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0

2016.10.26

정치

갈수록 문재인만 키워주는 ‘송민순 회고록’ 파문의 역설

새누리당 맹공은 문재인 원군?…제3지대와 개헌 논의까지 무력화

  • 이종훈 시사평론가·정치학 박사 rheehoon@naver.com

    입력2016-10-21 16: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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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하는 움직인다. 이것은 진실이다. 따뜻한 바람이 불면 빙하는 더 빨리 움직인다. 이것 또한 진실이다. 반면 차가운 바람이 불면 빙하의 움직임은 둔해진다. 남북관계에 찬바람이 불면서 움직여야 할 빙하가 더 견고해졌다. 이런 속에서 따듯한 바람, 남풍을 인공적으로라도 만들어야 할 일꾼 간 큰 싸움이 벌어졌다. 남풍 제작 공정을 둘러싼 논란이다. 새누리당 일꾼들은 차가운 바람을 섞어야 할 때 따듯한 바람을 섞어 일을 망쳤다며, 그렇게 몰고 간 문재인이 책임지라고 요구한다. 더불어민주당(더민주) 일꾼들은 그때는 따뜻한 바람을 섞는 것이 불가피했다면서, 심지어 문재인은 당초 찬바람주의자였다고 옹호한다. 당사자 문재인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새누리당 일꾼들은 이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토록 중요한 공정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는 걸 보니, 진범이 맞는 모양이란 얘기다. 더불어민주당 일꾼 1호 문재인은 이번 논란으로 일을 영영 그만두게 될 것인가.

     처음엔 정말 심각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때 너무 몰아세운 것이 약간 후회되기도 했다. 깔끔하게 인정하고 넘어갈지, 부인하고 말지 전략도 고민스러웠다. 참모진을 모아 회의한 결과, 그냥 깔끔하게 인정하고 넘어가는 편이 논란을 줄이는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최측근인 더민주 김경수 의원으로 하여금 이런 논평을 내놓게 했다.

    “북한 인권문제도 남북 간 직접 대화를 통해 개선하도록 권고하고 유도하자는 취지로 논의된 것으로 안다.”

    이쯤에서 수습되길 원했을 것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의 공세가 예상보다 거셌다. 딱 걸렸다는 반응이었다. 최순실 씨 관련 논란으로 수세에 몰린 새누리당이다. 내리는 소나기를 피하는 심정으로 당대표가 단식까지 감행했던 터다. 국회 국정감사 보이콧도 병행했지만 비난여론에 어쩔 수 없이 복귀한 마당이다. 마땅한 반격카드가 없었는데 이보다 더 좋은 공격 대상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새누리당이 과민반응을 보이자 살짝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혹시 이를 기회로 삼을 수는 없을까. 다시 참모진을 모아 논의했다. 그 결과 위험 부담이 따르긴 하지만 한 번 해볼 만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위험 부담은 애써 끌어모은 중도세력 일부가 이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진보세력을 결집하는 반사효과를 노릴 수 있는 기회 요소도 없지 않았다. 차제에 호남의 국민의당 지지세력을 끌어모으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래서 전략을 바꿨다. 행동 개시! 2007년 11월 20일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관련 청와대 회의 참석자들이 먼저 나서기로 한다. 당시 통일부 장관이던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첫 번째 주자다. “2007년 11월 15일 회의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은 ‘인권문제라는 건 보편적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이건 지난해에도 우리가 찬성했기 때문에 일관성으로 본다면 찬성하는 게 옳다’는 입장을 가지고 계시다, 전체 의견이 그냥 이렇게 기권으로 가니까 거기서 수용한 것”이라고 해명한다. 그리고 이것을 김경수 의원이 받아 재차 문 전 대표가 당시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 의견을 냈다는 확인까지 셀프로 진행한다. 그 증거로 2012년 12월 8일 KBS 1TV ‘심야토론’에서 더민주 홍익표 의원이 “확인해보라. 당시 문재인 후보는 논의과정에서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 결의를 냈다”고 발언한 것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받아 문 전 대표는 “내가 찬성 의견을 냈다고 하는데,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언급한다. 새누리당의 추가 공격을 유발하려는 의도가 담긴 발언이다. 아니나 다를까, 새누리당은 이 발언에 발끈해 공세 수위를 더 높인다. 바라던 바다.





    30%까지 가보자!

    문 전 대표가 이번 논란을 계기로 획득하려는 전리품은 대통령선거(대선) 후보 지지율 30%이다. 집토끼 결집만으로도 이 정도는 가능하리라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타깃집단은 진보 지지세력 중에서도 국민의당과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를 지지하는 호남 및 수도권 유권자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10월 11〜13일 전국 남녀 유권자 1026명(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p)을 대상으로 한 전화면접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26%로 취임 이후 최저치다. 새누리당의 정당 지지율 역시 28%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갤럽 조사 결과는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 발간 이전이다. 그래도 분위기가 좋아지는 환경이었다.

