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0

2016.03.23

커버스토리 | 개성공단 폐쇄 한 달

평양 “주문 달라” 아우성 베이징 혼자 웃는다

개성공단 폐쇄 후 중국 내 북한 근로자 근무 공장은 ‘즐거운 비명’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입력2016-03-18 17: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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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을 전격 발표한 이후 국제사회의 초강력 대북제재가 이어지면서, 북한 사업 주체들은 다급하게 외부 사업 파트너를 찾아다니며 “제발 주문 좀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도움 요청을 받은 상대방이 대부분 중국 기업인 까닭에, 중국 정부 측은 한편으로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행보에 보조를 맞추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요청을 내심 반기며 이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성공단 폐쇄 직후 남북한 공단 관계자들은 모두 큰 충격에 휩싸였지만, 북한 근로자들이 일하는 단둥과 훈춘 등 북·중 접경지역 공장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즐거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간 개성공단이 받았던 주문 물량이 일시적으로나마 북한 근로자가 일하는 이 지역 공장으로 몰렸기 때문. 물량이 폭주하면서 이들 공장은 웃돈을 받고 야간작업까지 해가며 추가 수익을 올렸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북한 근로자 1인에게 지급되는 월급은 개성공단이 약 160달러(약 20만 원), 중국은 약 300달러(약 35만 원·합법적 취업 기준)로, 중국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임금이 훨씬 높다. 긴급 요청에 따른 웃돈과 추가 근무 수당까지 감안하면 개성공단 폐쇄 이후 일정 기간 중국 공장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간 외화가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개성공단이 막히자 북한은 중국에서 사업 파트너를 찾느라 혈안이 됐다. 기자가 접촉한 한국인 B씨 역시 그 대상 가운데 한 명이었다. 중국에서 현지 기업과 손잡고 의류봉제업 분야에서 대북사업을 해온 그는 개성공단 폐쇄 이후 최근까지 북한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관계자로부터 자주 연락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북측이 던진 제안은 크게 두 가지. 자신들과 합작법인을 세워 개성공단에서 동업을 하자는 요청과, 자신들이 만드는 의류제품의 주문을 따내달라는 부탁이었다.



    외국 사업가들 상대로 ‘개성공단 승계’ 타진

    B씨가 “개성공단에서 동업은 남측이 전기 공급을 끊어 어렵지 않으냐”고 묻자, 북측 관계자는 “남쪽에서 비상용으로 갖다 놓은 발전기가 있어 괜찮다. 그래도 부족하면 우리가 추가로 발전기 공급을 하면 되니 전기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B씨는 “실제로 비상용 발전기가 있다면 완성품의 다림질만 중국으로 갖고 나와 하는 방식으로 의류 생산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3월 10일 북한 당국이 발표한 ‘남측 자산 청산’ 선언이다.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담화를 통해 “북남 사이 채택, 발표된 경제협력 및 교류 사업과 관련한 모든 합의를 무효로 선포한다”면서 “북측 지역에 있는 남측 기업들과 관계 기관들의 모든 자산을 완전히 청산해버릴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개성공단에 있는 9000여억 원어치의 남측 자산 소유권을 전면 부정한 셈. 이에 대해 통일부는 “묵과할 수 없는 도발적 행위”라며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지만, 이를 막을 방법은 딱히 없어 보인다. 북한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측이 B씨에게 수차례 건넸다는 제안을 되짚어보면 3월 10일 발표된 ‘남측 자산 청산’ 선언은 이미 개성공단 폐쇄 당시부터 고려한 일임을 알 수 있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뿐 아니라 나선(나진·선봉)경제특구와 평양 등 북한 다른 지역에서도 중국 기업인을 대상으로 주문 요청이 다급하게 이어지고 있다. 많게는 한 사람이 하루 10통 넘는 주문 요청 연락을 받은 적도 있다는 것. 이들은 “어느 나라든 상관없으니 제발 납품할 수 있는 ‘오더’만 따달라”며 애걸하는 상황이다. 북한 내 사업 주체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현실을 외면하는 북한 당국의 연이은 강경대응 탓에 더욱 절박해지고 있다.
    반면 평양 당국은 2월 24일 ‘남한 제품 가공과 거래 중단’ 지시를 시작으로 ‘한미일 3국 제품의 가공과 거래 중단’까지 지시했지만, 3월 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이 통과된 직후 이를 철회한 바 있다(‘주간동아’ 1027, 1029호 관련 기사 참조). 그러나 3월 10일 들어 평양은 이를 또다시 번복해 한미일 3국 제품의 가공과 거래를 금지한 것으로 파악됐다.


    오락가락 지시, 중국산만 예외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의류업체를 운영하는 한 중국인 사업가는 3월 11일 나선경제특구로 들어가는 원정 세관에서 원단을 모두 압수당했다고 전했다. 압수 이유는 원단에 붙은 라벨. 원정 세관 측이 한글 라벨이 붙은 원단은 무조건 압수하고 영어나 일본어 라벨일 경우 조사 후 압수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단둥과 훈춘 등지의 대북 사업가들도 북한 세관에서 유사한 일을 당하자 북한 내 공장에서 만든 완성품을 제대로 갖고 나올 수 있을지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반복되는 갈지자 행보에 대북 사업가들은 최근 중국 정부가 대북제재 조치를 이행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과 연결해 해석한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된 후 중국은 북한 접경지역에 군사력을 집중 배치한 데 이어 북한으로 향하는 물건에 대한 세관조사를 대폭 강화했다. 3월 8일 무렵부터 중국 세관당국은 북한으로 반입되는 컨테이너를 열고 일일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과거 대북제재 때는 볼 수 없었던 조치다.
    이러한 중국 측 조치가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바람에 북한 세관에서도 중국으로부터 들어오는 물건을 일일이 트집 잡고 나선 것이라고 대북 사업가들은 보고 있다. 다만 중국에서 만든 제품은 전혀 제지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 최대교역국인 중국산(産) 물건에마저 제동을 걸 경우 자국 경제 붕괴로 직결될 수 있다는 점을 북한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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