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2

2016.04.06

사회

“시험 없을 때 진도 빼자” 비틀거리는 자유학기제

창의적 교수법·커리큘럼 개발, 고교·대학 입시와 연계되는 장기적 로드맵 절실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6-04-04 10: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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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부터 시범적으로 운영해온 자유학기제가 지난해 전체 중학교의 70%인 2230개교에 도입된 데 이어 올해부터는 전국 3186개교에서 전면 시행된다. 이로써 중학교는 1학년 1학기부터 2학년 1학기 가운데 한 학기 동안 지필고사 없이 다양한 체험활동 위주의 수업을 진행한다. 토론·실험·실습 등 참여 중심의 수업, 진로탐색 등 체험활동 중심의 수업을 170시간 이상 편성 및 운영하는 것. 천편일률적인 암기식 수업에서 벗어나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꿈과 끼를 찾고, 지식과 경쟁 중심의 교육에서 자기주도학습과 창의성·인성·사회성 등 미래 지향적인 역량 함양이 가능한 교육으로 전환한다는 데 목적이 있다.

    자유학기제 활동 내용은 크게 4가지로 나뉜다. 개인별 특성·역량에 맞는 진로상담과 지역사회 기관과의 연계 등을 통해 자신의 적성을 찾는 진로탐색 활동, 문화·예술·체육 전문강사를 활용해 국·영·수·사·과 교과 간 융합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예술·체육활동,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동아리 활동, 프로젝트 수업을 5~17주간 실행할 수 있는 주제 선택 활동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교사들에게도 자유학기제 취지에 맞는 교수·학습법이 필요하게 됐다. 과목 간 융합·연계 수업을 비롯해 협동교수·협력강습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학생 평가방법도 중간·기말고사를 실시하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지필고사 대신 교사들이 직접 학생 개개인의 역량을 평가하는 수행평가로 대체할 예정이다.



    선행 위주 학원 성행

    한편 서울시교육청은 자유학기제를 1학기 더 늘린 형태의 2016 서울형자유학기제를 도입했다. 탐색·연계학기, 집중학기(일반 자유학기와 같은 개념)로 나눠 학교장이 해당 학교 교원 및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해 ‘1학기 탐색학기-2학기 집중학기’ 또는 ‘1학기 집중학기-2학기 연계학기’의 1년 과정으로 운영하는 것. 집중학기 기간에는 중간·기말 지필평가는 이뤄지지 않고, 탐색·연계 학기에만 수행평가와 기말 지필평가를 실시한다.

    이처럼 자유학기제를 한 학기 더 시행하는 이유에 대해 한상준 서울시교육청 장학사는 “교육 혁신을 위한 긍정적 변화인 만큼 1학기를 더 늘렸다. 1년간의 교육 내용을 ‘핵심성취기준’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질문이 있는 교실, 거꾸로 수업, 토의·토론, 실험·실습, 프로젝트 수업 등 학생 참여형 수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학업 부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공부하고 역량 중심의 교육, 결과가 아닌 과정 중심의 교육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자유학기제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진에게 충분히 공감을 살 만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유학기제가 당초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최근 학원가에서는 “학교에서 시험을 보지 않으면 아이들의 학업이 뒤처진다”는 논리를 내세워 자유학기제를 사교육의 적기로 홍보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특히 선행학습 위주로 진행하는 학원의 경우 ‘자유학기제 마케팅’이 더욱 심각하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주부 A씨는 “예전 같으면 지금 한창 중간고사 범위가 발표되고 시험 시간표도 나오고 했을 텐데 현재 중1들은 학원에서 진도를 빼느라 바쁜 것 같다. 특히 선행학습을 위주로 하는 학원의 경우 학교 시험 기간에는 내신에 집중하느라 2주 정도 학원을 쉬기도 하는데, 요즘에는 시험을 안 봐 진도를 뺄 수 있으니 학원이나 학부모 처지에선 오히려 호기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내신 전문 수학학원을 운영하는 B씨는 자유학기제 도입 이후 선행학습 학원과 개인과외 수요가 늘었다고 말한다. B씨는 “자유학기제 때는 진도를 빼려고 학원에 다니고, 2학년 때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내신학원을 추가로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결국 학원을 두 군데 다니는 셈이다. 상담하러 오는 학생 중에는 중학교 1학년 과정은 시험이 없으니 2학년 과정부터 진도를 나가겠다고 하는 경우도 많다. 수학은 기본이 다져지지 않으면 진도를 나가기 힘든데, 시험을 안 보니 공부를 안 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진로와 적성 찾는 것도 큰 부담

