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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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여자, 그리고 고통

  • 입력2005-03-08 14: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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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과 여자, 그리고 고통
    고래로 남자들은 끊임없이 전쟁에 나가고 여자들은 후방에 남아 생계를 돌보고 아이들을 키운다. 남자들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지만 여자들은 전쟁에 패배하면 정조를 잃기도 하고 노예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치욕과 억압 속에서도 여자들은 살아남아야 한다. 여자이기에 앞서 어머니이고 아이들을 길러 미래를 기약해야 하기 때문이다. 희랍극 ‘트로이의 여인들’ 이래로 ‘전쟁과 여성’은 연극의 중요한 테마다.

    젊은 여성 작가 정우숙의 신작 ‘내가 죽은 이유’(1월7일까지 바탕골 소극장)는 전쟁과 남자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여성들의 수난과 희생에 더 많은 무게가 실려 있다. 끊임없이 내분과 전쟁에 시달려 왔고 지금도 전쟁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역사와 현실 속에서 여성들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소재다. 하지만 이 연극은 한국적 특수성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 어느 시대, 어느 민족, 어느 나라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 차원으로 확대되어 있다.

    전쟁과 여자, 그리고 고통
    무대에는 검은색의 간결한 사다리꼴 장치들이 벽과 문을 상징하며 서있을 뿐 거의 비어 있다. 의상도 검은색과 회색의 조합이 대종을 이루어 차갑고 비정한 이미지를 풍긴다. 21세기도 끝나갈 무렵, 세계는 가상 공간과 유사 체험으로 가득 차 있고 인간의 개별성은 상실되었거나 극도로 혼란스럽다. ‘눈물’조차 사라진 세상에서 ‘남자’(박지일)는 다중인격 분열증세를 의심받으며 인격관리국 직원의 지휘 하에 검사의 과정을 겪게 된다.

    최면술에 걸린 듯 ‘남자’는 과거의 시간으로 편입되고 과거의 행적들은 마치 꿈처럼 몽롱하고 아득하게 전개된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전쟁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남자’는 전쟁의 이유와 명분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업보처럼 전장으로 달려간다. 그 ‘남자’의 주변에는 집에서 일곱 아이를 기르며 늘 남편을 기다리는 ‘여자’(권남희)와, 전장으로 ‘남자’를 흡입하며 적장의 강간에 시달리는 ‘소녀’(서정연)가 있다. ‘소녀’는 어느 순간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자신과 ‘여자’와 그녀의 일곱 아이들을 제물로 삼는 피의 희생 제의(祭儀)를 제안하고 결행한다. ‘남자’는 늙어갈수록 이유 없이 자신의 손에 희생된 영혼들에 시달리다가 종국에는 자신이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이유도 모른 채 구천을 떠돌게 된다.

    작가는 결국 습관처럼 전장으로 달려가는 남자들의 삶의 이면에서 외롭게 ‘사랑’과 ‘생명’을 지켜나가는 여자들의 삶을 강조한다. 연출가 채승훈은 특유의 잔혹극적 스타일을 강하게 덧입히며 전체적으로 한편의 제의극을 꿈꾼다. 여인들의 희생 제의는 마지막에 미래 세계의 ‘남자’가 ‘감정과다 징후’ 판정을 받고 눈물과 같은 살인 액체에 의해 사형되는 ‘씻김’의 의식으로 연결된다. 그것은 감정이 사라지고 눈물조차 메말라버린 미래 사회에 대한 경고로서의 역설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 전쟁은 어느 순간 ‘삶’ 일반으로 은유되기도 한다. 삶 자체가 곧 전쟁이고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삶의 포로이고 전사자이며 희생양인 것이다.



    작가는 국문과 교수답게 모국어의 리듬과 결을 섬세하게 살리는 시극(詩劇)을 의도하고 있다. 희랍극이나 셰익스피어의 연극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가 바로 시극의 장중한 문체에 힘입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연극의 대사가 시적인 문체로 이루어질 때 그 자체로 힘과 매력을 가질 수 있으며, 독특한 양식화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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