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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너에 몰린 경제팀

누가 ‘경제팀’을 흔드는가

개혁저지 세력 배후에서 조종 ‘음모론’ 제기…잦은 말바꾸기 ‘자업자득’ 지적도

누가 ‘경제팀’을 흔드는가

누가 ‘경제팀’을 흔드는가
금융노조의 파업으로 금융대란에 대한 우려가 한껏 고조된 7월9일 금융감독위원회 한 고위관계자가 제기한 ‘배후론’이다. 금융노조의 요구조건이 금융지주회사법 철폐에서 관치(官治) 청산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면서 일각에서 ‘경제각료 경질’의 필요성을 거론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배후론의 진원지로 정치권과 일부 재벌을 지목했지만 구체적인 증거를 대진 못했다.

최근 경제팀은 사면초가다. 경제팀 가운데서도 특히 지난 2년여 동안 경제개혁을 주도해온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과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이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이런 공세는 개각론과 맞물려 한층 고조되고 있다. 최근 재벌 계열로 분류되는 한 신문은 이용근(李容根) 금융감독위원장의 실명을 들어 ‘경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금감위는 최근 작성한 내부보고를 통해 “시장의 힘을 우선시하는 2차 금융 구조조정의 특성상 정부 역할도 ‘우회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고 전제, “개혁저지 세력이 이같은 정부의 변화된 역할을 오도해 집단이기주의를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대로라면 현 경제팀을 흔드는 것은 개혁저지세력이라고 할 수 있고, 금융파업을 예고한 은행원들은 개혁저지 세력에 힘을 몰아주고 있는 셈이다.

과연 그럴까. 오히려 현 경제팀이 자신들의 금융지주회사 관련 말바꾸기로 스스로 발목이 잡힌 것은 아닌가. 관치금융 청산을 위해서도 현 경제팀 경질은 불가피한 것 아닌가.

먼저 금융지주회사법 관련 발언록을 되살려보자. 지주회사 관련 말바꾸기의 초점은 크게 △정부가 은행 구조조정을 강제하려 하는가 △지주회사 통합시 인력을 대거 자르나 등 두 가지. 말바꾸기 논란이 결정적으로 제기된 것은 5월 말 이용근 이헌재 두 사람이 조찬모임 등을 통해 금융 구조조정을 ‘적극적으로’ 유도할 뜻을 밝히면서부터. 당시 금융당국은 내년 초 예금보장 한도 축소를 앞두고 하반기부터 은행돈이 옮겨다닐 것으로 예상, 은행장들의 ‘결단’을 고대하고 있었다.



급기야 6월 금감위가 내놓은 ‘은행 구조조정 추진방향’은 구체적으로 ‘공적자금 투입은행의 경우 정부가 주도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한다’고 명시했다. 정부는 ‘주도적’이란 용어를 해당 은행이 따라올 수밖에 없는 제도적 틀을 마련한다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대부분의 언론과 은행 임직원들은 정부 압박을 기정사실로 이해했다.

인력감축 여부에 대한 은행 노조의 우려에 불을 지른 것은 6월23일자 한 금융전문지의 보도. 이 신문은 “이위원장이 지주회사를 통해 공적자금 투입 은행들을 ‘합병’(merge)할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금감위의 정책구상이 ‘합병이 아닌 통합(Integration)’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타사 기자들은 이 보도를 완전 무시했지만 은행원들 입장에서는 이위원장 발언에 본격적으로 의혹을 품는 계기가 됐다.

이위원장 등 금감위 고위간부들은 그동안 기자간담회 등에서 “통합시 인력감축이 없다는 약속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한번도 확약한 적이 없다. 대신 “지주회사 통합이 당장 인력감축을 의미하진 않지만 구조조정은 해당은행 경영진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해왔다. 듣기에 따라 인력감축이 있을 수도 반대로 없을 수도 있다는 애매한 발언이다.

언론들이 이런 유의 발언에서 전제를 없애고 상황에 맞게 악센트를 넣어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전달해 왔고 이 때문에 말바꾸기 논란이 더욱 증폭됐다. 그러나 이런 언론보도에 대해 금융당국이 그동안 심각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부 당국자들도 언론의 확대해석을 구조조정의 지렛대로 활용해 왔다는 의혹을 피하긴 어렵다.

관치논란은 시비를 가리기가 어렵다. 금융노조가 지적한 관치사례는 △채권안정기금(99년 9월)과 채권전용 펀드(2000년 7월) △감독원 출신의 국민은행장 선임 등 두 가지다. 채안기금은 대우그룹 몰락 이후 회사채 금리가 폭등했던 상황에서, 채권펀드는 회사채 매수세 실종으로 신용위기가 확산되면서 정부가 은행들을 재촉해 내놓은 대책들이다.

