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2

2001.07.12

“내라면 내” … 말 많은 무가지 과세

‘20% 이상은 접대비’ 꿰어맞추기식 억지 주장 … 국세청 추징액 부풀리기 의혹

  • < 성기영 기자 > sky3203@donga.com

    입력2005-01-05 15: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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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라면 내” … 말 많은 무가지 과세
    23개 중앙언론사에 대한 동시 세무조사가 일단락하고 국세청이 각 회사별 세금 추징액을 확정 발표함에 따라 각 언론사들의 대응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800억 원 이상의 세금을 추징당한 동아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 등 ‘빅3’ 언론사들이 한결같이 법적 대응을 선언함에 따라 향후 재판 진행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언론사들에 대한 동시 세무조사가 전무후무한 사실이었다는 점 때문에 무가지에 대한 접대비 처리, 외국계 기업광고 게재에 대한 영세율 적용 여부 등을 사법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놓고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세금을 추징당한 언론사들이 과세 적부심이나 이의신청 등의 절차를 거쳐 행정소송을 제기할 경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마무리하는 데에는 최소한 2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은 이번 세무조사로 유료 신문대금의 20%가 넘는 무가지를 접대비로 보아 이에 대해 모두 688억 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무가지의 접대비 처리 부분은 국세청과 해당 신문사 간 가장 치열하게 논란을 빚고 있는 부분. 접대비는 세법상으로도 상당히 포괄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만큼 무가지에 대한 국세청의 세금 부과가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이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세법상 포괄적 정의 법적 근거 논란

    이러한 논란에 대해 법무법인 율촌의 우창록 변호사는 “무가지의 용도 역시 회사에 따라, 지역 실정에 따라 다양할 것이기 때문에 무가지의 성격을 일률적으로 규정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주장했다. 우변호사는 “무가지를 접대비로 보려면 무엇보다 영업 신장을 위해 ‘특정인에게’ 혜택을 주었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제약회사가 신제품을 개발한 뒤 제품 홍보를 위해 특정 병원이나 약국에 이를 집중적으로 제공했다면 이를 접대비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으나 거리의 행인들을 상대로 무료 판촉활동을 벌였다면 이는 접대비가 아닌 단순 광고홍보비라는 것이다.



    신문사들의 무가지 관행이 ‘특정한 대상자’라는 접대비의 요건을 갖추었는지는 의문이다. 한 신문사의 판매담당자는 “지국에서 독자 확장을 위해 주소나 전화번호도 모르는 주민을 상대로 확장지를 뿌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접대비로 본다는 것은 억지 논리”라고 주장했다. 김&장 법률사무소 세무담당 박동희 회계사도 “신문사들의 무가지 중에는 지국 단계에서 파기한 신문이나 배달 사고를 대비한 추가 인쇄분 등 다양한 성격의 것들이 혼재해 있기 때문에 국세청이 이들 중 얼마만큼이 ‘특정한’ 독자들에게 직접 전달되었는지를 입증해 과세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회계사는 “언론사 세무조사가 정치적 쟁점이 된 점을 감안해 전반적으로 추징 액수를 부풀려 발표한 흔적이 짙다”고 지적했다.

    “내라면 내” … 말 많은 무가지 과세
    국세청이 내놓은 ‘20% 이상은 접대비’라는 논리도 구체적 과세 근거가 없는 꿰어맞추기식 주장이라는 지적이다. 언론계와 대다수 경제 전문가들이 반대했음에도 공정위가 제정한 신문고시상에 무가지 비중은 유료 신문대금의 2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공정위가 신문고시를 제정하면서 내세운 기준에 지나지 않을 뿐 국세청이 과세의 근거로 삼는 것은 난센스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공정위조차도 신문고시 위반행위에 대한 신고가 들어올 경우 자율규약에 의한 우선처리 규정을 내세워 신문협회가 우선적으로 자체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지난 96년, 신문사들이 과당 경쟁하고 있다는 일부 여론에 따라 신문사들이 자율 결의한 내용에서도 ‘무가지가 20%를 넘지 않도록 한다’는 규정이 들어 있다. 국세청도 무가지를 접대비 처리하면서 ‘신문사들의 자율 결의를 감안해 20%까지는 접대비로 보지 않는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그러나 이 역시 신문사들이 자체 결의한 20%라는 수치가 수백억 원대 과세의 근거로 돌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조세 전문가들은 세법에도 없는 ‘20% 이상은 모두 접대비’라는 논리를 내세운 것은 조세법률주의, 곧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기본원칙을 무시한 것이라 비판하고 있다. 서울지방세무사회 회장을 지낸 정명화 세무사는 “유료 신문대금의 20% 이상을 접대비로 간주한 국세청의 방침은 세법상 ‘실질과세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질과세의 원칙’이란 세금의 명칭이나 형식이 어떠하든, 또는 납세자가 누구든지 간에 실제로 부담한 사람이 누구이며 어떤 용도로 쓰였느냐는 것을 의미한다. 정세무사는 “공무원이 신문을 무가지로 보았다고 해서 뇌물을 받거나 접대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말했다.

    국세청의 논리를 따르면 화장품 샘플도 일정 비율 이상 나눠주면 ‘접대비’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결국 업종의 특성이나 마케팅 관련 비용의 지출 방식에 따라 접대비 정의나 한도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세금을 추징당한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행정소송을 통해서라도 부당한 세금 부과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이러한 특정성 여부는 향후 재판과정에서도 가장 첨예한 논란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세무조사 결과를 지난 94년 실시한 세무조사와 비교해 보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장 법률사무소 박동희 회계사는 “무위탁 광고나 무가지 문제 등을 94년 당시 세무 당국이 인지하고도 과세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과세했다면 국세기본법상 ‘신의 성실 원칙 위반’에 해당하는 것으로 과세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국세청을 상대로 언론사들이 소송을 시작하면, 94년 당시 세무조사 자료가 법정증거로 제출될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지적을 종합하면 국세청은 나중에 재판에서 패소한다 하더라도 언론사 세무조사에 쏠린 권력 핵심부와 정치권, 그리고 국민의 여론을 감안해 최대한 추징액을 부풀리려 한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의 탈세 행위에 대해 국세청이 단죄하는 것은 국세 행정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세 전문가들도 반론을 제기하는 부분까지를 몽땅 포함해 탈세 규모를 의도적으로 부풀리기 했다는 것은 이번 세무조사의 목적이 ‘조사’ 그 자체가 아니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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