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7

2001.01.11

‘왕릉과 삼국유사’로 역사여행 출발!

  • 입력2005-03-08 14: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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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릉과 삼국유사’로 역사여행 출발!
    신라와의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 작가 강석경씨(49)와 국문학자 이도흠씨(42)가 그 주인공. 이들의 신라 사랑이 두 권의 책으로 태어났다. 강석경씨는 수년 전 아예 거처를 경주로 옮기고 신라 왕릉을 산책로로 삼더니 드디어 ‘능으로 가는 길’을 펴냈다.

    이도흠씨(한양대 국문학 강사)는 ‘화쟁기호학’이라는 이론을 만들었고 지난해 ‘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라는 책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은 젊은 학자다. 그동안 이씨는 ‘화쟁기호학’을 토대로 ‘삼국유사’를 분석한 2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이번에 그 논문들을 대중적으로 풀어 쓴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를 냈다.

    한 사람은 왕릉에, 다른 한 사람은 ‘삼국유사’에, 시선이 머무는 자리만 다를 뿐 두 저자는 신라와 신라문화의 재발견이라는 주제에 천착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이도흠씨가 왜 신라로 눈을 돌리게 되었는지, 또 화쟁기호학이란 무엇인지 간략하게나마 알고자 한다면 책의 마지막 장부터 읽기를 권한다. ‘오늘 신라인이 몹시도 눈에 밟힌다’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삼국유사’를 읽으며 신라가 당나라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삼국통일을 하는 바람에 드넓은 만주대륙과 고구려의 기상, 동이족의 문화와 예술을 상실했다는 생각을 바꾸게 됐다고 말한다. 특히 ‘삼국유사’를 통해 우리문화와 예술을 형성하는 고유의 원리가 있었음을 확신하게 됐고 그것에 대한 답이 ‘화쟁’(和諍)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이씨는 만약 신라의 삼국통일이 없었으면 우리 고유문화는 없었다는 단호한 결론을 내린다.

    다시 책머리로 돌아오면 왜 그가 ‘삼국유사’를 텍스트로 삼았는지 알 수 있다. 이씨는 ‘삼국유사’를 신라인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타임머신이라고 했다. 설화와 역사, 팬터지와 미메시스, 꿈과 사실이 한데 뒤엉켜 있는 텍스트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은 어느 부분에서는 구체적이고 실증적으로 역사를 서술하다가 어느 부분에서는 너무 신비스럽고 환상적으로 서술해 혼란을 준다. ‘삼국유사’에서 역사와 설화를 구분하고, 특히 온갖 상징과 은유로 가득한 설화 부분을 해독하는 것이 이씨의 관심영역이다.



    예를 들어 신라6부족의 촌장들이 모두 하늘에서 산으로 내려왔다는 기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산의 장엄함 때문이라는 심리설과 산이 제공하는 갖가지 과일이나 동물, 약초 때문이라는 경제설 등이 있지만 그것은 당시 신라인의 세계관 혹은 우주관으로 설명돼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신라인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 세계가 있고 현실 세계 저 너머 하늘 저쪽과 바다 건너 저편에 타계인 하늘(천상계)과 바다(해양계)가 있다고 믿었다. 그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산이고, 바다와 현실의 경계는 내(川)와 호수다. 그래서 산신신앙이 발달한 신라의 왕들은 모두 산신의 아들이고 죽으면 다시 산신이 되었다. 신라의 여섯 시조신이나 박혁거세도 산신이거나 산신의 아들로 나온다.

    이처럼 저자는 문학, 역사와 철학, 문헌과 고고학적 성과를 종합해 ‘삼국유사’를 다시 읽어내려 갔고, 신라인을 현대적 의미로 살려내기도 한다. 영혼이 되어서까지 미녀 복사꽃 아씨와 살을 섞고자 한 진지왕, 거짓말을 하고 백성을 속여 당나귀 귀가 된 경문왕, 노래 하나로 혜성을 물리치고 일본 병사를 돌아가게 한 융천사, 인근 백성들을 감동시켜 영묘사를 지은 신라 불상조각의 명장 양지, 귀신도 홀릴 만큼 아름다웠던 수로부인은 바로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왕릉과 삼국유사’로 역사여행 출발!
    강석경씨의 ‘능으로 가는 길’은 제목 그대로 경주 왕릉 답사기다. 하지만 여기서 ‘능으로 가는 길’은 단순한 공간이동의 의미를 넘어 과거로의 시간이동을 의미한다. 강씨는 책 서문에서 “내가 사랑하는 신라는 물론 환상 속의 시공간이다. 선덕여왕의 꿈이 서린 황룡사 터에 서서도 재벌회사의 고층 아파트를 마주보아야 하는데, 경주는 고도라기보다 관광도시가 되었다. … 나는 현실을 사랑한 적이 없으니 능을 다니며 고대인들과 대화하고 환상을 지킬 수밖에”라고 고백한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와 함께 자연스럽게 과거로 이동하게 된다. 저자는 “폐가의 뜨락에서 꺾어온 동백 한 가지가 꽃잎을 열더니 대능원의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면서 봄이 다가왔다”는 식으로 계절감이 물씬 느껴지는 정경묘사로 시작해, 능으로 가는 산책길에서 떠오를 만한 온갖 단상들을 나열하며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신라인들의 세계로 진입한다. 그리고 박혁거세와 부인 알영, 2대 남해 차차웅, 3대 유리 이사금, 5대 파사 이사금 등 박씨 왕이 묻혀 있다는 오릉(五陵)에 이르면 무덤 주인들과 대화하지 않을 수 없다.

    강석경씨는 문명, 집착, 유목민의 꿈, 슬픔, 고독, 위로, 민초들의 꿈, 남성적인 것, 여성적인 것, 아름다움, 영혼 등 열 가지 주제로 유적을 돌아보는 새로운 답사법도 개발했다. 진덕왕릉과 선덕왕릉을 돌아볼 때는 ‘슬픔’이라는 감정에 휩싸인다.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왕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여왕의 주변에는 그를 사랑하다 불의 귀신이 된 지귀와 같은 존재들이 있다. 그 사랑을 저자는 ‘슬픔’으로 묘사한다. 강씨의 접근법은 매우 쉽다. 그의 안내대로 능을 답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신라문화를 접하게 된다. 여기에 강운구씨의 단정한 사진들이 처음 답사여행에 참가한 사람들을 돕는다.

    굳이 순서를 정하라면 먼저 강석경씨의 ‘능으로 가는 길’을 읽고 실제 경주 답사를 하고 돌아와 차분하게 이도흠씨의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를 잡는 것이 좋다. 여력이 된다면 해설서가 아닌 ‘삼국유사’ 그 자체를 읽어보자.

    능으로 가는 길/ 강석경 지음/ 창작과비평사 펴냄/ 284쪽/ 1만5000원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 이도흠 지음/ 푸른역사 펴냄/ 356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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