    발간 이후는 어떨까.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매일경제·MBN ‘레이더P’ 의뢰로 10월 10일부터 14일까지 닷새간 전국 유권자 2522명(총 통화 시도 2만4270명 중 2522명 응답 완료. 응답률 10.4%)을 대상으로 실시한 10월 2주 차 정당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전 대표는 직전 조사보다 2.2%p 상승한 20.1%를 기록했다. 데일리안의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알앤서치가 10월 16〜17일 이틀간 전국 성인 10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문 전 대표의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은 22.6%로 상승해 25.4%를 기록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오차범위 내로 따라붙었다. 더민주 정당 지지율 역시 4.4%p 급등했다. 특히 전남·광주·전북에서 10.9%p나 상승한 32.0%를 기록했다.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이 문 전 대표와 더민주에 악재가 되리란 당초 관측과 달리, 오히려 진보 지지세력 및 호남 유권자를 문 전 대표와 더민주 아래로 결집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이는 결국 내년 대선 당내 경선에서 문 전 대표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 그래도 당내 세력 분포상 유리한 위치에 있는데, 더 확고히 다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더욱이 국민의당 지지로 돌아섰던 호남 유권자를 다시 불러들일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당내 경선 이후 진행될 야권 후보단일화 국면에서도 유리한 구도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됐다. 당연히 제3지대와 개헌 논의를 무력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은 것이기도 하다. 개헌을 매개로 한 제3지대 중도세력 통합이 힘을 받지 못하는 상황까지 끌고 간다면,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은 연말 기준 30%대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대표 사퇴 이후 의원직도 잃은 상태에서 문 전 대표의 존재감은 하락 추세였다. 이 와중에 터진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 논란으로 문 전 대표는 본의 아니게 무대 중심에 서는 행운을 맞은 것이다. 물론 새누리당의 맹공이 오히려 원군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새누리당이 연일 문 전 대표를 맹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최순실 파문에 물 타기를 하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래도 문 전 대표를 본선에서 상대하는 게 용이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종의 양수겸장 전략이다.



    일단 초만 치자!

    그런데 이 전략에도 맹점은 존재한다. 너무 키워주면 본선 승기를 잡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설정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선을 설정해야만 하는 이유다. 단기적으로는 문 전 대표에 대한 집중 공세로 최순실 파문에 쏠린 국민의 시선을 돌린다. 그사이 문 전 대표가 진보 지지세력을 결집해 지지율이 오르겠지만 감수하기로 한다. 최순실 파문이 소강상태로 접어들면, 문 전 대표에 대한 공세 강도를 서서히 줄여나간다. 그 상태에서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국민에게 상기해주는 간헐적 저강도 타격전략을 구사한다. 특히 문 전 대표가 당내 경선이나 야권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악재를 만나 지지율이 하락할 때 타격을 집중함으로써, 결국 야권 단일후보로 낙점되도록 유도해나간다. 이것은 중기전략이다. 장기적으로는 본선 때 결정타를 날리는 전략을 준비한다. 대선일이 임박한 시점에 빼도 박도 못 할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가장 좋은 카드다.

    “문재인 전 대표는 2007년 대통령비서실장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마저 찬성하려고 했던 유엔 대북인권결의안을 기권으로 몰고 간 주범이다. 바로 이것이 2007년 11월 당시 청와대 회의록 기록이다.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이 당시 북한과 나눈 대화록도 여기 있다. 외교부에서 나온 기록도 여기 있다.”

    10월 19일 국가정보원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은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과 관련해 이렇게 답변했다.

    “기억이 아니라 기록이며, 근거를 치밀하게 갖고 기술한 것이라고 본다. 구체적이고 사리에 맞기 때문에 사실이나 진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 자료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확답을 내놓지 않았다.

    “쪽지의 사실 여부를 확인했을 때 국가 안보에 도움이 되느냐는 기준에서 보면 지금은 말할 시점이 아니다.”

    지금은 말할 시점이 아니지만, 내년 대선 때는 말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막판 반전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물론 막판 반전으로 문 전 대표가 패배할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오히려 또 종북몰이를 한다는 역풍이 불면서 문 전 대표가 승세를 굳혀가는 또 다른 막판 반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

    빙하는 움직인다. 이것은 진실이다. 빙하를 움직이는 일꾼은 남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에도 있다. 이미 적잖은 일꾼이 탈북함으로써 따뜻한 바람에 힘을 보태는 중이다. 미국도 대선이 끝나면 일꾼들이 달라붙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지 않더라도 빙하는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저들의 힘으로 빙하가 덜컥 움직여 깨지기라도 한다면, 송 전 장관의 회고록을 둘러싼 공방 따위는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 개연성이 높다. 그때 역풍이 어디로 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물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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