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7

2001.01.11

각박한 세상…‘대박’의 기본조건은 ’감동’

  • 입력2005-03-08 13:5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각박한 세상…‘대박’의 기본조건은 ’감동’
    ‘해리포터’ 시리즈(조앤 K. 롤링), ‘가시고기’(조창인),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정찬용),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 외). 지난해 모두 밀리언셀러에 오른 책들이다. 소비가 개성화, 다양화하고 있음에도 대중의 마음은 공유하고 싶다는 의식이 지배한다. 남들이 열광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따라 해보지 않으면 어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의 ‘유행 집착병’은 앞으로도 도가 심해질 것이다.

    올해는 대중이 아무리 ‘돈’과 ‘부자’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하더라도 중산층에서 하층민으로 전락하는 데는 도리가 없다.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직자 증가, 농촌의 피폐, 영세상인의 도산 등이 겹치는 좋지 않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생존을 위한 불가피성 때문에 맞벌이는 ‘선택’에서 ‘필수’로 변해간다. 하나의 망으로 연결되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첨단기술이 결합해 만들어내는 재생산구조에서는 힘이 있는 곳으로 ‘부’(富)가 집중되고 있다.

    사회의 주도층은 20대부터 30대 초반에 이르는 청년층으로 이미 바뀌었다. 이들은 사회나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 아닌 개인적인 욕망이 자신을 크게 지배하는 세대다. 공동체의 구속력이 약해지고 개인이 사회에서 힘을 가지게 되면서 기존 가치관이 붕괴되고 있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독자들이 ‘읽는 사람’(reader)에서 ‘사용자’(user)로 바뀌는 현상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이성과 합리가 아닌 감성과 직관이 지배하고 중심(혹은 정상)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나가던 남성적 사고보다 중심이 사라지고 없어도 전후맥락을 잘 살피며 통합적으로 생각하는 여성적 사고가 더욱 빛을 발한다.

    지식의 양이 2년마다 2배로 늘어나는 과잉정보의 시대다. 과잉정보는 정보부재를 의미한다. 우리는 넘치는 정보 의미를 새롭게 생산해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학과 경영학의 접목,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접목과 같은 ‘퓨전’은 이제 일상화됐다.



    과거에 사회를 지탱하던 중심가치, 즉 우상은 도처에서 파괴되고 있다. 대중이 동질보다는 이질, 균일보다는 차이, 하이테크가 아닌 하이터치를 희망하는 한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와 머무르고 있는 장소와 그 시공간에서 생산되는 ‘이야기’를 이미지화, 즉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시대의 생산물은 객관적인 ‘눈’을 갖지 않으면 자기 만족에 그치고 만다. 하지만 ‘차이’를 분명하게 만들어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그러면 올해에 유행할 책의 트렌드는 무엇일까. 먼저 책 소비의 중심 축에 10대가 우뚝 서있을 것이다. 전세계에서 5000만 권이나 팔려나간 ‘해리포터’ 시리즈나 일본의 초베스트셀러 ‘오체불만족’(오토다케 히로타다),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오히라 미스요)는 모두 10대를 겨냥한 책들이다. ‘가시고기’도 10대들이 열독했다.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는 애초 아동용으로 포장해 내놓았음에도 처음 한달 동안은 40~60대 여성들이 주로 읽었다. 바로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와 할머니들이다. 앞으로 온 가족이 함께 읽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야기여야만 ‘대박’을 터트릴 수 있다.

    그런데 네트세대인 이들의 감성과 사고에서 ‘세상의 중심은 바로 나’이다. 컬트, 엽기, 동아리 등이 이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모든 것은 자기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한 권의 책은 유익하고 재미있고 스릴과 서스펜스가 있으며 활용성 또한 강해야만 한다.

    갈수록 하층민으로 전락해 가는 듯한 절박감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는 자기 표현을 극대화하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여야 할 것이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고 사회적 코드가 된 ‘돈’과 ‘부자’의 개념을 명확히 파악한 사람들도 그 ‘이후’를 기대할 것이다. 이들의 심성을 달래주는(자극하는) 특별한 이야기는 출간되는 즉시 대중의 열렬한 호응을 얻게 될 것이다.

    대중의 대중소설적 취향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감각적 쾌락시장에 노출돼 있는 독자들은 이미 큰 이야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일부 인기있는 본격작가들마저도 대중소설과 본격소설의 중간형태인 중간소설 쪽으로 이동해 수명을 연장하고 있는 마당에 ‘관능적 상상력’이 폭발하고 눈물을 샘솟게 할 만큼 크나큰 감동을 주는 작품이 아니면 외면당하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경제-경영서의 화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상생이 될 것이다. 대중은 작년까지 e-비즈니스의 개념을 이해하려고 분골쇄신했으나 이제는 오프라인 기업 종사자들이 온라인의 감각을 익혀 새로운 비전을 찾아나가는 현장중심적인 매니지먼트 관련서들이 인기를 얻을 것이다. 실용서는 필요한 지식을 잘게 쪼개어 ‘파트워크화’한 매뉴얼이 유행할 것이다. 이런 실용서들은 머지않아 디지털 공간으로 옮겨가 필요한 부분만 쪼개 파는 주문형 출판(Print on Demand)의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오늘날 대중은 10차로의 고속도로에서보다 오밀조밀한 오솔길에서 감동을 느낀다.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작고 사소하고 다양한 정보들을 아주 세밀하게 파고들어 삶의 구체성을 찾아내는 인문서들은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자본증식을 위해서라면 못하는 일이 없는 과학문명에 대한 절망감과 합리적 이성에 대한 신뢰감의 붕괴로 인해 인간의 관심은 몸과 마음으로 옮겨가고 있다. 몸에 대한 관심은 일상의 견고함이 지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욕망이며, 인간의 마음은 대중이 결핍을 느끼는 유일한 영역이다.

    나무가 아무리 자라도 하늘에 닿지는 못한다. 사이버 인간이 아무리 인간다움을 추구한다 해도 인간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새로운 기술이 안겨주는 ‘불안’은 우리에게 진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만든다. 자기만의 개성을 보여주는, 즉 ‘차이’를 발견하게 해주는 예술가의 삶은 인간다움의 깊이를 느끼게 해 황량한 삶에 크나큰 위안을 줄 것이다.

    컴퓨터에 내장돼 있는 정보의 불투명성, 인간 삶의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인간은 좀더 신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무엇’을 추구하게 된다. 자기 물건을 근접거리 1m 이내에 두어야만 안심하는 대중의 이런 속성을 이용하기 위해서 책은 여기저기에 오브제(objet), 즉 구체적인 아날로그를 담아야 한다. 바로 문자와 이미지의 상생이다.

    철 지난 유행가는 단지 유행가일 뿐이다. 대형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우리는 대중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을 멋진 ‘새 노래’를 준비해야만 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