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6

2016.07.13

정치

내년 상반기 개헌 막는 첩첩 山

대통령, 대권주자, 국민여론…삼합 어우러져야 가능

  • 이종훈 시사평론가·정치학 박사 rheehoon@naver.com

    입력2016-07-08 16: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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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헌하지 않는다고 당장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폐가 쌓여 서서히 망해가는 조짐이 보인다면 개헌을 고려해야 한다. 헌법은 국가 기초이기 때문이다. 국가를 재건해야 할 때라면 개헌은 피할 수 없는 역사적 과제일 수밖에 없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40년간 달려 산업화를 이뤘고, 민주화의 첫 징표로 87년 헌정체제가 탄생했다. 그로부터 다시 30년 지났다. 민주화의 골격도 갖춘 지금 우리는 명실상부 선진국 반열에 올라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역진 중이다. 성장동력이 꺼져가는 속에서 부패지수는 더 높아지는 추세다.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중심제의 폐해다. 임기 5년도 너무 길다. 무능력한 정권이라면 빠른 교체가 필요하다. 개헌이 절실한 이유다.



    임기 말 대통령의 개헌 효용성

    개헌은 이처럼 국가적 과제이지만 국민이 결정권을 갖지는 못한다. 헌법 제1조 2항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헌법 제128조 1항은 ‘헌법 개정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며 국민의 개헌 제안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이 중에서도 대통령의 의지가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개헌을 제안할 수 있을뿐더러, 국회를 주도하는 여당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으로 그들의 개헌 제안 여부에 사실상 결정권을 가진 까닭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임기 초반 권력 정점에 달했을 때 개헌을 주도하지 않으면 개헌이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국정 장악력을 한창 높여가는 임기 초반 개헌 카드를 꺼내들 대통령은 거의 없다. 자칫 조기 레임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개헌을 공약했지만, 임기 내내 개헌론이 불거질 때마다 블랙홀론을 제기하며 반대로 일관했다.

    임기 후반에 돌입하면 대통령 처지도 바뀐다. 개헌에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어진다. 특히 임기 5년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잘하면 8년간 집권할 수 있는 4년 중임제 개헌에 호의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국민은 5년도 길다고 여기지만 정작 당사자는 짧다고 느낀다는 뜻이다. 여기에 더해 대통령중심제하에서 과도한 권력 집중이 문제임을 자각하는 기특한 경우도 없지 않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개헌에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어떤 경우에 해당할까. 박 대통령은 또 다른 이유에서 임기 말 개헌을 고려 중인 것으로 보인다. 정권 재창출의 필요성이다. 새누리당이 다시 집권해야 하는데 마땅한 대권주자가 없다. 대부분 야권 대권주자에 비해 약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카드다. 반 총장을 후임 대통령으로 만들려다 보니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내 정치 기반이 취약하기도 하지만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자니 마뜩지 않다. 어떤 형태로든 본인 또는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를 통한 견제장치를 마련할 필요도 있다. 그래서 나온 시나리오가 반기문 대통령-친박계 국무총리 구도다. 여기서 핵심은 실세 친박계 총리다. 이것을 이루려면 이원집정부제 개헌이 불가피하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도달하고 보니 개헌에 무조건 반대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개헌에 적극 반대하지 않는 기조로 바뀐 듯하다.

    그런데 임기 말 개헌에서 장애요소는 오히려 차기 대권주자들이다.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은 그들은 대통령 권력을 약화하려는 어떤 시도에도 반대한다. 그나마 4년 중임제는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이원집정부제 같은 권력 분산 시도에는 아예 귀를 닫고 싶을 것이다. 솔직히 4년 중임제도 잘하면 8년까지 연장 가능하지만 현 5년보다 짧은 4년 만에 그만둘 수도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좋다고만 할 수도 없다. 임기 초반에는 대통령이, 임기 말에는 대권주자들이 반대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그동안 개헌이 지연돼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개헌 추진을 위한 최적의 조건

    이번에는 어떨까. 과거와 조금 다른 양상이다. 더불어민주당(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를 제외하면 여야 대권주자 누구도 유력하다고 할 수 없는 처지다. 게다가 문 전 대표는 현역 국회의원 신분도 아니다. 반 총장 역시 유력하지만, 내년 1월까지 해외에 체류해야 한다. 그 역시 국회의원 신분이 아니다. 이처럼 주요 대권주자가 정치권으로부터 살짝 비켜나 있어 개헌을 추진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국내 정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행사할 위치에 있는 문 전 대표 정도만 적극 반대하지 않는다면 개헌이 가능한 구도라는 말이다. 참고로 문 전 대표는 4년 중임제 개헌에만 찬성하고 있다.

