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73

2021.01.15

김어준은 어쩌다 ‘구라쟁이’가 됐나

[서민의 野說]

  • 서민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교수

    bbbenji@naver.com

    입력2021-01-1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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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고(故) 이희호 여사 빈소를 방문한 김어준 씨. [동아DB]

    2019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고(故) 이희호 여사 빈소를 방문한 김어준 씨. [동아DB]

    “400억 원의 서울시 예산이 들어가는데도 방송이 편향적이다. 이 방송은 반드시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이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이하 뉴스공장)에 관해 한 말이다. 역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설 뜻을 비친 금태섭 전 의원도 뉴스공장 진행자 김어준을 강력히 비판했다. “편향성이 극렬하고 다양하게 나타나면서 너무나 큰 해악을 끼치고 있다.” 

    모든 언론은 어느 정도의 편향성을 띤다. 20대 평범한 남성과 일곱살 복싱선수가 싸운다면 누가 약자라고 봐야 할까. 나이상 일곱 살 아이의 편을 들 수도 있고, 그래도 선수와 일반인은 다르다며 20대 남성 편을 들 수도 있다. 이를 결정하는 것은 해당 언론사가 어떤 가치를 중시하느냐에 달렸다. 그리고 언론사가 모든 이슈에 일관된 가치를 적용한다면 그걸 가지고 ‘공정하지 못하다’고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어느 편을 들든 그게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곱 살 아이를 옹호하려고 ‘20대 복싱선수와 일곱 살 평범한 어린이의 싸움’으로 왜곡한다면 그 언론사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많은 이가 뉴스공장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이유는 ‘사실’을 자기 멋대로 왜곡하는 대표적인 방송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의 사실 왜곡 사례는 너무 많아서 ‘뉴스공장 백서’가 따로 나와야 할 정도다. 특히 뉴스공장은 정권 편에 서서 거짓말을 할 인물을 찾아내는 데 탁월한 실력을 보인다. 예컨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이 입시에 제출한 표창장이 문제가 될 당시 뉴스공장은 전직 매점 아저씨를 출연시켰다. 그는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2012년 여름 영어교육프로그램이 진행된 인사관에서 조 후보자의 딸을 두세 번 직접 봤다. 워낙 예쁘게 생기고 활발해 안 볼 수 없었다.”


    라디오에 익명의 증언자들 내세워 거짓 선동

    아무리 조민의 미모가 뛰어나다 해도 7년 후까지 그 기억을 간직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결정적으로 2012년 여름 표창장에 명시된 교육 프로그램은 수강생이 적어 폐강됐으니, 그의 말은 최소한 거짓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이 휴가 후 미복귀했다는 의혹이 나왔을 때는 카투사 동기를 자처하는 익명의 남성을 출연시켰다. 그는 방송에서 “추 장관 아들의 경우 무릎 십자인대 수술로 인한 병가로 기억한다. 십자인대가 이미 다친 상태로 입대했는데 그런 경우엔 오히려 입대 면제 사유”라고 말했다. 하지만 추 전 장관 쪽에서 자기 아들이 십자인대를 다친 게 아니라고 반박했으니, 그 남성은 매점 아저씨와 같은 과(科)로 봐도 될 것이다. 

    허위증언을 할 익명의 인물을 찾지 못하면 김어준 자신이 직접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거짓말에 기반한 음모론을 수시로 퍼뜨리고 있는 셈이다. 뉴스공장이 있는 한 우리 사회에 거짓말이 모자랄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김어준이 원래부터 ‘구라쟁이’였던 건 아니다. ‘딴지일보’라는 인터넷 신문을 창간했을 당시 그는 누구보다 거짓말을 혐오했다. 가장 유명한 일화로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을 저격한 사건을 들 수 있다. DJ(김대중 전 대통령)로 정권교체가 일어난 1997년 말 김 주필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DJ를 가리켜 “인기주의자(populist), 예측하기 어려운(unpredictable) 정치인’이라고 표현하고, 그의 경제정책을 ‘근거 없는(unfounded)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런 규정은 DJ와 한국 정부에게 대단히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칼럼을 썼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예측하기 어려운’은 해당 기사에 나오지도 않았고, ‘근거 없다’는 단어는 ‘그의 경제정책에 대한 우려는 근거 없다’는 문장에서 ‘우려’를 떼어낸 전형적인 왜곡이었다. 

