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6

2016.07.13

경제

의혹의 7개월, 왜 하필 지금?

공정위, CJ헬로비전-SK텔레콤 인수합병 장고 끝 불허…외압설 등 온갖 잡음 솔솔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07-08 16: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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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사무처는 7월 4일 CJ헬로비전과 SK텔레콤의 인수합병에 대한 자체 심사보고서를 내고 ‘불허’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지난해 12월 1일 CJ헬로비전과 SK텔레콤이 공정위에 합병 심사 신청을 넣은 지 7개월 만의 불허 통보였다. 공정위 사무처의 장고 끝 불허에 대해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측은 “시장경쟁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반발하는 모양새다. 한편 방송·통신업계에선 공정위의 뒤늦은 의사결정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불허 이유와 관련해 온갖 억측을 쏟아내고 있다. ‘인수합병 불허’라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7개월이란 긴 세월이 꼭 필요했느냐는 것. 정계나 학계에선 이를 두고 “외압이 있었을 수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물론 인수합병 허가의 최종 결정은 공정위 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지만, 공정위 사무처가 작성한 심사보고서는 사실상 공정위의 공식의견이라는 게 지금까지 관행이자 공정위 내부 분위기다. 실제 공정위는 이번에 발표한 ‘보도 및 해명자료’에서도 ‘공정위 사무처 심사보고서’가 아닌 ‘공정위 심사보고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만약 공정위 전원회의 이전까지 SK텔레콤이 공정위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보고서 내용이 그대로 최종 결정 사항이 된다. 다시 말해 두 기업 간 인수합병이 무산된다는 얘기다. 



    합쳐도 전국 점유율 1위는 KT

    7월 4일 공정위 사무처가 CJ헬로비전과 SK텔레콤에 보낸 인수합병 심사보고서에서 밝힌 이들 간 ‘주식 취득 및 합병금지 명령’ 이유는 ‘경쟁 제한’이었다. 주식 취득과 합병을 금지하는 내용인 만큼 두 회사 간 인수합병을 사실상 불허한 것이다. 불허 이유는 시장독점 상황에 대한 우려였다. 공정위는 이동통신 1위 업체인 SK텔레콤과 케이블TV방송 1위 업체인 CJ헬로비전이 합쳐지면 지역 케이블TV방송 23개 권역 가운데 21곳에서 1위가 돼 독과점기업이 생겨나거나 시장의 독과점 현상이 강화된다고 판단한 것. 실제로 CJ헬로비전이 진출한 23개 권역 가운데 15개 권역의 경우 SK텔레콤의 IPTV(인터넷 프로토콜을 이용한 TV)인 Btv를 합하면 점유율이 사실상 60%가 넘는다.

    CJ헬로비전과 SK텔레콤의 인수합병이 이뤄진다면 알뜰폰(MVNO)시장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난다. 현재 CJ헬로비전과 SK텔레콤의 자회사 SK텔링크는 각각 업계 1, 2위 회사다. 4월 말 기준 CJ헬로비전의 알뜰폰 가입자는 83만 명(13.2%), SK텔링크 가입자는 81만 명(12.9%)이다. 두 회사의 시장 점유율에 큰 격차가 없는 상황에서 인수합병은 알뜰폰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 사업자를 낳게 되는 것.



    이 같은 이유로 지금까지 인수합병을 반대하던 시민단체들은 공정위의 불허 결정을 환영하고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14개 언론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방송통신 공공성 강화와 이용자 권리보장을 위한 시민실천행동’(방송통신실천행동)은 7월 5일 오후 “공정위의 결정은 통신시장 독과점을 방지하고 방송의 다양성과 노동자의 고용 보장을 위한 당연한 조치”라며 공정위의 인수합병 불허 결정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러나 합병 당사자인 CJ헬로비전은 7월 5일 공정위가 SK텔레콤과의 인수합병을 불허한 데 대해 “최악의 심사”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CJ헬로비전은 “합병뿐 아니라 인수조차 불허한 이번 심사 결과는 케이블업계의 미래를 고려할 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최악의 심사 결과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CJ헬로비전은 일단 ‘공정경쟁 저해’라는 공정위의 인수합병 반대 이유를 납득하지 못한다. “일부 권역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긴 하지만 전국 점유율을 고려하면 SK텔레콤과 인수합병을 해도 시장점유율은 업계 2위로 3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게 그들의 항변. 실제 현재 유료방송 시장점유율 1위는 KT(29.4%)로, 2위 CJ헬로비전(14.8%)에 비해 2배가 넘는다. SK텔레콤의 점유율 11%를 산술적으로 더하더라도 약 26%로 시장 2위에 불과하다. CJ헬로비전 측은 이와 같은 측면을 들어 “SK텔레콤과 인수합병이 불허되면 KT의 독주체제가 굳어져 오히려 독과점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공정위의 장고 이유는 외압 때문?

    공정위의 CJ헬로비전과 SK텔레콤 인수합병 불허 결정이 합당한지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 업계에선 이런 단순한 결정을 내리려고 7개월이라는 기간이 필요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불거지고 있다. 과거 심사 결과 발표 시점을 두고 오락가락했던 정재찬 공정위장의 전력도 이런 의혹에 불을 댕긴다. 정계나 학계에서 “길어진 심사기간에 비해 빈약한 심사 결과가 나온 것은 외압 때문”이라는 입질이 횡횡하는 것도 사실 장고의 심사기간에서 연유한다.  

