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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 교육은 반성해본 적이 없다”

교육혁신위 전성은 위원장 “권력과 경제발전 수단으로 이용 안 돼 … 장애아교육에 큰 관심”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우리 교육은 반성해본 적이 없다”

“우리 교육은 반성해본 적이 없다”
7월31일 교육혁신위원회(위원장 전성은·이하 교육혁신위)가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4층에 간판을 내걸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공약으로 지속적인 교육개혁을 위해 교육혁신위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정부 출범 후 수개월이 지나도록 교육혁신위의 윤곽조차 그리지 못했다. 5월경 청와대를 중심으로 교육혁신위 준비팀이 만들어지면서 한때 6월 초 출범설이 유력했으나, 이조차도 인적 구성의 편향성과 졸속 추진이 문제가 돼 좌초했다. 결국 6월4일 전성은 거창 샛별중학교 교장(59)이 위원장에 내정된 후 교육혁신위 설치 논의는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됐다.

그로부터 두 달 후인 7월31일, 23명(당연직인 교육부총리 및 청와대 정책실장 포함)의 위원 명단과 교육혁신위의 활동방향이 발표되자 교육계는 신선하다는 반응이다. 일단 21명의 위원을 살펴보면 지방대 교수가 10명, 교장·교사 출신이 6명, 서울 소재 대학 교수가 2명, 그외 3명 등이다. 이는 과거 교육개혁위원회(이하 교개위), 새교육공동체위원회(이하 새교위),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이하 인자위)의 인적 구성과 판이하다. 문민정부 시절 교개위는 교육개발원 출신 학자들과 대학교수 중심이어서 학교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했고, 국민의 정부 시절 새교위는 교사와 학부모를 구색 맞추기용으로 끼워넣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후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가 탄생하면서 만들어진 인자위는 인적자원 개발을 앞세워 교육이 아닌 산업노동계를 대변하는 기구로 전락했다. 이번에 순전히 ‘새 얼굴’들로 구성된 교육혁신위가 말 많고 탈 많은 교육개혁의 키잡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8월13일 전성은 위원장으로부터 공식 출범의 변을 들었다.

-교육혁신위의 출범이 지연되다 보니 ‘참여정부 교육개혁은 물 건너갔다’는 말까지 나왔다. 지난 두 달 동안 무엇을 했나.

“청와대로부터 위원장에 내정된 것을 확인하고 조직 구성에 들어갔다. 먼저 사방에 추천을 의뢰하고 두 달 동안 직접 광주, 진주, 대구 등 전국을 누비며 사람들과 만났다. 일종의 ‘선’을 본 것인데 이번 인선에서는 이론적 전문성보다 현장 실천성을 우선했다. 예를 들어 이재강 공군대령에 대해 ‘왜 현역군인이 여기에 끼었나’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공군기술고등학교 교장으로서의 노하우를 빌리기 위해 모신 것이다. 서울대, 연세대 교수가 한 명도 없는 것은 의도해서가 아니라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을 뿐이다. 우리가 정한 교육개혁 과제에 적합한 인물을 찾았을 뿐 특정 대학과 전공, 단체에 안배하지는 않았다. 또 최근 교육계의 갈등과 관련해 자칫 교육혁신위가 싸움의 장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특정 단체를 대변하는 사람은 뽑지 않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21명 중에 내가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정부의 교육개혁기구들이 단순 자문기구여서 활동의 한계가 분명했다. 새로 설치될 교육혁신위는 독립 의결기구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결국 무산됐는데 앞으로 교육부와는 어떻게 위상을 정립할 것인지 궁금하다.



“교육혁신위의 역할은 교육 문제의 근본 원인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열이 나면 감기인지 아닌지 정확한 원인을 파악해야 치료를 할 수 있는데 우리 교육계는 잠시 증세만 없애면 병이 낫는 것으로 착각했다. 김민남 교수가 ‘실타래론’을 말했는데, 바로 그것이다. 엉킨 부분을 살살 잡아 빼면서 다시 감아야 한다. 교육혁신위와 교육부의 위상을 놓고 옥상옥이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교육개혁의 방향을 정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한다면, 교육부는 당장의 현안을 해결하고 집행하는 기능을 할 것이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문제라든가 사교육비 경감, 교장 임용 제도 개선과 같은 현안들은 교육부의 몫이다. 그동안 윤덕홍 부총리를 세 차례 만났는데 교육개혁의 좋은 동반자가 될 거라 믿게 됐다.”

