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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들 “올 한해도 별과 함께”

불확실한 미래, 개인주의 심화 … 운명론에 매달려 연초부터 유별난 점성술 사랑

  • < 송지연/ 연세대 유럽문화정보센터 전문연구원 kshps@unitel.co.kr>

프랑스인들 “올 한해도 별과 함께”

프랑스인들 “올 한해도 별과 함께”
2001년 또 한 살을 먹는 사람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올해는 시험에 붙을까, 취직할 수 있을까, 승진은 될까, 진짜 사랑을 만날 수 있을까. 미래가 궁금한 프랑스인들은 별점책을 산다. 미테랑 전 대통령의 점성가로 유명한 엘리자베스 테시에의 ‘당신의 별점’은 이미 15만부 이상 팔렸다. 프랑스에는 40여 종의 별점 전문 잡지가 있고, 그중 ‘어떤 미래?’는 10만부 이상 찍는다. 여성잡지들은 일제히 2001년 운세를 다뤘다. 보다 적극적인 사람들은 점집에 간다. 복채는 300~1500프랑(약 5만~25만원). 프랑스 국내에서 활동하는 점성가의 숫자만도 약 1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데카르트의 나라, 합리성의 나라라고 자부하는 프랑스에서 국민 2명 중 1명은 별점에 관심이 있고, 10명 중 1명은 점집에 가본 적이 있다고 한다. 46%의 프랑스인이 별자리에 따라 분류된 성격이 자신과 맞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여성전문 인터넷사이트인 ‘오 페미냉 닷컴’이 지난 여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여성 중 47%는 남편의 충고보다 별점을 더 믿는다고 답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별점이 모두 사기!”라고 말한다.

점성가 1만명 복채 5만~25만원

프랑스인들 “올 한해도 별과 함께”
“점성술은 가짜입니다.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천체에 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죠. 황도대에는 별자리가 12개가 아니라 13개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별자리가 틀린 거죠!”

천체물리학자 다니엘 쿤트는 흥분한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우리의 진짜 별자리는 지금 알고 있는 자기 별자리의 바로 앞 별자리에 해당된다. 수양자리는 물고기자리고, 전갈자리는 사수자리가 된다. 이것이 물리학에서 말하는 ‘세차’(歲差)다. 세차란 태양이 해마다 별자리에 조금씩 늦게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예언이 판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있다. 더 이상 신을 믿지 않는 서구사회에서 사람들은 우연을 참지 못한다. 점점 더 개인주의화하는 사회에서 각자가 맡은 책임은 너무 무겁다. 여기서부터 별에 의해서든 별 아닌 그 무엇에 의해서든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믿음이 생겨난다. 마음이 무거운 사람들이 점집을 찾는다. 이렇게 마음이 약해진 고객들을 상대로, 점성가는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한다. 고객들은 무엇이든 믿을 준비가 돼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마음의 안정이다. 중요한 것은 점이 맞고 틀리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긍정적인 예언이 사람의 마음을 치유해주고, 진정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점성술이 단순히 운수를 알아보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정치적 결정이나 기업합병, 주식투자, 집을 사고 파는 일, 청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의 점성가들은 정치-경제뿐 아니라 사생활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요즘 프랑스인들은 이렇게 자문한다. 실제로 나를 고용한 것은 누구인가, 헤드 헌터인가 점성가인가. 누가 내 아내에게 이혼을 결심하게 했지? 장모님이야 점성가야?

점성학은 기원전 25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칼데아 지방에서 시작됐다. 12~16세기에 프랑스의 영주들은 점성가를 고문으로 고용했고, 앙리 2세의 아내였던 메디치가의 카트린 왕비는 늘 3명의 점성가들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유명한 노스트라다무스다. 하지만 1666년에 루이 14세의 재상 콜베르는 과학 한림원에서 점성학을 제외했다.

20세기 프랑스에 점성술을 다시 도입한 것은 대중신문과 여성지다. 1935년 일간지 ‘파리 수아르’와 여성지 ‘마리 클레르’가 처음으로 별자리 운세란을 만들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프랑스인들 대부분이 자신의 별자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덩달아 별자리 그림을 새긴 목걸이, 메달, 엽서, 수첩 등이 무수히 팔려나가면서 시장이 형성됐다.

