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6

2016.02.24

정치

친박이냐 소신이냐 이한구의 딜레마

‘관리’에 충실하면 친박이 울고, 컷오프·전략공천 소신 지키면 비박계 줄초상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6-02-22 17: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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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管理)’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이고, ‘심사(審査)’는 ‘자세하게 조사하여 등급이나 당락 따위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천(公薦)’은 대통령선거(대선)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이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으로 ‘공직후보자추천’의 약자다. ‘관리’와 ‘심사’, 그리고 ‘공천’의 개념을 다시 한 번 살펴본 이유는 최근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친박근혜(친박)계 대 비박근혜(비박)계 간 갈등의 진앙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총선에서는 각 정당이 공천 관련 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심사’ 기능에 방점을 찍었다. 그래서 위원회 명칭도 주로 공천심사위원회라 했다. 그러나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은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라고 정하며 명칭에서 ‘심사’ 기능을 뺐다. 그 대신 ‘관리’를 붙여 공천 사무 처리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공관위장에 임명된 이한구 의원이 공관위 기능에 대해 ‘관리’에 머물지 않고 후보자의 당락을 결정하는 ‘심사’에 무게를 둔 발언을 잇달아 쏟아내면서 새누리당에서는 공천 갈등에 따른 파열음이 하루도 빠짐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월급쟁이 비슷한 양반집 도련님

    새누리당은 공정한 총선 공천 ‘관리’를 위해 당내 인사 5명, 외부 인사 6명으로 공관위를 꾸렸다. 이한구 의원을 공관위장에 임명했고, 황진하 사무총장을 부위원장 겸 간사로, 홍문표 제1사무부총장과 박종희 제2사무부총장, 김회선 클린공천지원단장 등을 공관위원으로 임명했다. 이후 외부 인사 공관위원으로 김순희 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연합 상임대표,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 이욱한 숙명여대 법대 교수, 최공재 차세대문화인연대 대표, 한무경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 등을 임명했다.
    2월 11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공관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린다는 정신 아래 만들어진 룰대로 관리를 잘 해달라”며 ‘관리’를 당부했다. 그러나 공관위는 김 대표 바람과는 정반대 길을 걷고 있다. 선두에는 이한구 위원장이 서 있다. 이 위원장은 대선 전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교사를 지냈을 만큼 대표적인 친박계 인사.
    이 위원장은 공관위장 내정 직후인 2월 4일 기자회견을 열고 “상향식 공천제라고 국민 뜻이 제대로 반영된다는 보장도 없다”며 “당헌당규에 규정된 단수추천, 우선추천 조항을 적극 활용해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후보를 공천하겠다”고 말했다. ‘관리’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인 ‘추천’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이 위원장은 또 “김 대표의 상향식 공천은 취지는 좋으나 실천할 수 있는 여건이 돼 있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며 “여건이 안 돼 있으면 엉터리 선출이 일어난다”고 했다. 특히 공천 과정에 대해 “당대표와 논의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세세한 것까지 당대표와 상의하면 공정하게 이뤄질 수 없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공관위가 독자적인 공천 심사에 나설 뜻을 내비친 것. 더욱이 이 위원장은 “20대 국회는 19대 국회보다 훨씬 나아져야 하고, 자질이 좋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며 “19대 국회에서 능력 부족이 확인된 사람은 걸러내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특히 이 위원장은 2월 11일 아침 CBS 표준FM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중요한 이슈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 문제를 풀려고 하기보다 그냥 월급쟁이 비슷하게 하다 4년 내내 별로 존재감이 없던 양반집 도련님처럼 (의정활동) 하는 사람들을 집중 심사하겠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의 발언은 공천을 위한 경선에 앞서 현역의원을 일정 비율 탈락시키는 컷오프가 불가피하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한발 더 나아가 “훌륭한 분을 최대한 모셔와 우선 추천 지역, 비례대표 배정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해 안심케 하겠다”고도 했다. 사실상의 전략공천 가능성까지 시사하고 나선 것.



    컷오프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

    김무성 대표 등 비박계가 발끈하고 나선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위원장이 ‘현역 물갈이’와 ‘전략공천’을 시사하면서 김 대표가 주창해온 ‘상향식 공천’은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으로 비쳤기 때문.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다르다고 한다. 다음은 새누리당 한 비박계 핵심 인사의 공천에 관한 얘기.
    “공천룰은 이한구 위원장이 구두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공관위에서 위원 11명이 협의를 거쳐 합의안을 도출하고, 그 안을 최고위원회에 보고해 추인을 받아야 공천룰로 확정된다. 만약 최고위원회에서 공천룰을 거부하면 다시 공관위를 열고 위원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룰로 확정된다. 이 같은 과정이 생략된 채 이 위원장이 언론에서 얘기한 내용이 마치 공천룰인 양 호도되고 있다.”
    위 인사는 현역 컷오프 가능성에 대해서도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
    “이한구 위원장이 마치 현역의원을 일정 비율 탈락시키는 컷오프를 시사한 것처럼 회자되고 있는데, 이마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공관위원들이 현역의원 탈락 비율을 정하고 최고위원회에서 그 비율을 추인하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현역 컷오프는 현실적이지 않다. 다만 2월 15일과 16일 양일에 걸쳐 공직후보자 신청을 받지 않았나. 지역구에 따라 적게는 한두 명에 그쳤지만 많은 곳은 10명까지 공천을 신청한 곳이 있다. 너무 많은 후보자가 몰린 선거구의 경우 모두 다 경선에 붙일 수 없으니, 후보자를 서너 명으로 압축하는 컷오프가 불가피하다. 그런 앞뒤 얘기는 빼놓고 컷오프를 언급하니 현역의원 컷오프로 와전되는 것이다.”
    김무성 대표는 총선 예비후보자 워크숍에서 “새누리당은 정당민주주의를 확립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공천룰은 누구도 손댈 수 없다”며 “공관위는 국민 앞에 공표된 룰대로 공정하고 투명하게 관리만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공관위가 국민 앞에 공표된 룰대로 공천 ‘관리’만 할 것 같지는 않다. 이한구 위원장은 2월 17일 황진하 사무총장으로부터 “공관위에서 합의되지 않은 얘기는 공개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러겠다”고 화답했다는 후문. 그러나 이 위원장은 ‘저성과자 현역의원 컷오프’와 ‘전략공천’ 등 당내 논란이 컸던 몇 가지 공천안에 대해서는 ‘소신’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새누리당 공천은 무난한 관리로 흐르면 친박의 비명이, 소신으로 진로를 바꾸는 순간 비박의 신음소리가 예고된 형국이다. ‘소신’과 ‘관리’ 사이에 놓인 새누리당 공천 작업이 앞으로 어떤 행로를 이어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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