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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교사 폭행사건

‘일그러진 영웅’, 빗나간 父情

문제의 초등생, 이문열씨 소설속 인물과 너무 닮아…아버지, 아들 말만 믿고 학교로 돌진

‘일그러진 영웅’, 빗나간 父情

‘일그러진 영웅’, 빗나간 父情
“아저씨가 갑자기 들어와 선생님의 옆구리를 걷어차고, 넘어진 선생님에게 우유가 담긴 플라스틱 상자를 던졌어요. 선생님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어요. 우리들은 무서워서 막 울었어요….”

7월4일 오전 11시 부산시 해운대구 W초등학교 4학년 1반 교실에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대한 학생들의 ‘목격자 진술’이다. 당시의 충격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아직도 겁먹은 표정이 역력했다.

수업 중인 자식의 담임선생을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폭행한 사건은 교사가 교육현장에서 학부모에게 당하는 수난의 수위가 도를 넘어섰다는 것을 뜻한다. 아마도 이 사건을 접한 시민 대부분은 이 학부모를 ‘분명히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람은 충격을 받고 쓰러진 여교사였다.

7월7일 여교사 곽 모씨(23)에 대한 폭행 및 수업방해 혐의로 경찰에 구속된 학부모 강 모씨(44)는 입감된 상태에서도 “나 같은 학부모가 다시 나오지 않기 위해서는 그런 선생이 먼저 없어져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강씨는 자신이 저지른 일이 불러일으킨 사회적 충격파를 아느냐고 묻자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는 것을 인정한다. 모든 처벌을 달게 받겠지만 내 자식에 대해서 학교측과 여교사가 저지른 폭언, 폭행, ‘왕따’ 만들기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응징을 하겠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강씨는 사건 당일 아침 아들 강 모군(11)이 “선생님이 무서워 학교에 못 가겠다. 자살하겠다”며 신발장 위에 놓아둔 쥐약봉지를 본 뒤 이성을 잃고 학교로 달려가 이같은 짓을 저질렀다.

강씨와 곽교사 사이의 갈등은 4학년 1반 반장 재선거가 있던 5월 중순부터 시작됐다. 당시 반장은 강군. 담임인 곽교사는 강군이 평소 친구들의 돈을 빼앗고 폭행하는 일이 잦아 다른 학부모들의 반발이 심한 데다, 4월 들어 친구의 치아 두 개를 부러뜨린 뒤 다른 친구에게 이를 뒤집어씌운 사건이 발생하자 반장 교체를 결심했다.

그러자 아버지 강씨는 학교로 찾아가 선처를 부탁했고 곽교사는 강씨로부터 강군을 잘 지도하겠다는 다짐을 받은 뒤 반장 재선거를 미뤘다. 그런데 5월 들어 강군이 5학년 상급생을 학교 뒷산으로 끌고 가 폭행하는 사고가 다시 이어지자 곽교사는 강군에게 체벌을 가한 뒤 반장을 교체했다.

강씨는 곽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한 학기 동안 계속 반장을 시키겠다는 약속을 어겼다며 항의했고, 두 사람 간에 언성이 높아졌다. 이후 곽교사는 강씨가 틈만 나면 전화를 걸어 욕설을 한다며 전화받기를 회피했고, 강씨는 이때부터 곽교사가 학부모의 상담을 기피하고 강군을 ‘왕따’시킨다는 오해를 하기 시작했다. 곽교사는 강군이 계속해서 학생들을 괴롭히자 자리를 뒷줄로 바꾸고, 학생들에게 “강군과 같이 놀면 똑같은 취급을 받는다. 맞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강군의 친구 김 모양)고 말했다.

집에 온 강군은 아버지 강씨에게 믿기 어려운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날 왕따시킨다” “급식도 찌꺼기만 먹게 한다” “선생님이 머리채를 쥐고 4학년 각 반을 돌며 같이 다니지 말라고 했다” 등등…. 반장자리에서 물러난 뒤 풀죽은 강군의 모습을 보고 가슴 아파하던 강씨는, 지난 1일 곽교사가 째려본다는 이유로 볼을 꼬집고 실내화로 머리를 때렸다는 강군의 말을 듣고 감정이 폭발했다. 강씨는 곽교사에게 전화를 두 차례 걸었으나 곽교사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3일부터 강군은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선생님이 무서워 학교에 못 가겠다”는 것이었다. 이날 오후 강군은 어디선가 쥐약을 사가지고 와 옥상에 올라가 “죽겠다”며 어머니 정 모씨(39)에게 떼를 썼다. 이 소식을 듣고 4일 아침 일터인 거제도 양식장으로부터 달려온 강씨는 신발장 위에 놓여 있던 쥐약을 본 뒤 바로 학교로 달려갔다. 그리고 사건이 터졌다.

