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6

2016.09.28

정치

단체장들 너도나도 대권 도전 꽃놀이패일까

잘되면 대선후보, 못 돼도 인지도 제고…‘할 일 안 한다’ 역풍은 부담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6-09-23 16:05:1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선거는 양면성이 있다. 과거에 대한 심판적 성격도 있지만, 다른 측면에선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표심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심판적 성격이 강하면 현직을 유지한 후보와 세력에게 불리하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크면 참신한 후보, 능력이 검증된 후보에게 유리하다. 2017년 대통령선거(대선)가 끝나면 2018년 6월 13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를 치른다. 이때 몇몇 지역에서는 심판과 기대가 교차하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2014년 6월 4일 제6회 지방선거에서 단체장으로 당선한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내년 대선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내년 대선에 나설 잠재적 후보로 거론되는 단체장은 박원순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안희정 충남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이다.

    이들이 내년 대선 경선에 도전해 승리하면 ‘직’을 내려놓고 대선 본선에 나서야 해 2018년 지방선거에 출마할 일은 없다. 하지만 대선 경선에 나섰다 낙선한 이들 가운데 2018년 지방선거에 다시 도전하는 후보가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2014년 7월부터 2018년 6월까지 4년 동안 지방정부 수장으로서 얼마나 살림을 잘 꾸려왔는지를 심판받으려 하기보다, 지방선거에서 다시 한 번 선택받으면 2022년 20대 대선에 도전할 큰 인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할 공산이 크다. 재선인 박원순 시장과 안희정 지사는 내년 대선 도전이 실패로 돌아가 2018년 지방선거에 다시 나서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일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할 개연성이 크다. 우리나라 현행법상 단체장은 3번 연임하면 더는 출마할 수 없다.



    제2의 이명박 꿈꾸는 단체장들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단체장에 처음 당선한 남경필 지사와 원희룡 지사는 2018년 지방선거는 재선에 도전하는 선거다. 이들이 연임에 성공하면 20대 대선을 치르는 2022년 임기를 마치게 된다. 즉 단체장으로 8년 임기를 마친 뒤 그 성과를 바탕으로 20대 대선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개헌 등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조정하는 급격한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얘기다.

    단체장의 대선 도전 성공 사례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시장 재임중 내놓은 ‘청계천 복원’과 ‘대중교통시스템 개편’ 등 가시적이고 실효적인 성과가 국민에게 높은 호응을 얻었다. 대선을 1년 반 앞두고 시장직에서 물러났지만, 2007년 국민 여론에 힘입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서 승리했고, 그해 말 대선에서도 낙승을 거뒀다. 이 전 대통령은 시장직 임기를 마친 뒤 대선 경선에 뛰어들었다는 점과 재임 중 치적에 대한 높은 국민적 평가가 유력 대선주자로 발돋움한 배경이 됐다는 것이 특징이다.



    반대로 단체장이 대선에 도전했다 실패한 사례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먼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다. 김 전 지사는 현직을 유지한 상태에서 2012년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 뛰어들었고, 경선 패배 이후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 임기를 마쳤다. 다른 사례는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 김 전 지사는 대선에 전념하겠다며 임기 2년 만인 2012년 7월 지사직을 벗어던진 뒤 ‘배수의 진’을 치고 대선 경선에 도전했다. 하지만 경선에서 낙선해 본선 진출도 못한 그는 한동안 ‘지사직 사퇴’에 대한 비난 여론에 시달려야 했다.

    최정묵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은 “김문수 전 지사는 임기를 마쳤지만 현직을 유지한 채 대선 경선에 나서 ‘진정성’에 의심을 받았고, 김두관 전 지사는 지사직 사퇴로 대선에 대한 진정성은 인정받았지만 자신을 도지사로 뽑아준 유권자와 약속을 개인적 야심 때문에 이행치 못했다는 비난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다”며 “정치적 내상으로 보면 김두관 전 지사가 더 컸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 대선을 1년여 앞두고 대선 도전을 저울질하는 단체장의 대권 행보가 눈에 띄게 늘었다. ‘시민’과 ‘도민’보다 ‘국민’을 입에 올리는 경우가 더 많다. 박원순 시장은 9월 24일 도올 김용옥과 대담한 책을 매개로 토크콘서트를 연다. ‘국가를 말하다’라는 토크쇼 제목은 박 시장의 마음이 이미 서울시정보다 대권에 가 있음을 잘 보여준다.



    김문수의 길 vs 김두관의 길

    남경필 지사가 ‘모병제’ 도입을 제기하고 청와대의 세종시 이전 등을 주장하고 나온 것 역시 경기도정을 더 잘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대선주자로 나서기 위한 행보로 읽힌다.

    안희정 지사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되자 충청권에서 불고 있는 ‘반기문 대망론’을 잠재울 대항마는 자신이라고 어필하고 있다. 원희룡 지사는 아직 대선 도전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그 역시 언제든 상황에 따라 대선에 도전할 수 있는 잠재후보로 분류된다. 원 지사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 뛰어든 경험이 있다.

    이들 단체장이 대선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여야 어느 쪽에서도 확실한 대선주자가 떠오르지 않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고,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에서 심판받으면서 대선 지형이 그 어느 때보다 유동적인 상태로 변했다. 더욱이 여야 모두 대세론이라 할 만한 높은 지지를 받는 유력 주자가 없어 누구에게나 ‘가능성’이 열렸다고 볼 수 있다.

    현행법상 현역 단체장들은 대선 90일 전까지 직에서 물러나면 대선 본선에 나설 수 있다. 여야는 내년 6월, 늦어도 8월 이전까지 대선후보를 확정 짓겠다는 계획이다. 단체장이 직을 유지한 채 대선 경선에 뛰어들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충분한 셈. 이들 단체장이 대선 경선에 나서는 것은 양수겸장(兩手兼將)의 의미가 있다. 대선 경선에서 승리하면 본선으로 직행할 수 있어 정치적 고속성장의 기회가 열리는 것이고, 만약 경선에서 패하더라도 전국을 돌며 끌어올린 높은 인지도가 대선 이듬해 치를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단체장의 대선 경선 도전을 해당 지방자치단체 유권자들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유불리가 달라질 수 있다. ‘해야 할 일’을 등한시하고 ‘하고 싶은 일’만 했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면 오히려 대선 경선 도전이 이듬해 지방선거의 패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숙현 시사칼럼니스트는 “단체장들이 임기를 채우지 않고 대선에 출마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유권자와 한 약속을 깨는 행위다. 단체장은 정치 경험을 쌓는 경로로 생각할 수 있지만 정책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위해 임기를 채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