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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남은 건 ICBM 실험뿐, 평양 딜레마

3월 ‘미사일 퍼레이드’가 남긴 자충수…안 하면 능력 부족, 실패하면 공개 망신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남은 건 ICBM 실험뿐, 평양 딜레마

남은 건 ICBM 실험뿐, 평양 딜레마

3월 25일 북한 조선중앙TV가 공개한 장사정포 일제 사격 훈련 모습.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청와대와 서울시 안의 주요 정부기관들을 목표로 하는 전선 대연합 부대 장거리 포병대의 집중화력 타격연습을 직접 지도했다며 보도한 장면이다. 사진 출처 · 조선중앙TV 캡쳐

이제는 쉽게 믿기지 않는 사실 하나. 2013년 3차 핵실험 이전까지 북한은 미국을 향해 직접적으로 위협을 가한 적이 거의 없다. 누가 봐도 미국을 겨냥한 게 분명한 장거리로켓 기술을 꾸준히 증강하는 동안에도 위성 발사용이라고 강변해온 게 대표적이다. 미국 시민이나 영토를 향해 공격을 시도한 적 역시 한 차례도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거칠어지는 평양의 말들만 보면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지만, 이때의 북한이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 수위 조절에 애썼다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흥미로운 것은 2013년 이후다. ‘워싱턴 불바다’에 대한 관영언론의 언급과 동영상이 처음 공개된 그해 봄 석 달 남짓의 대치 국면 동안 평양의 도발적 언사는 주로 미국을 겨냥했다. 마지막 선을 넘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경계심은 사라졌다. 그리고 올해 1월 이후 이어지고 있는 강경 도발 행보는 이제 미국과 남한을 가리지 않는다. 완전히 같은 수위로 양측을 가리지 않고 협박하고, 미 본토와 남측에 대한 타격 능력을 한꺼번에 과시한다. 김정은 체제의 강경 행보는 이전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김정일 시대, 북한의 주된 전략적 목표는 서울과 워싱턴의 이해관계 차이를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남측과의 긴장은 한반도 내부 문제로 국한해 워싱턴이 이를 ‘자기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게 중심축이었다. 물론 최종적인 의도는 유사시 전쟁이 벌어질 경우 미국이 선뜻 개입을 결심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것. 그러나 김정은 시대 평양은 이러한 수 싸움이나 계산에 연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2월 이후 북한의 행동 방식은 그 맨얼굴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줄어든 재래식 훈련, 공백 메운 미사일

남은 건 ICBM 실험뿐, 평양 딜레마

뉴시스

한미 양국이 3월 진행하는 연합군사훈련의 내용에 대응해 북측 역시 국가급 훈련에 돌입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 고착된 패턴이다. 서로 맞붙지 않을 뿐, 양측은 매년 봄 도상(圖上) 전쟁을 치르는 셈이다. 3월 12일 한미 해병대 1만2000여 명이 참가한 대규모 상륙훈련이 독수리연습(FE)의 일환으로 경북 포항 해안에서 진행되자, 8일 뒤인 20일 북측 역시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 참관 아래 상륙 및 반상륙 방어훈련을 실시했다고 공개한 게 대표적이다. 이들 훈련에 동원된 전력 구성과 작전 전개를 하나로 합쳐보면 실제로 전쟁이 벌어질 경우 양측 주력부대 격돌 전투의 완벽한 얼개를 그려낼 수 있을 정도다.



눈여겨볼 대목은 북측의 올해 동계훈련에 동원한 재래식 전력의 규모나 횟수가 이전에 비해 줄었다는 점이다. 1월부터 3월까지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된 김정은의 훈련 참관을 분석한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도하 공격 훈련이나 군종 타격 훈련, 섬 화력 타격과 점령 훈련, 비행전투 훈련 등을 했던 지난해에 비해 올해는 대연합부대 기동훈련이나 탱크병 경기 훈련, 상륙 및 반상륙 훈련 참관 등이 공개된 전부”라고 말한다. 김정은이 현지 지도한 주요 훈련만 보면 재래식 전력을 동원한 군사연습 규모가 오히려 축소된 것 같다는 설명이다.

공백을 메운 것은 미사일과 방사포였다. △3월 3일 300mm 방사포 6발을 동해로 발사한 것을 시작으로 △10일 스커드 계열 2발 △18일 노동 계열 중거리 미사일 2발 △21일 300mm 방사포 5발 동해 발사 △29일 300mm 방사포 1발 양강도 발사까지 이어진 퍼레이드. 여기에 △9일 김 제1비서가 핵무기 연구 분야 과학자와 기술자들과 함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KN-08 탄두 설계도와 소형화된 핵탄두 모형을 살펴보는 모습을 공개한 것이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완성했다며 공개한 사진 △고체연료 실험 사진 △24일 원산 인근 해안에서 장사정포 100여 문을 동원해 실시한 일제 사격훈련까지 3월 한 달 내내 미사일과 장사정포 관련 소식을 쏟아냈다. 부족한 유류와 악화되는 경제사정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던 재래식 전력 훈련 대신 선택한 카드인 셈이다.