지난해 조성한 채안기금은 다행히 출자액의 9.79%에 해당하는 수익률을 올리고 올 3월 해산, ‘모범사례’로 기록됐지만 사무국에 인력을 차출당한 은행들은 불만이 컸다.

이에 반해 채권전용 펀드는 다분히 일부 언론 및 은행 실무자들의 오해의 산물이다. 재경부와 금감위는 6월 말 회사채 시장이 마비되면서 기업들의 줄도산이 우려되자 ‘커머셜 베이스에서’ 은행이 참여하는 10조원대 펀드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투신사들이 B등급 회사채를 묶어 리스크를 줄이고 여기에 신용보증기금 등의 지급보증을 덧붙인 A등급 투자상품을 개발하면 은행 보험사들이 이를 사주는 구도였다.

은행들 입장에서는 다른 투자상품 운용기회를 박탈당한다는 점에서 관치논란을 제기할 수 있다. 금감원 내부에선 그러나 “기업이 무너지면 그 손실은 고스란히 은행에 넘어가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김석동 금감위 조정협력과장은 “특정 정책이 49%의 부정적 효과를 갖고 있더라도 긍정적 효과가 51%만 된다면 관치라는 욕을 먹더라도 이 정책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금감원 부원장을 지낸 김상훈씨의 국민은행장 선임은 경영자선정위가 헤드헌터에 후보자 물색을 위탁하고, 헤드헌터가 추천한 1차 후보자들을 경선위가 또다시 걸러 2차 후보들을 행추위에 통보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당시 행추위 멤버였던 황진호 변호사(사외이사)는 최근 “행추위 사람들은 모두 저명인사들로 정부 눈치를 볼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라며 “자부심을 느낄 만큼 선임절차가 투명했는데 관치논란이 벌어져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

말바꾸기와 관치논란의 태생과 전파과정을 살펴보면 이처럼 상당한 왜곡을 발견할 수 있다. 팩트보다는 ‘과거의 연장선’에서 정황을 주장하거나, 구조조정 피로증후군을 느끼는 국민정서를 파고든 노력이 엿보인다.

그렇다고 이용근 위원장 등 핵심 관료들이 이같은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비록 지주회사 도입 방침에 대해 일관된 노선을 견지했더라도 정치적 역풍이나 노조반발을 예상, 민감한 부분에서 애매한 발언으로 미봉한 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이사는 “전임 이헌재 위원장 시절엔 ‘신축적’ 발언이 구조개혁을 바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해당 이익집단들을 경고하는 메시지로 작용했다”며 “그러나 개혁 3년째 들어 오히려 역공을 당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도 이런 분위기를 감안, 이용근 위원장에게 신뢰를 보이면서도 ‘말조심’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진다.

금융정책 사령탑이 청와대 재경부 금감위 3곳으로 분산된 것도 말바꾸기 논란을 부른 한 요인이다. 이위원장은 사석에서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도 발언의 뉘앙스가 달라진다”고 인정했다. 서로 다른 뉘앙스의 발언은 듣는 사람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게 마련. 자칫 기관 이기주의까지 개입되면 ‘파열음’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위원장은 재무부 과장 시절까지만 해도 잘나가는 관료였다. 그러나 국장 승진 이후 호남출신이라는 덫에 걸려 보직을 못 받고 주미 대사관, 아시아개발은행 등 ‘외곽’을 맴돌았고 현 정부 들어서야 금감위 상임위원으로 발탁됐다. 99년 5월 부위원장으로 승진한 후엔 대우사태를 원만히 처리, 대통령의 강력한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바로 대우사태 처리과정의 후유증으로 은행 부실이 심화됐고 노조의 반발을 잠재워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금융지주회사를 통한 부실은행 통합이란 구도는 대우채 처리에 따른 부실을 정리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용득 금융산업노조 위원장은 “대우사태 등 재벌의 몰락으로 은행 부실이 쌓였는데 은행 노조원들만 당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파업이 경제대란으로 번지면 이용근 위원장은 불명예 퇴진해야 할 처지다.

현 노정갈등의 뿌리는 금융기관 대마불사 관행에서 비롯됐다. 당장의 충격을 우려해 부실은행인 제일 서울은행을 무리하게 살리면서 구조조정 원칙이 훼손돼 은행원들의 단결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 무성하다.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부실기관을 편법으로 살리려는 데서 모럴 헤저드가 발생한다”며 “시장주의 원칙에 따라 부실기업 금융기관을 처리할 경우 집단이기주의는 현저히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0.07.20 243호 (p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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