    그 후에도 김어준은 보수언론의 왜곡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어준은 ‘팩트’를 무기로 내세웠다. 그러던 중 2005년 ‘황우석 사건’이 터졌다. ‘황우석이 만들었다는 줄기세포는 존재하지 않고, 황우석은 전 국민을 속인 사기꾼’이라는 것이 해당 사건의 전말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줄기세포가 없다는 게 드러났음에도 황우석을 옹호하는 이가 너무도 많았다. 일명 ‘황빠’로 불렸던 그들은 ‘황우석이 줄기세포를 만들진 못했다 해도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으니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수의대에 대한 의대의 질투다’ ‘미국의 음모다’ 등의 황당한 논리를 펴면서 황우석을 옹호했다. 그러니까 황빠는 2019년 서초동에서 열린 조국 수호 집회의 원조인 셈이다. 줄기세포 논쟁에서 일관되게 황우석을 지지했던 김어준은 그 광경을 보고 깊은 깨달음을 얻었던 모양이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많은 이가 그렇다고 믿으면 그게 사실이 된다’고.


    가장 ‘영향력’ 있는 거짓말의 대가

    김어준 씨가 만든 인터넷 신문 ‘딴지일보’(왼쪽)와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김어준 씨가 만든 인터넷 신문 ‘딴지일보’(왼쪽)와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2011년 4월 김어준은 오늘의 자신을 만든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를 시작했다. 팟캐스트가 공중파가 아니어서 규제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김어준은 구라에 기인한 음모론을 원 없이 펼쳤다. 물론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발생한 디도스 공격처럼 실제 사실로 드러난 일도 있다. 김어준의 말을 ‘기정사실화’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로 늘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맞는 말이 몇 개 있다고 해서 다른 허위사실까지 사실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K값’을 빌미로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한 2012년 대선이 부정선거였다는 주장,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를 고의로 침몰시켰다는 설 등 거짓으로 드러난 음모론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김어준은 단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다. 황우석이 필생의 연기로 그의 지지자들을 세뇌시킨 것처럼, 당시 김어준에게도 그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어주는 지지층이 있었다. 그러니 김어준에게 사실 여부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던 것 같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이 시나브로 다가오던 2016년 9월 김어준은 뉴스공장의 진행자가 됨으로써 음모론의 무대를 공중파로 옮겨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편을 위해 진실을 날조하는 그의 습성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4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현 정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이 됐다. 뜨고 싶은 정치인과 언론인, 그리고 각 분야 전문가들이 뉴스공장에 한번 출연하려고 난리가 아니다. 그의 방송에 출연하는 것을 ‘세례 받는다’고 표현할 정도이니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뉴스공장이 시작될 때 나오는 ‘김어준의 생각’은 수많은 지지자의 뇌를 장악하는 세뇌 수단으로 작용했다. 정권에 불리한 사건에 대해 대처 방법을 알려주는 지령이자, 정권의 작은 패배에 속상해하는 이들에게는 ‘커다란 위로’로 작용했다. 따지고 보면 황우석이 몰락한 것은 줄기세포를 만들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의 힘이 부족해서일 뿐이다. 반대로 말해 김어준이 시종일관 구라를 치면서도 퇴출되지 않는 것은 그가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어서다. 이러한 김어준에게 서울시장 야권 후보 두 명이 도전장을 내밀었다니, 기대가 된다. 4월 있을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중요한 이유다.

    서민 교수는… 제도권 밖에서 바라본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로운 입담으로 풀어낸다. 1967년생. 서울대 의대 의학과 졸업. 서울대 의학박사(기생충학).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교수. 저서로는 ‘서민 독서’ ‘서민 교수의 의학 세계사’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 ‘서민적 글쓰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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