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6

2016.07.13

트렌드

바야흐로 ‘이모지’ 대세 시대

스마트폰이 야기한 상형문자의 재림…IT, 문화·예술 분야 신산업 각광

  • 전유승 프리랜서 sherpacks@gmail.com

    입력2016-07-11 17: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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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난해 8월 13일 미국 대권주자 힐러리 클린턴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에 이렇게 올렸다.

    “How does your student loan debt make you feel?”
    (학자금 대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Tell us in 3 ○○○○○s or less.”
    (세 개 이하 ○○○로 답해주세요.)

     #2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은 5월 13일 국내 아티스트 사상 최초로 트위터를 통해 ○○○를 공개했다. 미국 음악잡지 ‘빌보드(Billboard)’는 즉각 이 소식을 보도하며 ‘방탄소년단은 케이팝(K-pop) 아티스트 중 2015년 한 해 트위터를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글로벌 뮤직 트렌드를 이끈 팀으로 선정됐다’고 덧붙였다.



     #3 핀란드 정부는 지난해 11월 국가 ○○○를 제작해 공개했다. 핀란드 상징인 사우나, 노키아 휴대전화, 헤드뱅어(록음악에 심취한 사람) 등 세 종류였다.

    위의 ○○○○○ 또는 ○○○에 공통적으로 들어갈 단어는 뭘까. 위 사례에서 보듯 이미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고, 정치·사회는 물론 문화산업에까지 깊숙이 침투한 트렌드. 정답은 영어로는 ‘emoji’, 한글로는 ‘이모지’다.




    8282 → ^^; → 

    언뜻 영어 ‘emotion’과 ‘image’의 합성어로 보이는 이 단어는 사실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일본 통신회사 NTT도코모 연구원인 구리타 시게타카(栗田穰崇)가 1999년 기호 200여 개를 그림으로 만들어 ‘이모지’라는 이름을 붙인 게 시초다. 일본어로 그림을 뜻하는 ‘에(繪)’와 문자라는 뜻의 단어 ‘모지(文字)’를 조합한 이 신생어의 원래 발음은 ‘에모지’로, 우리말로 풀이하면 상형문자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은 이모지와 이모티콘을 구분하지 않고 보통 이모티콘으로 통칭한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키보드에 존재하는 문자와 기호 등을 조합해 만든 이모티콘과 상형문자 이모지를 구별하는 게 일반적이다. 사실 이모티콘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에 140바이트 제약이 있던 시절 집단지성의 결과로 생겨났다. 사람들은 짧은 글에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자 단어를 압축 및 생략했고, 점차 자음 2개만으로 감정을 드러내거나(ㅋㅋ, ㅎㅎ), 긍정과 부정을 나타냈으며(ㅇㅇ, ㄴㄴ), 이내 문자로 표정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시 보면 유치하지만 한때 꽤나 즐겨 사용했던 (^_^) (〉_〈) (o_o)  (-_-) (@_@) (-_-;) 등이 바로 이모티콘이다. 창의력이 꿈틀대던 누리꾼들은 이후 키보드 문자를 이리저리 조합해 케이크를 만들고, 생일초를 만들고, 하트를 만들고, 산타클로스를 만들고, 복주머니를 만들기도 했다. 모두 옛날이야기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더불어 이모티콘이 쇠락하고 이모지 시대가 열렸다. 처음엔 ‘옐로 스마일(yellow smile)’류가 주를 이루다 카카오와 라인 등 인기 SNS를 통해 야무지고 귀여운 캐릭터들이 등장했고, 이제는 이모지가 인간 감정을 글보다 훨씬 리얼하게 전달하는 시대가 됐다. 삐삐에 8282(빨리빨리), 1010235(열렬히사모), 0404(영원히사랑해), 1004(천사), 0027(땡땡이침) 같은 숫자 암호를 보내며 낄낄대던 때가 아련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모지의 득세는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사전 편찬위원회’(편찬위)가 ‘올해의 단어’로 ‘the Emoji-Face with Tears of Joy’를 선정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이 녀석이다.



