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3

2016.08.31

정치

김종인의 속내 ‘노병은 잠시 물러날 뿐’

친문 지도부 등장으로 ‘도로민주당’ 되면 목소리 다시 커질 듯

  • 유창선 시사평론가 yucs1@daum.net

    입력2016-08-29 17: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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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안 된다. 그게 상식인데 상식을 밑도는 사람이 많다.”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의 8·27 전당대회를 끝으로 물러나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최근 한 말이다. 자신에게 등을 돌린 주류, 그러니까 문재인 전 대표 측을 향한 섭섭함의 토로였다. 자신이 더민주에 들어와 당을 구하고 총선에서 원내 제1당으로까지 만들었는데도 고마워할 줄 모르고, 오히려 자신을 흔들어댄다는 불만이 가득 담겨 있다. 사실 김 대표의 지난 7개월을 돌아보면 천당과 지옥을 오간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무너지기 직전의 더민주를 구한 구세주라는 소리를 듣다가, 어느 사이 노욕에 사로잡힌 고집불통으로 낙인찍혀 물러나는 신세가 됐다. 그의 ‘본색’이 드러난 탓일까, 아니면 점점 거추장스러워지는 그를 더민주 주류 세력이 팽한 것일까.



    수렁에 빠진 민주당 구하기 7개월

    지금이야 어떤 평가를 받든, 7개월 전 김 대표가 보인 활약상은 가히 눈부셨다. 그가 더민주에 발을 디뎠을 때 당은 붕괴 직전 상황이었다. 안철수 의원을 비롯해 비주류 의원의 탈당이 이어졌고 박영선, 이종걸 의원의 탈당도 임박했다. 이들 수도권 중진마저 탈당하면 더민주가 주저앉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감돌았다. 그 상황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이 김 대표였다. 그는 전권을 부여받아 당을 급속도로 안정시켰고 탈당 사태는 진정됐다. 그 후 김 대표의 리더십에 힘이 실렸다. 특히 그는 뛰어난 정무적 감각을 과시하며 순식간에 제1야당을 평정하는 노련한 카리스마를 보여줬고, 언론은 그에게 ‘차르(군주)’라는 호칭을 부여했다.

    김 대표는 자신이 더민주에 들어온 목적을 분명히 했다. 더민주를 집권할 수 있는 정당으로 탈바꿈해 정권을 잡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집권할 수 있다’는 봉이 김선달 식 얘기로 그냥 넘기기에는, 그가 제시한 수권정당론의 콘셉트가 분명했다. 운동권 출신 강경파가 주도하는 이념정당, 계파 패권주의가 지배하는 정당 이미지에서 벗어나 외연을 확대해야 집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더민주의 근본적 개조를 내걸었던 것이다. 이는 사실 그를 영입한 문 전 대표도 외면할 수 없는 문제였다. 확장성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문 전 대표 처지에서도 내년 대통령선거(대선)를 생각하면 외연 확대는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과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대표의 수권정당론은 문 전 대표에게도 약으로 받아들여졌고, 한때 두 사람이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인식된 이유였다. 물론 동반자관계는 이제 깨진 상태지만 말이다.

    원래 시끄러운 것에 익숙한 제1야당 안팎에서도 김종인 차르의 1인 통치는 숱한 논란거리가 됐지만, 어쨌든 더민주는 4·13 총선에서 원내 제1당이 되는 기대 이상의 승리를 거뒀다. 물론 새누리당의 자멸에 가까운 막장 공천으로 반사이익을 봤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승리는 승리다. 총선 승리 후 김 대표가 계속 당권을 쥐고 갈 가능성을 타진한 것도 자신의 공에 대한 인정 요구라고 하겠다. 하지만 김종인은 이미 당내 주류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는 인물이 됐다. 그에게는 총선 승리의 공을 덮고도 남을 심각한 문제들이 있었다. 





    외면당한 독불장군 리더십

    김 대표는 자신을 흔들어댄 쪽이 문 전 대표 측 사람들이라고 의심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계파로부터 인심을 얻은 것도 아니다. 언제나 자기주장만 옳다 하고 다른 의견들은 일언지하에 폄하해버리는 습관적 언행은 그가 야당 리더로 뿌리내리는 데 결정적인 걸림돌이 됐다. 체질적으로 토론과 논쟁에 익숙한 야당 사람들은 과거 3김 시대에도 볼 수 없던 절대군주적 위상을 요구하는 김 대표가 거북스러웠다. 그가 제시하는 방향이 아무리 옳다 해도 소통하면서 이견을 조정할 줄 모르는 그에게 당권을 더는 맡기기 어렵다는 공감대는 계파 불문이었다. 김 대표는 정당민주주의 부적응자였고, 그런 리더십으로 변화된 시대의 야당을 이끌어가는 것은 무리였다.

    그리고 김 대표의 중도 지향적 노선 또한 야권 지지층의 반발에 직면했다. 야당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외연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외연 확대에만 매달려 야당의 정체성을 포기했다는 비판이 그를 향했고, 이는 결국 전당대회 과정에서 당권주자들의 김종인 비판으로 터져 나왔다. 자신과 다른 의견에 공격적이고 적대적 태도를 취하는 김 대표는 당내 진보적 흐름과 중도적 흐름을 조정하는 정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물러나게 됐다.

    그렇게 보면 김 대표의 더민주 개조 프로젝트는 일단 실패로 끝난 듯하다. 사실상 김종인 체제를 부정하는 8·27 전당대회 분위기가 그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렇게 물러난다고 그의 존재감이 사라지리라 보는 것은 성급하다. 제1야당 리더로서 김종인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그가 던진 수권정당론의 화두는 오히려 새롭게 조명받을 만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민주 상황 자체가 그렇다. 더민주 전당대회에서는 강력한 ‘친문 지도부’가 구축될 것이 유력시된다. 그럴 경우 초래될 확장성의 차단으로 당 안팎에 있는 비문재인(비문) 세력들은 정권교체 가능성에 우려를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김부겸, 박원순, 안희정, 이재명 등 당내 대선주자 가운데 누구도 그 우려를 결집할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대선 정국에서 김 대표는 비문 주자들을 아우르며 문재인을 넘어설 대안을 만들어내는 구심점이 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더민주가 ‘도로민주당’으로 갈 수 있다는 김종인의 경고는 대선 정국에서 자신이 그것을 막아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렇게 보면 더민주의 상황은 묘하다. 과거 비주류 세력 태반이 국민의당으로 갔다. 그 무렵 문재인이 내민 손을 잡고 김종인이 들어왔다. 그 김종인이 진공 상태가 된 비주류 자리를 차지하려는 조짐이다. 돌고 도는 판국이다. ‘친문 지도부’의 등장이 문재인의 대선가도에 고속도로가 될지, 아니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가는 ‘도로민주당’이 될지 김종인 이후 더민주가 안고 있는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김종인이 다시 큰소리칠 시간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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