 반대 이유와 다를 바 없는 해명이었다.

    여야의 전방위적 압박과 국민의 불만에도 방송통신위원회가 단통법 개정에 착수하지 않는 이유는 단통법이 성공적이라는 미래부의 평가 때문이다. 4월 미래부 발표에 따르면 월 평균 가계통신비는 2013년 15만2792원에서 2014년 15만350원, 2015년 14만7725원으로 매년 완만하게 감소했다. 가입자의 평균 휴대전화 가입요금도 낮아졌다. 평균 가입요금은 단통법이 시행되기 전인 2014년 3분기(7~9월) 4만5155원에서 올해 1분기(1~3월) 3만9142원으로 5000원 가까이 줄었다.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9월 6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단통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돼가는데 이용자 차별을 없애고 가계통신비를 인하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며 시장에 안착해가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미래부의 이런 해석은 일반 소비자나 관련 시민단체의 주장과는 온도 차가 크다. 소비자는 “통신비와 가입요금이 떨어진 것은 실제 통신요금이나 단말기 가격이 떨어져서 그런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너무 오른 신형 스마트폰 가격에 놀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성능이 떨어지는 알뜰폰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단통법 시행 전인 2014년 3월 방송통신위원회의 이동통신사에 대한 징계사유 보고서에 따르면 이동통신 3사의 평균 보조금은 57만9000원에 달했다. 그러나 단통법 시행 2년이 지난 현재는 5만9000원대 요금제를 기준으로 출시 15개월이 지나지 않은 제품의 공시지원금은 평균 19만3007원에 불과하다. 출시 15개월이 지나 보조금 상한제가 풀린 단말기의 공시지원금도 평균 37만3937원으로 단통법 시행 전보다 한참 미치지 못한다.

    단통법이 사라지는 2017년 10월까지 기다린다 해도 지원금이 높아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스마트폰 제조사가 서로 입을 맞춰 단통법 이후에도 보조금 상한선을 담합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지금도 법상 정해진 최고 공시지원금을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현재 출시된 지 15개월 미만인 단말기의 보조금 상한액은 33만 원. 그러나 고가의 5만9000원 요금제를 사용해도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은 상한액의 60%(19만3007원)에 불과하다.

    삼성전자는 2014년 단통법 제정 당시부터 줄곧 “국내 판매 장려금 규모가 유출되면 해외 통신사도 같은 규모의 장려금을 요구할 수 있다”는 근거로 제조사의 지원금(판매 장려금) 규모 공개가 영업기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국내에서 생산하는 고급 스마트폰은 국내에서 가장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국산 스마트폰이 국내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고 있었던 것.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이 해외 단말기 판매사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삼성전자가 2015년 이후 출시한 주요 단말기의 해외 판매가격을 조사한 결과 국내에서 판매되는 단말기의 가격이 최대 11만4025원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3월 11일 세계 각국에 동시 출시된 갤럭시S7 32GB 모델의 프랑스 출고가가 72만1976원인 반면, 국내 출고가는 83만6000원으로 11만4024원이나 비쌌다. 우리보다 싸게 갤럭시S7을 구매할 수 있는 나라는 프랑스만이 아니었다. 한국의 갤럭시S7 출고가는 홍콩보다 8만8784원, 미국보다 8만2688원이 비쌌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박 의원은 “삼성전자가 국내 출고가를 해외보다 더 높게 잡고 단통법 시행 이후에도 단말기 가격을 낮추지 않고 있다. 공시지원금 상한제 폐지와 분리공시제를 동시에 도입해 이와 같은 폐해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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