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6

2016.07.13

특집 | 친인척 보좌관 파동

국회 보좌관은 무엇으로 사는가

정치의 꿈 실현하려는 정무형 vs 전문성 갖춘 정책형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6-07-11 16:5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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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는 총칼을 들지 않은 전쟁이다. 의원회관은 전장(戰場)이다. 승부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기는 것보다 다행스러운 것은 없고, 지는 것보다 비참한 것은 없다. 이기고 지는 게 수시로 일어나는 곳이 국회다. 모든 국회의원은 4년마다 지면 죽는 전투에 나서야 한다. 승부와 생사가 교차하는 전장에 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보좌진은 문사가 아니라 무사가 되어야 함을 뜻한다. 여기가 우아하게 고담준론을 나누는 선비의 사랑채가 아니라, 가슴 속에 각자 비수를 숨기고 다니는 ‘비정한 거리’라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한다.’

    -‘보좌의 정치학’(이진수/ 호두나무) 중에서

    ‘보좌의 정치학’은 국회 보좌관을 꿈꾸는 이는 물론, 현직 국회 보좌직원 사이에서도 ‘바이블’로 통한다. 국회에서 22년 동안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활동하며 터득한 생생한 경험담이 살아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권력을 만들어보겠다는 일념으로 평생직장과도 다름없던 직장을 관두고 국회 보좌관으로 전직한 A보좌관은 “투지를 샘솟게 만드는 책”이라고 극찬했다. 그는 “‘의원의 권력욕은 부정적으로 묘사되거나 비난받을 거리가 아니라, 보좌진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의원의 건강함의 증거’라는 대목이 가장 맘에 든다”고 했다.



    비서? NO, 동지이자 참모? YES!

    저자와 ‘코드’가 맞는 보좌관들은 미래권력 창출에 관심이 크다는 공통점이 있다. 저자 이진수 전 보좌관은 더불어민주당(더민주) 김부겸 의원의 핵심 참모.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아성인 대구에 더민주 깃발을 꽂은 김 의원은 일약 대권주자로 떠올랐다. 아직은 당내 ‘문재인 대세론’에 가려 있지만, 김 의원은 언제든 ‘문재인 대체제’로 부상할 준비를 하고 있다. 보좌관 출신이지만 ‘정치적 동지’와 다를 바 없는 그는 일찌감치 ‘김부겸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하고 있다.



    이 전 보좌관처럼 국회 의원회관에는 ‘권력 창출’이란 정치 본령에 관심이 많은 이가 적잖다. 이들은 대개 ‘정무 담당 보좌관’이다. 긴 호흡의 전략은 물론, 매순간 전개되는 정치 상황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대응책까지 고민해야 한다. 의원이 가장 믿고 논의할 수 있는 동지이자 조언자가 바로 ‘보좌관’이기 때문이다.

    국회 보좌관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정무형 보좌관이고, 다른 하나는 정책형 보좌관이다. 정무형 보좌관은 권력 획득이란 정치적 목적을 향해 함께 뛰는 동지이면서 조언자이자 책사다. 의원이 정치무대 위에서 국민을 상대로 정치행위를 펼치는 배우라면, 이들 정무형 보좌관은 기획자이자 연출가, 때론 작가가 된다. 20대 국회 한 초선의원실 선임 보좌관은 “어느 시점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일지 의정활동과 정치활동의 전략을 구상하고 조언하는 것이 보좌관의 가장 큰 책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원에게 요구되는 일차적 활동은 ‘정치’가 아닌 ‘입법’ 등 의정활동이다. 상임위원회 활동과 대정부질문, 국정감사 등 행정부 감시라는 입법부 본연의 임무를 통해 국민과 언론의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의원으로서 기본을 충실히 하지 않고서는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일. 의원들이 정무형 보좌관뿐 아니라 반드시 정책형 보좌관을 두는 이유다.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은 물론, 상임위원회에 올라온 법안 등 각종 법안에 대한 이해와 정치적 판단을 돕는 조력자가 정책형 보좌관이다. 이들은 동지라기보다 참모에 가깝다.

    동지와 참모는 권력을 추구하는 성향과 함께 일한 기간 등에서 큰 차이가 있다. 정무형 보좌관은 의원 당락에 상관없이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지만, 정책형 보좌관은 테크노크라트와 같아서 의원의 부침에 따라 합류와 결별이 비교적 자유롭다. 또 다른 차이는 정무형 보좌관은 의원과의 관계 설정에서 주종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의원과 보좌관으로 만나 정치적 동지로 수십 년을 함께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국회 보좌관 가운데는 자신이 보좌한 의원을 도구 삼아 정권을 창출하고 정권에도 참여해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포부를 가진 이가 적잖다. 그에 비해 과거 상도동과 동교동계 출신 인사들은 수평적 관계라기보다 수직적 관계에 더 가까웠다.

    국회 의원회관 분위기는 2004년 17대 국회를 계기로 크게 바뀌었다. 과거 한국 정치를 주름잡던 ‘3김(金) 정치’가 퇴조하고 젊은 세대가 대거 정치권에 유입되면서 수평적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 18, 19대 국회를 지나오며 의원과 보좌진은 ‘동지’적 관계에서 벗어나 ‘상임위원회 전문성’을 매개로 한 정책형 보좌직원 채용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16대 국회 이후 현재까지 국회 의원회관을 지키고 있는 한 고참 보좌관은 “과거에는 의원회관 경력을 발판 삼아 직접 정치에 뛰어들려는 정치지망생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하나의 직업으로서 보좌관이란 업무에 매력을 느끼는 젊은 보좌진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의원수당법’에 포함, 수당만도 못한 국회 보좌직원?국회 보좌직원은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의원수당법) 제9조 1항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보좌관 등 보좌직원을 둔다’에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의원수당법을 살펴보면 우리 국회가 처음부터 국회 보좌직원을 뒀던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의원수당법은 제1조 입법 목적, 제2조부터 제5조까지 ‘수당’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고, 제6조 입법활동비, 제7조 특별활동비, 제8조 여비로 구성돼 있으며, 국회 보좌직원의 법적 근거가 되는 제9조는 수당과 입법활동비, 여비 등에 대한 규정이 마련된 뒤 나중에 제정됐음을 짐작게 한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유신헌법이 공포된 이후인 1973년 2월 제7회 비상국무회의에서 대통령 발의로 의원수당법이 제정된 것으로 돼 있다. 같은 해 11월 국회 운영위원장 제안으로 3갑(서기관) 상당의 국회의원 비서관 한 사람을 둘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즉 수당과 입법활동비, 여비 규정이 1973년 2월 마련됐고, 9개월 뒤 보좌직원에 대한 규정이 신설된 것이다.

    법 명칭 때문에 일부 국회 보좌직원은 “우리가 수당만도 못하다”고 푸념하기도 한다. 하여, 역대 국회에서는 국회 보좌직원 관련 법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늘 있었다. 실제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의 명칭을 ‘국회의원 의정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로 바꾸고 법체계도 보좌직원, 수당 순으로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요구가 많았다.

    20대 국회에 이 같은 내용의 법안이 제출돼 있다. 6월 23일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그것. 그런데 이 같은 내용의 법안은 19대에서도 국회에 제출됐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자동폐기됐다.

    관련 내용을 잘 아는 한 국회 보좌관은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자신들 처우와 관련된 법안을 다른 민생 법안보다 먼저 처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생산성 최하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19대 국회에서 의원수당법을 우선순위에 올릴 염치가 없었다고 한다. 20대 국회는 어떨까. 수당 뒤에 자리 잡은 보좌직원의 법적 근거가 제자리를 찾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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