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7

2016.10.05

정치

국회의장 거쳐 대통령?

정세균 의장, 제2의 이승만 꿈꾸나…2022년 도전 가능, 개헌되면 더 빨리 기회 올 수도

  • 이종훈 시사평론가·정치학 박사 rheehoon@naver.com

    입력2016-09-30 16: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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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화제의 인물은 단연 정세균 국회의장이다. 정 의장의 별명은 세균맨이다. ‘세상을 균등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스스로 세균맨이길 거부하지 않는 그가 벌이는 전쟁을 언론에서는 세균전이라 부른다. 세균전을 벌이는 이유는 뭘까. 호빵맨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뭔가 불순한 의도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세균전은 대권병 때문?

    9월 1일 정 의장이 첫 번째 전투를 개시했다. 20대 국회 첫 정기국회 개회사에서 우병우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과 관련한 의혹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이정현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중증의 대권병이 아니고서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이러한 도발은 있을 수 없다.” 9월 24일 정 의장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처리하자 이 대표는 다시 이렇게 비판했다. “아무리 정권이 욕심나고 대권병에 걸린 사람이라도 금도가 있는 법이다.”

    정 의장은 대권병 환자일까. 맞다. 이미 2012년 대통령선거(대선) 때 당내 경선에 출마했다. 2015년 11월에는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대권 도전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올해 4월 총선에서는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서 새누리당 대선후보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까지 꺾었다. 총선 직후 당연히 대선으로 직행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국회의장 취임을 결정하자 오히려 이례적이라는 시각이 없지 않았다. 대권 꿈을 접은 것일까. 그렇게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니, 전무하다. 국회의장을 거쳐 대통령에 도전하리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세균전 역시 그런 맥락에서 벌이는 것이라는 전망이 최근 힘을 얻는 추세다.

    국회의장을 거쳐 대통령이 된 사례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그래서 일반화하기 어렵다. 이 전 대통령은 이미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초기 의정원 초대 의장을 지냈다. 해방 이후 제헌의회 초대 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제헌의회 당시 내각제로 가자는 주장이 많았지만 대통령제를 고집해 관철했고, 스스로 대통령에 오른 인물이다. 특별해도 아주 특별한 경우다.



    역대 국회의장 가운데 대통령을 꿈꾼 이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의화 전 의장 역시 대권 도전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문제는 가능성이다. 정세균 의장이 내년 대선에 곧바로 출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의장 임기를 마친 뒤인 2022년에는 출마할 수 있다. 만약 개헌이 이뤄져 차기 대통령 임기가 단축된다면 기회는 더 빨리 온다. 정 의장은 적극적인 개헌론자다. 의장 취임 일성이 개헌이었다. 20대 국회 개원사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개헌은 결코 가볍게 꺼낼 사안은 아닙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외면하고 있을 문제도 아닙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중략) 국회의장으로서 20대 국회가 변화된 시대,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헌정사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주춧돌을 놓겠습니다.”

    차기 대통령 임기 단축을 전제로 한 개헌은 아직까지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하지만 확산세다. 더불어민주당(더민주)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7월부터 개헌을 공약하고 임기 절반을 포기하는 대선후보가 당선할 것이라고 예견하면서 그런 후보가 있다면 돕겠다고 강조해왔다. 정의화 전 의장 역시 9월 18일 한 인터뷰에서 “대선주자들이 차기 대통령에 한해 2년 3개월로 임기를 줄이고 취임 후 1년 이내 개헌하겠다는 공약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더민주 민병두 의원도 2020년 5월까지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기로 하고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방안을 제시했다. 새누리당 소속 권성동 국회 법제사법위원장도 6월 원론적 수준이기는 하지만, “차기 대통령이 임기 단축을 전제로 한 개헌을 약속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여야 정치인이 모여 9월 23일 개헌 모임을 발족했다. 10월 말까지 국회에 개헌 특위를 만드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정 의장의 임기는 2018년 5월까지다. 새 헌법으로 2020년 4월 대선과 총선을 함께 치른다면, 준비하고도 남을 시점이다.



    세균전 초반은 우세승?