    나머지 대권주자는 여전히 유력하지 않다 보니 이원집정부제 개헌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직선 대통령이 어렵다면 국회에서 선출하는 간선 총리에라도 도전해보겠다는 심사다.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아 부담도 적다 보니 개헌에 비교적 적극적이다. 원론적 수준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개헌 선봉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총선 직후 대권 도전의지를 내비쳤던 그다. 그러나 국회의장으로 우회하면서 이원집정부제 개헌 이후 총리로 방향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더민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원집정부제 또는 내각제 개헌에 찬성하고 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또한 총선 선거운동 기간 내내 지역 유권자에게 대권 도전의지를 내비친 바다. 직선 대통령은 힘들지 몰라도 국회에서 선출하는 간선 총리라면 가능성이 높다는 계산이 이미 나왔을 것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바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안철수 총리’ 또는 ‘안철수 대통령-문재인 총리’ 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안 전 대표에게는 제3당 출신 대권주자라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 설령 대통령선거(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제3당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결국 대선 전 야권후보 통합을 하거나 대선 직후 연정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원집정부제 개헌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새누리당 내에서는 김무성-유승민 연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친박계가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에 나선 상황에서 비박(비박근혜)계가 기댈 사실상 유일한 대안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승민 대통령-김무성 총리’라는 구도가 그것이다. 물론 ‘김무성 대통령-유승민 총리’ 구도도 가능하다. 유승민 의원의 국정철학과 김무성 전 대표의 조직력을 결합한다면 ‘반기문 대통령-친박계 총리’ 구도를 깰 수 있으리란 기대를 반영한 시나리오다. 당연히 김 전 대표도, 유 의원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참고로 김 전 대표는 이미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한다고 했고, 유 의원은 최근 한 지역 언론과 인터뷰에서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원집정부제 vs 정부통령제

    개헌 제안 권한은 없다지만, 그렇다고 국민의 뜻이 중요치 않은 것은 아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6월 24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46%, 필요 없다는 의견이 34%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6월 16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개헌에 대해 33.7%가 매우 공감, 36.1%가 공감하는 편이라고 응답했다. 개헌 방향과 관련해 대통령 임기에 대한 한국갤럽의 질문에는 ‘4년 중임제’ 선호가 55%로 ‘현행 5년 단임제’ 선호 38%를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권력구조의 경우에도 ‘현행 대통령 중심제’ 선호는 29%, ‘분권형 대통령제’ 선호는 49%로 나타났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개헌 방향과 관련해 응답자의 41%가   ‘4년 중임 대통령제’, 19.8%가 ‘분권형 대통령제’, 12.8%가 ‘의원내각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년 중임 대통령제와 분권형 대통령제, 곧 이원집정부제는 상충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리얼미터 설문지 구성에 문제가 없지 않다. 따라서 한국갤럽 여론조사가 더 정확하게 물었다고 봐야 한다. 결론은 ①국민은 개헌을 원한다. ②5년 단임보다 4년 중임을 원한다. ③대통령중심제보다 이원집정부제를 원한다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4년 중임 이원집정부제가 비교적 유력한 대안 또는 합의안으로 거론되는 가운데, 최근 새누리당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이정현 의원은 4년 중임 정부통령제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미국 대통령제가 바로   4년 중임 정부통령제다. 사실 이 방안은 김무성 전 대표도 2012년 무렵 주장했던 바다. 당시 김태호 의원도 같은 주장을 했다.

    4년 중임 정부통령제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18대 국회 재임 시절 만들었던 국회의장 자문기구 헌법연구자문위원회가 내놓은 두 가지 대안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2009년 9월 헌법연구자문위원회는 이원집정부제와 4년 중임 정부통령제를 권력구조 개편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내용의 최종보고서를 제출했다. 당시 위원장이 바로 김종인 대표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김 대표는 최근 내각제 개헌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하고 다닌다. 내각제 개헌 카드를 꺼내 결국 절충안으로 이원집정부제를 관철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한다.

    4년 중임 이원집정부제와 4년 중임 정부통령제 가운데 국민은 어떤 방안을 선호할까. 리서치 전문기관 한백리서치연구소가 2010년 10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원집정부제 27.0%, 4년 중임 정부통령제 24.9%,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 22.2%로 나타났다. 국민은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을 나누는 데 관심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변수, 주요 대권주자 변수, 국민여론 변수 등 삼합이 어우러져야 개헌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개헌 최적기가 도래한 것은 분명하다. 시한도 사실상 정해져 있다. 내년 상반기다. 그때를 넘기면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 불투명하다. 한번 동력을 상실하면 꽤 오랫동안 재론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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