이날 오후 곽교사는 경련증세를 일으키고 헛소리를 계속하다 부산시내 모 정신과 전문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극심한 대인 기피증과 심한 스트레스성 정신장애로 인해 사건 발생 일주일이 다 되도록 일절 면회가 허용되지 않고 있다. 경찰은 피해자 조서도 받지 못했다.

이 학교 김 모 교장은 “초임교사인 곽교사는 강군의 폭력성을 다스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자리를 뒷줄로 바꾸고 체벌을 한 것은 학생지도의 한 방법이지 왕따를 시킨 것이 아니다. 그런데 아버지 강씨는 강군의 거짓말을 듣고 계속 오해를 쌓아왔다”고 전했다.

이 학교 교사들과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강군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올 3월 초순에 치러진 반장선거에서 강군이 당선된 것도 “강군이 자신을 찍지 않으면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급우들을 협박해 얻은 결과였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김교장은 반장 재선거가 있기 얼마 전 이를 직접 확인했다고 밝혔으며, 실제 같은 반 학우들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여학생의 가슴을 때렸다. 연필 빌려달라고 하자 코피를 터뜨렸다” “돈을 달라고 해 없다고 하자 야구 방망이로 때렸다” “나 안 찍으면 죽어. 산에 끌고 가 묻어버리겠다. 내 뒤에는 큰 빽이 있다는 등 협박을 했다….” 같은 반 학생들이 말하는 강군은 이 학교의 ‘황제’였다.

강군의 참고인 조사를 맡은 부산 해운대 경찰서 형사계 정경일 경장은 “조사를 하면 할수록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엄석대’를 너무도 닮았다. 폭력과 거짓말로 학교에서 군림했고, 도저히 열한 살의 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말과 행동이 능수능란하다”며 강군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했다.

학교측이 최근 전체 학생에 대한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 지난해와 올해 6월 말까지 강군에게 물리적 해를 입었다고 사례를 제시한 학생만 147명에 달했다. 4학년 1반 학생들은 강군이 다시 학교로 돌아올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강군은 이미 이 학교에서 스스로 ‘왕따’가 돼버린 것이다.

피의자 강씨도 강군의 학교생활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강씨는 강군이 학교에서는 거짓말을 했을지 몰라도 자신한테까지 거짓말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강씨는 “부모는 자식의 눈빛만 봐도 안다”면서 “자식을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느냐”고 항변했다. 강씨는 오히려 지난 5월 강군이 곽교사에게 맞았다며 멍든 팔을 보여줄 때 고소를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고 했지 않느냐. 문제가 있으면 더 감싸주고 사랑해 줬으면 애가 이렇게까지는 안 됐다. 생각해보면 애가 반장을 맡고 있을 때 학부모들이 지원금으로 내자는 10만원을 안 내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 같기도 하다. 우리 부부가 먹고사느라고 바빴다. 가난한 것이 한이다.”

‘한’스럽기는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이 학교 천 모 교사(45)는 이 사건에 대한 교사들의 착잡한 심경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곽선생은 강군에게 최선을 다했다. 문제학생인 줄 알면서도 반장을 시켜 달래도 보고 매도 들었다. 학생들의 피해가 커지자 다른 방법을 선택한 것뿐이다. 학생 지도방법은 학생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자식 말만 믿고) 교사를 믿지 않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풍토에서 이런 사건이 터졌다. 우리에게 과연 교권이 있는지 의심스럽고 서글플 따름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에 접수된 학생이나 학부모에 의한 폭행, 명예훼손 사건은 98년 70건, 99년 77건, 올해 상반기 40여건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갈수록 교권을 우습게 여기는 사회 풍토, 교사를 믿고 학생을 맡기지 못하는 교육 현실, 교권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는 교육정책 등이 낳은 한국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선생님, 빨리 돌아오세요. 한 명의 학생 때문에 학급을 포기해선 안 돼요. 우리는 열심히 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를 사랑하는 선생님께 제 마음을 담아 이 편지를 드립니다.”

4학년 1반 한 학생이 지난 6일 정신병원에 있는 선생님에게 보낸 편지다. 그러나 학생들은 곽교사를 학교에서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날의 악몽은 곽교사에게 치유할 수 없는 큰 상처를 입혔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강석대(?)군도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교사들은 곽교사가 이 시대의 마지막 ‘매맞는 교사’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주간동아 2000.07.20 243호 (p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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