이러한 훈련이나 시험발사는 한마디로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전부 끄집어내 과시하고 있는 형국’에 가깝다. 사거리 40km 안팎의 170mm 자주포부터 1만km 수준의 KN-08까지 그간 알려진 북한의 장거리 타격 수단은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그럴듯한 장면을 연출해 관영언론에 공개함으로써 지도자의 만족감이나 주민의 충성심을 확보하려는 시도 역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무기체계만이 아니다. ‘백악관 불바다’를 공언하며 KN-08에 핵탄두 장착을 달성했다고 주장하는 행보는 분명 미 본토에 대해 직접 핵 응징억제(Deterrence by Punishment)를 구축하겠다는 뜻이다. 반면 부산항 상공에서 전술핵을 터뜨릴 수 있다는 3월 9일의 언급은 유사시 미군의 전시 증원을 차단하겠다는 핵 거부억제(Deterrence by Denial)에 해당한다. 청와대를 비롯한 수도권에 대한 위협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나선 것은 서울을 볼모로 잡겠다는 간접억제(Indirect Deterrence)에 가깝다. 서구 핵 억제이론에서는 공존할 수 없다고 보는 서로 다른 차원의 핵전략을 한꺼번에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2016년 3월 북한의 행보는 분명 김정일 시대와 다르다. 이전 시기 평양은 특정 시점에 위기가 고조되면 하나의 전략적 목표에 집중해 ‘실력’을 과시함으로써 어떤 상황 전개를 원하는지 명시적으로 드러냈다. 남한을 압박하고자 할 때는 서울을, 미국과 대화가 필요할 때는 워싱턴을 향해 긴장을 고조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의 선택에는 이러한 날카로움이 없다.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행보에서는 어떠한 전략적 메시지도 발견하기 어렵고, 당연히 달성할 수 있는 정치적 효과 역시 턱없이 줄어든다. 반복되는 ‘험악한 말’에도 정작 한미 양국이 체감하는 위험 수위는 그다지 높지 않은 이유다.

이렇게 놓고 보면 최근 북한의 초강경 행보는 한마디로 낙제점이다. 이유가 뭘까. 가장 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체제 자체의 한계다. 핵미사일이 완성됐다고 믿는 젊은 지도자는 흡사 병정놀이를 즐기는 어린아이처럼 주머니에 든 모든 ‘장난감’을 꺼내 자랑하기를 원한다. 당면한 상황을 분석해 최적의 목표를 설정한 뒤 그 경로를 제시해야 할 참모들은 변덕스러운 권력 앞에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

복잡하게 얽힌 국내 정치는 또 다른 축이다. 5월 당대회를 앞둔 김정은으로서는 인민에게 자신의 업적과 위상을 자랑할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 대북제재로 경제사정이 악화될 게 뻔한 현재로서 남은 건 핵과 미사일이 상징하는 ‘군사강국의 위엄’뿐이다. 절대자로서의 위상이 흔들리면 언제 어디서 반역의 칼날이 날아들지 모르는 젊은 지도자로서는 포기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아버지보다 못한 아들의 한계

남은 건 ICBM 실험뿐, 평양 딜레마

북한 ‘노동신문’이 3월 15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며 공개한 사진.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고열을 견뎌낸 미사일 탄두 부분을 살펴보며 웃고 있다. 사진 출처 · 노동신문

역설적으로 가장 큰 패착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고리’에서 드러난다. 꺼내 든 ‘미사일 종합세트’에서 진짜 성능이 확인된 건 사거리 1300km 수준의 노동미사일까지다. 재진입·고체연료 기술을 자랑하며 동영상을 공개해봐야, 3000km 수준의 무수단이나 KN-08 ICBM이 한 차례의 시험발사도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는 한 쏟아낸 말 가운데 상당 부분은 아직 허세(bluffing)일 뿐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들 미사일을 실제로 날리는 일이 간단한 작업은 아니다. KN-08의 사거리와 정상적인 대기권 재진입을 확인하려면 남태평양 깊숙이까지 이를 날려 미리 설정한 목표 수역에 정확히 꽂히는 궤적을 그려내야 한다. 굳이 실제 핵탄두를 장착할 필요는 없겠지만 △관측선을 보내 낙하 장면을 촬영하거나 △재래식 탄두를 목표 수역에서 폭발시키거나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탄두를 건져 대기권을 돌입하는 동안 타버리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한다. 무수단 역시 목표 수역만 남중국해 정도로 가까워질 뿐 수행해야 하는 기술적 과제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라 해도 불가능한 작업은 아니다. 유일한 전제는 ‘이들 미사일이 실제로 날아가느냐’뿐. 북한이 목적에 따라 위협을 골라가며 구사하던 예전에는 무수단과 KN-08을 테스트하지 않는 것 역시 ‘전략적 모호성’을 남겨둠으로써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계산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했다. 반면 지금처럼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들 미사일의 성능에 대해 평양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3월 한 달의 초강경 행보는 평양을 기묘한 딜레마에 빠뜨리고 만다. ‘워싱턴 불바다’ 위협을 입증하려면 실제로 이들 미사일을 날릴 수밖에 없지만, 만에 하나 시도했다 실패하면 그간 쏟아낸 모든 말들은 거짓으로 판명 난다. 대내외적 위상의 곤두박질은 불문가지다. 어쩌면 현재 상황을 가장 두려워할 이들은 그간 ‘미사일 성능이 완성됐다’고 보고했을 무기 개발 부서와 북한군 간부들일지도 모를 일. 손에 잡히는 대로 미사일을 집어 던져온 김정은 제1비서가 정작 결정적 한방을 두고 맞닥뜨린 막다른 골목이다. 정교하게 계산되지 못한 전략적 실패가 남긴 외통수다. 아버지보다 현명하지 못한 아들의 한계다. 






주간동아 2016.04.06 1032호 (p24~26)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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