    세균전에 담긴 전략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존재감 부각이다. 둘째, 공감대 확산이다. 과거 국회의장 중에는 존재감이 거의 없는 무색무취한 인물이 많았다. 이들은 국회 운영에서도 기계적 중립을 지향하곤 했다. 무난하게 ‘대과(大過) 없이’ 임기를 끝낸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조차 없지 않았다. 으레 국회의장은 그래야 한다는 일종의 불문율이 만들어진 이유다. 정 의장은 이것을 깼다. 그래서 이례적이지만, 헌법과 국회법 어디에도 그것을 금지하는 내용은 없다.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이지만 정치인이기도 해 정치 현안에 대한 발언을 허용한다. 국회의장은 어떠해야 할까. 국회의장이야말로 정치 1번지 입법부의 수장이자 정치인이다. 회의를 주재할 때 불편부당함이 지나치다면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입법부 수장으로서 정치 현안에 대해 발언하는 것은, 그래서 허용하는 것이 상식에도 맞다. 새누리당 출신인 정의화 전 의장도 블랙홀론을 제기하며 개헌을 반대하던 박근혜 대통령에 맞서 개헌을 거듭 강조해 청와대와 새누리당을 긴장케 한 바 있다. 정세균 의장의 세균전이 이것보다 공격적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새누리당이 반발했지만, 결국 이겼다. 개회사 발언으로 새누리당이 국회 일정 전면 보이콧에 나서는 역공을 펼쳤지만 하루 만에 접었다. 정 의장이 본회의 사회권을 국민의당 소속 박주선 국회부의장에 넘기기로 하는 선에서 합의가 이뤄진 까닭이다.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직후에도 새누리당은 2차 보이콧이라는 역공에 나섰다. 하지만 곧바로 적진 분열 양상이 벌어지면서 사실상 접는 국면으로 들어섰다. 이정현 대표가 단식농성이라는 극단적 카드까지 꺼내들었지만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차례 전투를 정세균 의장의 압승으로 결론 내리기는 힘들다. 하지만 거뜬한 우세승인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 했다. 우세승이 쌓여가다 보면 정 의장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도 올라갈 것이 분명하다.

    정 의장이 국민정서를 겨냥한 행보를 이어가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개회사 발언, 그리고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강행 처리 모두 야권 지지층은 물론, 국민 눈높이까지 반영한 행보라는 것이다. 흔한 말로 ‘사이다’ 행보로 국민적 공감대를 획득해나가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이 또한 쌓이면 정치적 자산이다. ‘이 사람 대통령 해도 되겠는걸’이란 반응이 나올 때까지 정 의장의 이슈 털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개헌은 기회인 동시에 위기

    이번 개헌은 예사 개헌이 아니다. 거의 제헌급이다. 민주화의 성과로 이룬 1987년 헌정체제를 30년 만에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개헌 작업의 총지휘자가 정 의장이다. 개헌 작업은 국회에 개헌 특위를 만드는 것에서 출발한다. 국회의장의 결단과 지지가 필요하다. 국회의장은 개헌 방향에도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여야 의견이 갈릴 때 중재하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정 의장은 개헌 정국에서 부각될 수밖에 없다. 본인 하기에 따라 상당한 국민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 의장의 내면에 제2의 이승만이 되고 싶은 열망이 불타오르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물론 녹록지는 않을 것이다. 새누리당의 사정권에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정 의장은 대선주자라 여겨지지 않은 까닭에 견제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권병 진단을 내린 마당이라 앞으로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공산이 크다. 새누리당 염동열 의원의 이런 지적이 떠오른다. “좋은 발효균이 되리라고 정세균 의장을 뽑았다. 그런데 지금은 악성균, 테러균이고 추경 파행균, 민생 파괴균이다.”

    이런 견제를 뚫고 세균맨은 뜻하는 바를 관철할 수 있을까. 가능성은 반반이다. 1차 관문은 개헌이 될 것이다. 자잘한 전투에서 우세승을 거두고도 가장 큰 전투라 할 개헌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떠들썩한 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는 무능력한 국회의장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제까지 많은 국회의장이 개헌을 주장했지만 관철하지 못했다. 그래서 정 의장이 실패하더라도 책임론을 덧씌울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절호의 기회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만큼 기대감이 크다. 기대감이 크면 실망감도 비례해 커진다. 그런 점에서 개헌은 정 의장에게 기회인 동시에 위기다. 2차 관문은 2017년 대선이 될 것이다. 대선 결과 야권이 승리한다면 정 의장이 일하기는 한결 수월해진다. 당연히 대선 출마에도 호재로 작용할 것이다. 반면 존재감 부각에 불리해지는 측면도 없진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박 대통령에게 대립각을 세우는 식의 전투를 벌이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야권의 요구가 폭증하면서 민원해결사 구실을 주문받을 개연성도 높다. 물론, 이 경우에도 잘해내지 못하면 비난만 거세진다. 과거 여대야소 상황에서 여당 출신 국회의장이 그러했던 것처럼 직권상정을 하라, 못 한다 하면서 당청과 갈등을 빚는다면 인기가 급락할 수도 있다.

    애니메이션 ‘날아라 호빵맨’에서 승자는 언제나 호빵맨이다. 호빵맨을 괴롭히는 세균맨은 결국 패배한다. 물론 현실은 그 반대 양상이다. 세균전에서 아직은 세균맨, 정세균 의장이 강세다. 이런 강세 기조를 끝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호빵맨을 닮은 이정현 대표 역시 그 나름 야전에 강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세균맨 정세균 vs 호빵맨 이정현의 3차 전투에 벌써부터 관심이 간다.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호빵맨 비유에 발끈할지 몰라 살짝 걱정이다. 하지만 웃자고 한 이야기니 싸우자고 들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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