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0

2016.10.26

북한

韓赤, 北 지원 정부와 논의했나?

수해지원 사실 감추다 뒤늦게 실토, “정부와 사전 상의 안 했다”…북, 수해지원품 전용 의혹도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입력2016-10-21 16:35:14

  • 글자크기 설정 닫기
    9월 9일 5차 핵실험을 단행하기 전 북한은 스스로 “해방 이후 처음 있는 대재앙”이라고 밝힐 정도로 심각한 수해를 입었다. 8월 29일부터 9월 2일까지 제10호 태풍 ‘라이언록’이 함경북도와 양강도 일대를 강타해 500여 명이 숨지거나 실종했고, 이재민 14만 명이 발생했다. 북한은 국제사회에 지원을 공식 요청했으며 국제적십자사연맹(IFRC)과 세계보건기구(WHO), 세계식량계획(WFP) 등 여러 국제기구가 북한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10월 중순 국내에서 북한 수해지원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먼저 대한적십자사(한적)의 대북 수해지원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도마에 올랐다.



    재미교포 신은미 씨 기금 모금 논란

    9월 20일 국제적십자사연맹은 북한의 수해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며 ‘긴급호소’를 통해 각국 회원사에 대북 수해지원을 요청했다. 이와 관련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국정감사를 앞두고 한적 측에 올해 북한 수해지원이 있었는지를 수차례 질의했다. 이에 한적은 “지원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남 의원은 대한적십자사 국정감사를 하루 앞둔 10월 12일 “과거 해마다 해오던 한적의 인도주의적 대북지원이 올해는 전면 중단됐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남 의원은 “대한적십자사가 직접 대북지원을 할 때는 통일부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지만, 국제적십자사연맹을 통할 경우에는 승인이 필요 없는데도 대북지원을 전면 중단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국제적십자사연맹의 긴급호소에 대한적십자사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남 의원이 보도자료를 낸 이후 한적은 돌연 이와 정반대되는 사실을 다른 의원실에 밝혔다. 한적은 같은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에게 보낸 e메일 자료를 통해 “북한 홍수 피해 복구지원을 위해 국제적십자사연맹을 경유해 현금 1억1380만 원(10만 스위스 프랑)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지원 시점은 10월 4일이었다. 그리고 국정감사에서도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한적은 왜 북한 수해지원 사실에 대해 거짓말을 하다 뒤늦게 공개한 것일까. 김성주 한적 총재는 10월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죄송하다. (지원 사실을 숨겼던 것은) 내가 책임져야 할 것 같다. 경북 경주 지진이나 경남지역 홍수 피해 등 국내 재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국민 정서를 고려해 조용히 지원금을 보냈고, 대북지원 사실도 국정감사 때 공개하기로 내부적으로 합의했다”고 답변했다. 김 총재는 또 김상희 의원이 “국제적십자사연맹을 통한 대북지원은 정부 승인이 필요 없는 사안이다. 이번에 대북 수해지원을 하면서 정부 또는 청와대와 상의했는가”라고 묻자 “상의하지 않았다. 대북지원 결정은 한적 남북교류위원회에서 독자적으로 한다”고 답했다.



    그런데 한적 내부에서 김 총재의 이 발언도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부와 상의한 후 대북지원에 나섰으나 이조차 감추고 있다는 얘기다. 한적의 한 내부 인사는 “국정감사 바로 전날인 10월 12일 김형석 통일부 차관이 한적을 방문했다. 북한 수해지원과 관련해 논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적은 그다음 날 국정감사장에서 수해지원 사실을 공개했다”고 전했다. 확인 결과 김 차관이 이날 한적을 방문한 것은 사실로 밝혀졌다. 하지만 김 차관이 한적을 방문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에 대해 한적 측은 “특별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없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날 오전 상황을 보면 통일부 차관이 ‘특별한 일 없이’ 한적을 방문했을 리는 없을 듯하다. ‘북한 핵심 권력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의 국장급 인사가 탈북해 지난해 국내에 들어왔다’는 대형 뉴스가 언론에서 속보로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북 콘서트’를 진행해 미국으로 강제 출국당한 재미교포 신은미 씨도 북한 수해지원과 관련해 논란의 대상이 됐다. 신씨는 9월 중순부터 함경북도 수재민을 돕기 위한 기금 모금활동을 진행했다. 여러 은행을 통해 모금했는데, 이 가운데 KB국민은행 계좌에 모인 금액이 23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신씨는 10월 10일 법무대리인을 KB국민은행 지점으로 보내 이 성금을 중국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은행 측은 서류 미비와 절차상 문제를 들어 송금을 거절했다.