    편찬위가 ‘올해의 단어’로 문자가 아닌 그림을 택한 건 2006년 미국 시사지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당신(YOU)’을 선정한 것만큼이나 신선하고 충격적인 일이었다. 당시 ‘타임’은 사용자제작콘텐츠(UCC)와 개인미디어의 급성장을 조명하며 ‘당신’을 ‘올해의 인물’로 택했다. 지난해 편찬위 역시 이모지의 사회적 의미를 높게 평가했다. 캐스퍼 그래스워홀 편찬위 회장은 당시 ‘올해의 단어’ 선정 이유를 밝히며 “강렬한 시각 효과와 빠른 속도를 요구하는 21세기 사회에서 알파벳 같은 기존 문자가 고군분투하는 사이, 이모지 같은 그림문자가 영상과 문자의 간극을 메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이 된 이모지

    이모지가 과거 상형문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돌이나 파피루스 위가 아닌, 온라인 공간에서 쓰인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서울 시민과 미국 뉴요커가 이모지를 주고받으려면 서로 다른 전자기기와 네트워크 환경에서도 그림이 구현되는 ‘국제규격’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2009년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은 함께 유니코드 컨소시엄을 만들어 공통 이모지 700여 개를 공개했으며 지금까지 계속 이모지를 변경, 추가하고 있다. 6월 21일 유니코드 컨소시엄이 선보인 추가 이모지 목록에는 아보카도, 파에야, 베이컨, 팬케이크 같은 음식과 코뿔소, 올빼미, 고릴라, 상어 등 동물 이모지가 포함됐다. 또 사람이 구역질하는 표정, 의아해하는 표정, 침 흘리는 표정 등의 이모지도 이날 공개됐다. 새로운 이모지는 곧 발표될 애플의 iOS 10 운영체계에도 등장할 예정이다. 구글 사이트에서는 이모지 검색도 가능하다. 특정 이모지를 검색창에 넣고 ‘엔터’ 키를 치면 텍스트를 검색할 때와 똑같은 결과가 뜬다. 영국 소프트웨어 기업 ‘Intelligent Environments’는 지난해 이모지로만 만든 비밀번호체계인 ‘이모지 패스코드’를 개발하기도 했다. 인간은 그림 형태로 더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보안성도 숫자보다 훨씬 높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미국 대권 레이스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힐모지(힐러리+이모지)처럼, 이모지는 머잖아 정치 홍보 영역에서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바야흐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 가장 많은 사람이 쓰는 언어가 등장하고 있다.  

    문화계로 간 이모지

    이모지가 가장 널리 활용되는 분야는 문화·예술계다. 지난해 팝스타 비욘세는 비공식 뮤직비디오 ‘드렁크 인 러브(Drunk In Love)’를 이모지로만 제작해 화제를 모았다. 팝스타 저스틴 비버는 최근 앱스토어에 자신의 이모지앱 ‘Justmoji’를 등록하기도 했다. ‘레미제라블’ 등 명작 소설을 이모지로 기록한 인터넷 블로그 ‘이모지 내러티브’(narrativesinemoji.tumblr.com) 등 실험적인 사이트도 속속 생겨나고 있으며, 곧 이모지 애니메이션 영화도 나올 예정이다.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은 최근 ‘이모지무비:익스프레스 유어셀프(Emojimovie:Express Yourself)’ 제작 계획을 발표했다.

    한편 문화·예술계에서 이모지의 선구자로 꼽히는 인물은 4월 21일 사망한 가수 겸 작곡가 프린스다. 특유의 실험성과 화려한 무대 매너로 큰 인기를 모은 그는 1993년 돌연 더는 ‘프린스’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후 남성(♂)과 여성(♀) 기호를 겹쳐 만든 독특한 심벌을 14집 앨범 ‘Love Symbol Album’ 재킷에 넣고, 이것이 바로 본인의 새 이름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매체들은 프린스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그를 ‘예전에 프린스로 알려졌던 아티스트’ 혹은 그냥 ‘그 아티스트(The Artist)’라고 불렀다. 프린스는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자신만의 이모지로 이름을 대신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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