드골 대통령은 1944년에서 1969년까지 일명 레륄뤼스라는 점성가에게 자문했다고 한다. 미테랑 대통령이 걸프전 때나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대한 국민투표 날짜를 정할 때 엘리자베스 테시에에게 자문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미테랑의 별자리 아래’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테시에의 회고록을 보면, 이 스타 점성가가 1989년에서 1994년까지 미테랑의 자문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미테랑은 언제나 “나는 어때요? 프랑스는 어떻고?”라는 말로 그녀를 맞이하곤 했다. 미테랑은 언제나 호기심을 회의적 태도로 숨긴 채 다른 정치인들(미셸 로카르, 헬무트 콜, 사담 후세인 등)의 운명에 대해 묻곤 했다. 마치 아탈리(프랑스의 석학)에게 자문을 구하듯 마담 테시에에게 자문을 구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미테랑이 혼외정사로 낳은 딸 마자린 팽조는 이 사실을 부정한다. “아버지는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마담 테시에의 의견을 기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근래 점성가들이 대활약하는 분야가 주식시장일 것이다. 천왕성의 움직임에 기초한 경제점성술이 월스트리트를 휩쓸고 있다. 수천명의 투자자들이 별의 움직임에 따라 주식을 사고 팔며, 회사들은 회사 자체의 별자리 운을 믿는다. 프랑스에는 몇사람 안 되는 점성가가 투자자들에게 조언하지만, 미국에는 아치 크로포드 같은 주식투자전문 점성가가 150명에 이른다.

유명 의상 디자이너 레오나르, 헤어 디자이너 자크 데상주 등 몇몇 사람들을 빼고, 유명 인사 중 내놓고 점성술을 믿는다고 밝힌 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기업들은 사람을 채용할 때 지원자의 별자리를 과거 심리테스트에 필적할 만큼 중요한 참고자료로 삼는다. 자격증이나 입사동기보다 별자리가 채용을 좌우할 수도 있다. 시청에 전화 한 통만 하면 지원자가 태어난 시간을 알 수 있는 편리한 프랑스의 행정절차도 한몫 한다. 이런 현상은 특히 고위 간부를 채용할 때 두드러진다. 기존 임원들은 후보의 별자리를 참조함으로써 실수를 줄일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런 관행은 명백히 노동법 위반이다. 1993년 개정된 프랑스 노동법에 의하면 지원자는 채용방법에 불만이 있거나 그 방법이 알려지지 않았을 경우 해당 기업을 고소할 수 있다. 사실상 지원자 몰래 그가 태어난 시간을 알아내 별점을 참조하는 것은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사생활 면에서 별점은 프랑스인들의 세 가지 화제 즉 사랑, 일, 건강에 대해 예언해 준다. 이들은 숫양자리에 상승궁(上昇宮)이 황소자리인 남자가, 처녀자리에 상승궁이 물병자리인 여자와 궁합이 맞는지 충고해주고, 자녀들이 앞으로 수학을 잘할지 문학을 잘할지도 가르쳐준다. 사람들은 1시간 정도 점성가와 상담하고 나면 마치 애벌레처럼 발가벗겨진 인상을 받게 된다.

별점에 열광하는 사람은 주로 신세대와 여성들이다. 수 년 전 과학이 발달하고 문화적으로 성숙해질수록 점성술에 대한 믿음은 약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노인이나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에게만 어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예언은 틀렸다. 현재 프랑스에서 점성술은 농부나 노동자들보다 고위간부와 학력이 높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점성술은 그 복잡하고, (가짜로) 엄밀하고, ‘과학적인’ 외관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현대의 점집은 우아한 아파트에 있으며 자료는 모두 컴퓨터에 입력돼 있다.

‘현대의 점성술 신앙’이란 저서에서 에드가 모랭이 말하듯 이것은 ‘깜박이 신앙’(오늘은 믿지만, 내일은 회의적이 된다는 의미에서)에 불과하다. 우리가 신문에서 ‘오늘의 운세’를 읽는 것은 사건사고로 가득한 신문기사 중 이것이 개인적으로 나와 관계되는 유일한 난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인 못지않게 미신을 좋아하는 한국인은 띠별 운세나 사주풀이에 만족하지 않고 서양에서 들어온 별점에까지 눈길을 준다.

하지만 주의하라. 점쟁이들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아무 말이나 다 할 수 있다. 그들은 병이나, 결혼, 직업에 대해 예언한다. 그리고 우리가 결정을 내릴 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친다. 2001년 연초, 점을 치러 가고 싶은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정신과 의사의 증언을 주의 깊게 들을 만하다. “점성술은 끔찍한 심리조작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정신병 환자 둘을 치료하고 있어요. 첫번째 환자는 사고가 나서 온몸이 마비될 거라는 예언을 듣고 피해망상증에 빠졌고, 두번째 환자는 적어도 세 사람의 점성가와 만나지 않고는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는 무의지증 환자가 되었어요. 점은 심리적인 폭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간동아 2001.01.11 267호 (p56~57)

< 송지연/ 연세대 유럽문화정보센터 전문연구원 kshps@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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