    그러자 신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수해를 입은 북녘 동포 돕기 성금 인출을 거부하는 국민은행’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은행이 북녘 동포 돕기 모금인 것을 알고 자금활용계획서를 요구하는 등 까다로운 핑계를 내세워 중국으로 송금을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KB국민은행 측은 “절차를 지켜달라고 요구한 것일 뿐”이라면서 “법률대리인이 관련 서류를 구비해 와 신씨 측이 돈을 찾아갔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신씨의 모금활동 자체가 실정법을 위반했을 수도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1000만 원 이상 모금활동을 하려면 지방자치단체 등에 신고해야 하는데 신씨가 이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복구 작업 근로자 동원령…임가공산업 피해 속출

    한편 이번 수해는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인 임가공(賃加工·한 나라의 업체가 다른 나라 업체에 원자재를 제공해 제품을 생산하고, 이 제품을 다시 들여오거나 제3국에 수출하는 무역거래)산업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의 대북 소식통은 북한 정부가 폭우 피해를 입은 지역의 공장들에 지시를 내려 근로자 절반을 즉각 수해복구 작업에 투입하게 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대표적 수해지역인 함경북도 청진시와 회령시 일대 임가공산업이 치명타를 입었다고 한다. 이들 지역에는 세계 각국 기업으로부터 주문받아 의류를 임가공 생산하는 봉제공장이 밀집돼 있다. 그런데 이들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50%가 수해복구 현장에 동원되다 보니 정상적인 생산이 불가능하게 된 것. 당연히 의류 생산을 주문한 바이어들에게도 비상이 걸렸다. 10월에 나와야 할 완성품이 최소 한 달 이상 지연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10월에 생산하는 옷은 대부분 겨울옷으로, 주문 물량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의류는 납품이 한 달 이상 지연되면 사실상 계약 파기로 이어지기 때문에 주문 기업들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고 대북 소식통은 전했다.

    청진과 회령에서 생산하는 의류 가운데는 우리나라 TV홈쇼핑에 납품되는 제품도 많다고 한다. TV홈쇼핑 제품이 저가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북한이나 베트남 등에서 만들어 제작단가가 낮기 때문이다. 중국 대북 사업가는 TV홈쇼핑에 납품하는 업체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사실상 한국인이 주인인 A업체는 청진 공장에 겨울옷 1만 벌을 주문하고 완성품을 10월에 받기로 했다. 옷 벌당 제조원가는 20달러(약 2만 원). 1만 벌이면 20만 달러, 즉 한화로 2억 원 이상의 제조비용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청진 공장 근로자들이 수해복구에 동원돼 생산이 한 달 이상 지연될 것 같다는 통보를 받았다. 결국 예정된 기일에 TV홈쇼핑에 물건을 납품할 수 없었다. 피해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납품 기일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클레임을 당하면서 바로 전 납품했던 제품값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이것이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져 치열한 TV홈쇼핑 납품 경쟁에서 뒤처지게 됐다. 사실상 한국인이 사장인 A 같은 업체 10여 곳이 현재 비슷한 처지에 놓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어느 정도 탄탄한 기업이라면 이런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겠지만, 작은 기업은 이 같은 한 방에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주로 일본 기업으로부터 주문받아 물건을 생산하는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의 중견 중국 기업은 청진 공장 3곳에 의뢰한 겨울옷 3만 벌을 10월 안에 맞춰줄 수 없다는 최종 통보를 받아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RFA, “지원품 외화벌이로 사용”

    홍수가 나면 북한에서만 볼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대규모 수해가 발생하면 공장이 모두 물에 잠기면서 원단도 함께 흙탕물에 빠진다. 보통 이런 상황에 처하면 원단을 곧바로 물에서 꺼내 말리고 소독하면 괜찮다. 하지만 북한에는 그런 시설이 없고 비도 계속 내리기 때문에 물에 빠진 원단은 아예 사용하지 못한다. 주문을 넣은 기업 처지에서는 원단까지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 공장들은 이를 다시 돈벌이 기회로 활용한다. 빨아서 일반 시장에 판매하는 것. 침수된 원단은 빨아도 냄새가 나지만 몇 번 빨다 보면 괜찮아진다고 한다. 소식통은 이를 걸레에 비유했다. 처음엔 냄새가 지독하지만 계속 빨면 냄새가 사라지는 걸레 말이다.

    원단만 문제가 아니다. 공장이 침수되면 당연히 재봉틀 등 봉제 기계설비도 물에 잠기면서 아예 못 쓰게 된다. 기계설비는 재활용이 불가능해 새로 사야 하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도 장기간 거래해온 단골 기업이 공동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인 기업가 C씨도 그런 경험을 들려줬다. 지난해 8월 대규모 홍수 때 나선경제특구의 기계설비가 모두 침수되는 바람에 홍수 이후 두 달 만에 새 설비를 마련해줬다고 한다. 비용은 1년 치 주문에서 매달 일정 금액의 인건비를 빼나가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대북사업을 오랫동안 해온 기업은 자연재해 같은 돌발 상황에서 손실을 감수하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게 해도 수익이 나기 때문이다.

    북한 수해참상이 확인되자 중국 주민의 반(反)김정은 정서 또한 고조되는 것으로 보인다. 10월 17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북·중 접경지역 수해복구 과정에서 북한 내 참상이 알려지자 중국 주민 사이에서 김정은 정권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지린(吉林)성 투먼(圖們)에서는 “두만강 수해현장에서 북한 군인들로 추정되는 시신 30여 구가 무더기로 발견돼 충격을 줬다”고 전했다.

    북한 수해지원이 국제적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과연 지원품이 피해 당사자에게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문의 목소리 또한 높다. RFA는 “국제사회가 지원한 밀가루와 분유 등 식량을 북한이 외화벌이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고아들에게 주겠다”며 국제사회로부터 밀가루와 분유를 받아서는 외국인을 상대로 외화벌이를 하는 식당들의 고급 식재료로 전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서맨사 파워 유엔 주재 미국대사도 방한 기자회견에서 “국제적으로 북한을 원조하는 당사자들은 실제로 이 원조가 어려움에 처한 당사자에게 갈 것이라는 자신감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