    정 공정위장은 3월 22일 언론 인터뷰에서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기업 결합 승인 여부를 위한 검토 작업이 마무리 단계다. 조만간 심사의견서를 보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5월 26일 이 발언을 번복했다. 당일 열린 공정위 출입기자단 합동워크숍에서 정 공정위장은 “과거 유선방송 사업자 간 기업 결합 때도 1년 이상, 일부는 2년 6개월까지 심사가 진행된 경우가 있다. 특히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합병은 국내 첫 방송·통신 융합 사례인 만큼 검토가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며 “빠르게 결과가 나올 것”이라던 3월 발언을 완전히 번복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정 공정위장의 태도 변화로 미뤄 심사기간이 길어지면서 외압이 있었을 확률이 높다”고 주장한다. 더불어민주당 안정상 미래창조과학통신방송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조건부 승인도 아니고 단순히 불허 결과라면 7개월의 심사기간은 너무 길다. 게다가 정부에서 선제적 구조조정을 장려하는 마당에 정반대 심사 결과가 나온 것은 외압이 있었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로 정 공정위장이 CJ헬로비전과 SK텔레콤의 인수합병 심사와 관련해 3월까지 빠르게 마무리 짓겠다고 해놓고 5월에 이를 번복해 위원회 내부에서 외압설이 돌고 있었던 상황”이라고 밝혔다.

    안 전문위원은 “공정위의 불허 이유가 공정거래법상 기업 결합 제한 요건에 부합하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불허 이유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관련 업계에서도 이 같은 주장을 펼치는 이가 적잖다. 익명을 요구한 케이블TV방송 업계 관계자는 “권역별 점유율 경쟁은 유료방송이 케이블TV방송뿐이던 과거 이야기에 불과하다. 위성방송과 IPTV의 등장으로 전국 단위 점유율을 두고 경쟁하는 상황에서 권역별 점유율이 높다는 이유로 두 회사의 인수합병을 불허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학계에선 공정위의 불허 결정을 “무리한 결정”이라고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전 한국미디어경영학회장)는 “정부에서 선제적 구조조정을 장려하는 상황에서 이번 SK텔레콤-CJ헬로비전 인수합병 불허 결정은 정부 정책 기조를 역행하는 행위다. 게다가 주식 취득과 합병을 모두 금지하겠다는 공정위의 결정은 인수합병 허가의 최종 결정자인 미래창조과학부나 방송통신위원회 측도 부담을 느낄 만큼 강도 높은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학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이렇게까지 무리한 결정을 한 배경에는 두 회사의 인수합병을 둘러싼 이해 당사자 간 외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상파 방송 압력설도 뭉게뭉게

    두 기업의 인수합병에는 시작부터 잡음이 많았다. 표면적으로는 케이블TV방송 1위 기업인 CJ헬로비전과 이동통신 분야 1위 기업인 SK텔레콤의 합병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IPTV 점유율 2위 기업인 SK텔레콤의 Btv와 미디어콘텐츠 분야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는 CJ의 합작품이라는 점에서 IPTV 기업은 물론,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지상파 방송사에게도 두 기업의 합병은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최근 CJ E&M의 광고 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지상파 방송사를 앞질렀다는 점에서 지상파 방송사의 압력설도 제기되고 있다. 올해 1~4월 광고매출에서 CJ E&M은 1345억 원을 기록해 KBS(1237억 원)와 SBS(1150억 원)를 앞질렀다.

    학계 관계자는 “두 기업의 합병에 지속적으로 반발해온 KT와 LG유플러스 외에 지상파 방송사에서도 합병과 관련해 지속적인 압박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LG유플러스는 지난해 11월 30일 서울 광화문 S타워에서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 문제점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지상파 방송사들도 지속적인 보도로 압박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외압설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발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심사보고서는 공정위 사무처가 독자적으로 심사해 작성한 것으로, 심사과정에서 어떠한 정치적 고려나 외압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미래부, 방통위 허가해도 공정위 반대하면 도루묵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사무처가 심사보고서를 내고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을 불허했지만 완전히 무산된 것은 아니다. 추후 공정위 전원회의를 통해 최종 심사를 거쳐 승인 여부 결정을 내리는 단계가 남아 있다. 공정위는 7월 6일 보도자료를 통해 “최종적인 조치 수준이나 심사 일정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두 기업의 인수합병이 최종 허가를 받으려면 공정위 외에도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허가가 필요하다.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을 기준으로 인수합병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면 미래부와 방통위는 전기통신사업법과 방송법,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IPTV법)을 통해 허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미래부와 방통위가 두 기업의 인수합병을 허가한다 해도 공정위의 최종 판단이 7월 4일 발표된 사무처의 심사보고서대로 ‘주식 취득과 기업 합병을 모두 금지하는’ 방향으로 결정된다면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래부 관계자는 “공정위는 미래부에 심사의견을 주는 것과 별개로 기업 결합 승인권을 가진다. 공정거래법에서 승인되지 않으면 다른 쪽(미래부, 방통위)이 인가해도 인수합병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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