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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전파는 화성에서 오는 신호

  • < 하지현 / 용인정신병원 진료과장 >

라디오 전파는 화성에서 오는 신호

라디오 전파는 화성에서 오는 신호
라디오는 구시대의 아련한 향수를 주는 미디어로, 21세기 최첨단 매체인 인터넷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20세기 초반에 라디오가 세상에 나와 사회에 퍼진 역사를 살펴보면 인터넷이 라디오의 손자뻘쯤 된다는 것, 또 지금의 인터넷 세상이 100년 후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라디오는 대서양을 횡단하는 군함과 선박의 교신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처음으로 개발되었다.

1908년경부터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하위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아 라디오 공작, 라디오 교신과 관련한 다양한 잡지가 나와 첨단기술로 각광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 정부는 라디오를 양산하고 방송국을 허가했으며 이때부터 1922년에 10만 대, 1923년에는 50만 대가 팔려 빠른 속도로 대중화의 길을 걸었다.

당시 사람은 라디오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느꼈으며 가장 빠른 의사소통 수단이며, 도시와 시골의 정보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받아들였다. 이와 동시에 1920년대부터 라디오라는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근원적 두려움, 불안감 또한 점차 커져 대중잡지에서는 라디오의 가능성과 위험성에 대한 논쟁기사가 자주 실렸다. 실제 1920년 ‘사이언티픽 아메리카’(Scientific America)라는 대중과학잡지에는 ‘라디오의 전파는 지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화성에서 오는 신호일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실렸으며 다른 잡지에는 라디오를 통해 인간과 우주와의 교신이 가능할 것이라는 삽화도 있었다.

선 하나 연결하지 않은 자그마한 나무상자에서 사람의 목소리와 음악이 흘러나오니 얼마나 놀랍고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겠는가. 이런 상황은 1938년 오손 웰스가 방송한 라디오 드라마 ‘화성침공’이 미 동부 일대의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며 정점에 이르렀다. 이에 편승해 1920~30년대의 미디어 학자들은 라디오가 인간관계와 가정생활을 파괴하는가 하면 사람은 라디오 때문에 의사표현 능력이 감소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잇달아 발표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더라도 인터넷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은 ‘어, 이거 무척 비슷한데(?)’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인터넷은 냉전시대에 핵폭탄이 투하되어 모든 통신수단이 파괴되고, 정보가 소실되더라도 네트워크로 분산되어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하려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후 학문적 목적으로 유즈넷이 이용되면서 일부 특수 계층이 애용하다 1989년 월드와이드웹(WWW)이 개발되며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우리 나라의 경우만 해도 인터넷 인구는 올 초 국민의 절반인 2000만 명을 넘어섰다. 그 결과 최근 언론과 학계에서는 인터넷이 갖는 다양한 가능성과 대안매체로서의 장점뿐만 아니라 사회적·심리적인 차원에서 발생하는 부작용들에 대한 보도와 연구가 줄을 잇고 있다.



라디오 첫 등장 때 충격적 반응

라디오와 인터넷의 유사점 중 특히 부정적인 병리현상에 대한 논의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논의의 전개과정도 거의 닮은꼴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사회 구성원들이 새로운 미디어를 맞이하는 심리상태는 100년 전이든 지금이든 아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잘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아주 빠른 속도로 다가오면 일단 불안해하고,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 그러다가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해지고, 그것을 사용하는 데 익숙하게 되면 불안감이나 위험을 느끼는 감정도 함께 줄어들어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치곤 한다. 특히 그것이 세대나 사회문화적 차이와 맞물려 있는 경우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최근 인터넷의 갖가지 부작용과 관련한 문제들도 우리 사회가 새로운 미디어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안감과 여기서 생긴 거품에 편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간이 흘러 인터넷이 라디오처럼 실생활의 일부가 된 후에는 자연스레 거품이 빠지며 이러한 걱정도 눈 녹듯 사라질 것이다. 인터넷의 할아버지뻘인 라디오의 100년 역사가 말해주는 교훈이 바로 이것이다.



주간동아 2001.07.12 292호 (p81~81)

< 하지현 / 용인정신병원 진료과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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