-교육혁신위 출범에 부쳐 ‘교육이 더 이상 권력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교육을 바로 세우는 데 먼저 부끄러운 과거사에 대한 고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일제 강점기 교육의 목적은 충실한 황국신민의 양성이었다. 독립사상을 고취하거나 실력을 길러 나라를 되찾자고 가르치면 학교에서 쫓겨났다. 자유당 시절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로 모시고 체제를 선전하는 데 교육이 이용됐다. 내가 서대문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 대표로 글짓기대회에 나갔는데 그날이 2월26일 우남 이승만 대통령의 생일이었다. 글짓기 주제가 ‘국부 이승만 아버지’였던 걸로 기억한다. ‘존경하는 이기붕 선생님께’라는 주제로 글짓기도 했다. 50대 초반의 사람들이 ROTC 장교로 임관할 때 ‘박정희 대통령과 이순신 장군의 유사점을 논하라’는 시험을 치르지 않았나. 80년대에는 각 학교에 학생들을 골라 삼청교육대에 보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대학에서는 교수들 시켜 학생들 데모 막기에 바빴다. 우리나라 교육은 한 번도 이런 사실에 대해 반성해본 적이 없다. 교육은 권력 유지나 경제발전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잃어버린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장애아교육’ ‘영유아교육’ ‘직업교육’을 구체적인 개혁 과제로 발표하자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장애아교육의 경우,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엽적인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 뜻밖이다.

“과제 설정의 기준은 지금 빨리 시작해야 할 일, 그리고 그 결과가 몇 년 뒤 확실하게 나타날 수 있는 일로 정했다. 한국사회는 성장과 진보라는 두 개의 바퀴를 굴리느라 그 바퀴에 치인 아이들을 보지 못했다. 앞서 말했듯이 잃어버린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는 교육의 출발점이 장애아 교육이다. 정상아들은 어쨌든 교육을 받지만 장애아들, 흔히 자폐아라고 하는 정서부적응아의 경우 제대로 교육을 받는 비율이 10%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나도 놀랐다. 왜 이렇게 됐는지 거슬러 올라가보자. 1960년대 후반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의 교육학자를 초청해서 ‘education as power’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60, 70년대에는 말 그대로 학생들을 자본의 하나로 보고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값 싸고 질 좋은 노동력을 키워내는 교육에만 주력했다. 물론 그런 교육이 한국의 경제성장에 큰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지만 정보사회로 급격히 이동하는 90년대에도 교육은 여전히 산업전사 타령만 하다가 오늘날 공고, 실업고, 이공계의 위기를 불러왔다. 한편 국가의 경제성장을 목표로 모든 정책을 세워나가다 보니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부담이 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내팽개쳤다. 장애아교육뿐만 아니라 저소득층 영유아교육, 성적 하위 30% 아이들의 직업교육의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는 허상이다.”

-교육혁신위 출범 직후 한 인터뷰에서 ‘서울대의 지역균형선발제가 지방대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발언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누구보다 지방교육의 현실을 잘 알고 있는 입장에서 해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지방의 소도시와 읍·면 단위 학교들은 1년에도 몇 개씩 없어지는 반면 서울 등 주요 도시에서는 새로 학교를 짓고 학급 수를 늘리느라 야단법석인 게 한국의 현실이다. 궁여지책으로 시·도 교육감들끼리 합의해서 시·도간 진학을 막았더니, 학부모들이 아예 해당 학교가 있는 도시로 이사를 해버려서 어느 군의 경우 한 해 인구가 2000명씩 빠져나간 일도 있다. 이런 식으로 막는다고 지방교육이 살지 않는다. 지방교육을 강화하자는 것은 기초자치단체에 교육에 관한 모든 권한을 주자는 뜻이다. 그것을 행정자치부에서는 지방분권이라 하고 교육부에서는 자치라 하는데 결국 같은 의미다. 지난 5년 동안 논의만 하다 실행하지 못한 교육자치를 본격적으로 실시하겠다.”

전성은 위원장은 일문일답을 피한다. 우리 교육의 문제가 인스턴트식 처방에서 비롯됐다는 거부감 때문인지 하나의 문제를 제기하면 역사적 원인에서부터 진행과정, 오늘의 현실까지 짚고 넘어간다. 전위원장은 우리 사회가 교육개혁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 불과 10년 전이라고 했다. 군사독재 시절 막혔던 입이 열리면서 개혁의 요구는 봇물처럼 터졌지만 땜질식 처방으로 지금까지 버텨왔다. 그래서 참여정부의 교육혁신위가 내세운 것은 ‘확실한 것부터 천천히’다. 그는 교육의 본질을 “거쳐야 하는 과정을 다 거치고 나서야 결과에 이르는 인간화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민들에게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 달라고 당부하고 있었다.



주간동아 2003.08.28 399호 (p40~41)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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