    일부 학교는 지필고사 대신 쪽지시험을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포동에 사는 주부 C씨는 잦은 단원평가에 부담감을 토로했다. C씨는 “진도를 나갈 때마다 단원평가를 봐 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도 채 안 됐는데 벌써 수학시험 2번, 과학시험 1번을 봤다. 예전처럼 한 번에 몰아서 보는 게 낫다고 말하는 엄마들이 많다. 그래도 아예 시험을 안 보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다. 엄마들 사이에서는 자유학기제를 경험한 아이의 경우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학년이 올라갔을 때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 크다는 얘기도 나돈다. 자유학기제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시험을 보지 않는 데 대한 불안감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유학기제 커리큘럼에 대한 의구심도 거두기 힘들다. 교육청은 교사 워크숍, 연수 등을 통해 충분한 준비과정을 거쳤다고 하지만 학부모가 느끼는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은 게 사실이다. 중2 자녀를 둔 주부 D씨는 “지난해 자유학기제 수업이 재미있다고 한 아이들이 있던 반면 우리 아이는 딱히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특히 진로탐색과 관련해 기관 방문이나 전문가 초빙 등의 커리큘럼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경찰서, 방송국 방문 등이 고작이었다”고 푸념했다. 자유학기제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분야가 진로탐색 활동임에도 실질적인 체험은 그리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 소재 한 중학교의 자유학기제 영어 담당교사는 “지역사회와 연계해 아이들에게 많은 체험 기회를 주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영어 박물관 등 아이들과 함께 가볼 만한 곳은 이미 예약이 다 찼거나 거리가 너무 멀어 갈 수가 없다. 그 대신 얼마 전에는 자신이 희망하는 직업군의 가상인물을 포함한 가족신문을 만드는 활동을 했다. 아이들은 가상인물의 직업을 조사해 와 영어로 발표하는 식의 연계학습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교육 혁신의 실제 ‘고객’인 학생들은 자유학기제에 만족도가 높다는 점이다. 시험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수업 방식은 누가 봐도 이상적인 교육법임이 분명하다. 서울 성북문화재단을 통해 정릉동 소재 한 중학교에서 자유학기제 미술교사로 활동하는 김모 교사는 2년에 걸쳐 자유학기제에 참여한 결과 아이들의 성취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 교사는 “처음 수업할 때는 그 시간에 공부나 하는 게 낫다며 문제집을 들고 오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수업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흥미를 가졌고 나중에는 재미있게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존 미술수업과 달리 여러 가지를 접목해 진행하다 보니 아이들의 사고력 발달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지난 학기에는 캘리그래피를 가르치면서 캘리그래퍼의 세계에 대해 알아보고, 자신만의 글씨체로 평소 가졌던 불만을 상소문 형식으로 써보기도 했다. 또 환경 문제 자료를 보여주고 모둠별 토론을 거쳐 각자 캐릭터를 만든 다음 하나의 이야기를 꾸며 연극으로까지 이어지는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아이들 반응이 무척 뜨거웠다”고 밝혔다.

    한편 김 교사는 아쉬운 점으로 아이들이 수업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꿈과 진로 찾기에 너무 몰입돼 부담을 갖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들었다. 김 교사는 “마지막 수업 때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는데 대부분 항목에서 ‘좋았다’고 답변했지만 ‘이번 수업을 통해 자신의 꿈과 끼를 찾았는가’라는 물음에는 대부분 ‘보통이다’ 혹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아이들이 예술을 통해 나 자신과 상대방을 이해하고, 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다 보면 자신의 꿈과 끼는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을 텐데, 학교와 학부모들이 진로와 관련해 아이들에게 너무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자유학기제 연착륙, 사교육 의존도 낮출 것으로 기대

    자유학기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장기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학교 한 학기 혹은 1년 동안 자유학기제를 시행했다고 그 영향력이 얼마나 갈지 의구심을 품는 이가 많다. 물론 2016 서울형자유학기제의 경우 중2, 중3까지 수업과 평가, 창의적 체험활동(창체) 등을 꾸준히 이어가겠다는 방침이지만, 결국 목표는 고교 및 대학 입시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비영리 민간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구본창 정책국장은 “자유학기제가 끝나면 다시 지필고사에 초점을 맞춘 기존 교육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라 학부모들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고민일 것이다. 자유학기제의 좋은 취지가 중2, 중3, 고등학교까지 연계돼야 우리나라 교육의 고질적 병폐인 대입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교사 인프라와 수업 커리큘럼 구축을 통해 학부모들 사이에 퍼져 있는 불안감을 하루빨리 잠재워야 한다. 현재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가장 큰 관심사인 ‘평가’와 관련해서도 교과목별로 어떻게 수행평가를 시행하는지 속 시원한 정보 공개가 이뤄져야 한다. 이에 대해 구 정책국장은 “수행평가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자유학기제와 입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뚜렷한 청사진을 보여줘야 한다. 현재 교육부는 먼 미래의 얘기보다 지금 당장 자유학기제의 연착륙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당초 좋은 취지와 교육 혁신의 잠재적 능력이 끊임없이 공격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학부모들 역시 자녀 교육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 정책국장은 “최근 일부 학원이 자유학기제에서 수행평가 점수를 잘 받으려면 토론, 발표 등의 학습법을 익혀야 해 학원에 다녀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런 말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 학원을 아무리 열심히 다니는 아이라도 모둠활동이나 자료 조사 등 수행평가와 관련한 활동이 있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학원을 빠진다. 더욱이 자유학기제는 교사마다 고안한 교수법이 다르기 때문에 학원에서 선생님의 의도와 학습목표까지 미리 알고 대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자유학기제가 안착만 된다면 사교육 의존도는 점점 낮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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