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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인사이트

민주당의 박제된 5 · 18

광주민주화운동 독점·사유화 … “5·18은 살아 있어야 한다”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민주당의 박제된 5 · 18

5월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김부겸 국무총리(왼쪽에서 두 번째)가 유족과 함께 열사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뉴시스]

5월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김부겸 국무총리(왼쪽에서 두 번째)가 유족과 함께 열사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뉴시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 기자였던 노먼 소프가 찍은 사진이 공개됐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유혈 진압 직후 전남도청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다. 그중 한 장이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교련복을 입은 채 도청 경찰국 2층 복도에 쓰러진 두 소년. 그들의 이름은 문재학과 안종필로, 같은 학교 친구였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그들의 정신을 후세에 전할 의무가 있다. 우리가 매년 그날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올해 행사는 특히 뜻깊었다. 처음으로 국민의힘이 5·18민주유공자유족회의 공식 초청으로 추모제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5·18이 진영을 넘어 온 국민 공통의 기억으로 온전히 자리 잡게 됐다.

사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5·18특별법)으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것은 김영삼 정권 시절 일이었다. 보수 정당에도 원래 한 가닥 민주화운동의 핏줄이 흐르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맥이 끊겨버렸다. 언제부터인가 보수 정당은 자신을 ‘산업화’ 세력으로 규정하며 민주화운동에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난 보수 정권은 5·18 기념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도 부르지 못하게 했다. 보수 세력의 일부는 5·18의 진상을 왜곡하고 그 정신을 폄하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 김종인 당시 국민의힘 비대상대책위원장이 국립5·18민주묘지에 무릎을 꿇은 것은 이 오류를 반성하고, 보수 정당 안에 이 끊어진 민주화의 혈통을 복원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광주항쟁 사유화한 민주당

국민의힘이 다시 5·18 기억의 공동체에 동참하려 하는 사이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외려 그 반대 길로 나아가고 있다. 그들은 5·18 민주화항쟁을 오로지 자기들의, 자기들에 의한, 자기들만을 위한 기억으로 독점하려 한다. 온 국민 공통의 기억이어야 할 광주항쟁을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으로 아예 사유화(私有化)해버린 것이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방명록에 ‘광주정신은 검찰개혁’이라고 썼다. 도대체 광주항쟁과 검찰개혁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원숭이 엉덩이가 사과와 바나나를 거쳐 백두산으로 둔갑하는 이 논리적 비약으로 대선후보 경선에서 ‘대깨문’의 지지를 얻어내겠다는 계산이다. 광주정신이 한 정객의 영달을 위한 소품으로 전락한 것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5·18 묘역을 방문할 뜻을 밝히자 민주당 의원들의 반응은 거의 ‘집단 히스테리’ 수준이었다. 김남국 의원은 윤 전 총장은 5·18 묘역을 방문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그 시절 아직 입에 젖꼭지를 물고 있었을 그가 광주학살 모의재판에서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피해 다녀야 했던 이의 참배 자격을 심사하다니.

최민희 전 의원은 “검찰은 군부의 시녀로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민주 인사와 학생들을 탄압했다”며 “윤석열은 역대 최악의 총장이자 정치검사”라고 비난했다. 1987년 투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치사 사건은 검찰이 아니라 경찰이 한 짓이다. 정권의 은폐 기도를 무산시키고 사건의 진상을 밖으로 알린 것은 한 용기 있는 검사였다.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느닷없이 윤 전 총장을 가리켜 “전두환 장군 젊은 시절이 생각난다”고 했다. 이 황당한 비약은 조국 일가, 원전 비리, 선거 개입에 대한 수사가 ‘검찰 쿠데타’였다는, 조국과 그 지지자들의 집단적 망상을 배경으로 해야 비로소 그 뜻이 이해가 된다. 재보선에서 참패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이다.

“5 · 18, 미래 정신으로 격상해야”

왜 이렇게 히스테리컬할까. 물론 아픈 데를 찔렸기 때문이다. 윤 전 총장은 5·18 묘역 방문계획을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5·18은 특정 진영의 전유물이 아닌, 보편적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정신이다. 5·18 정신을 선택적으로 써먹고 던지면 안 된다. 5·18을 과거로 가두지 말고 현재, 미래의 정신으로 격상시켜야 한다.”

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그가 “문재인 정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며 이를 ‘배은망덕’이라고 표현했다. 검찰은 “5·18 광주에 보여왔던 과거를 반성”하란다. 왜 검찰을 끼워넣는지 모르겠다. 검찰은 5·18특별법에 따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기소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형선고를 끌어낸 바 있다. 이 ‘과거를 반성’해야 하나.

민주당 신동근 의원은 “독재에 맞서 싸우면서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아는 체하며 함부로 얘기하는 것을 보니 헛웃음이 나온다”고 말했다. 민주주의는 자기들만 논할 자격이 있다는 투다. 흥미로운 것은 다음 대목. “독재-민주 구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말이 나온 지 언제인데, 이건 뭐 복고도 아니고, 뭐라 해야 할지 어처구니가 없다.”

윤 전 총장은 ‘독재-민주 구도’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한 바 없으니, 그 말은 “5·18을 과거로 가두지 말고 현재, 미래의 정신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윤 전 총장의 발언에 대한 반응일 게다. 즉 민주화는 자기들 손으로 이미 완성했으니 이 시점에 5·18을 ‘미래 정신으로 격상’하는 것은 ‘복고’일 뿐이라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은 주권재민을 규정한 민주 헌정의 명백한 파괴다. 원전 조작 사건,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은 적법 절차를 무시한 초법적 통치의 실태를 보여준다. 그동안 그들은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자기들 말을 듣지 않는 검찰, 감사원, 사법부를 공격해왔다. 이는 ‘권력분립’의 민주주의 원리에 대한 도발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5·18 왜곡 처벌법, 욱일기 금지법 등 일련의 반민주적·반자유주의적 입법에 매진하고 있다. 이른바 ‘연성독재’의 현상. 민주당은 5·18을 과거에 가둬놓고 전리품으로 활용한다. 그것이 ‘그들의’ 박제된 5·18이다. 5·18은 살아 있어야 한다. 살아서 지금 등장한,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독재의 새로운 유형들과 계속 싸워야 한다.





주간동아 1290호 (p12~13)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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