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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말단 ‘수거책’만 잡는 검경…“‘몸통’ 수사로 뿌리 뽑아야”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보이스피싱 말단 ‘수거책’만 잡는 검경…“‘몸통’ 수사로 뿌리 뽑아야”

  • ●총책-피싱책-수거책 움직이는 보이스피싱, 작년 피해액 2배 이상 증가
    ●최근 수거책도 무죄로 풀려나, 첨단 수사 및 외국과 공조 절실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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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수법이 날로 지능화되면서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6720억 원으로, 2018년(4440억 원) 대비 51% 늘었다. 

보이스피싱은 주로 해외에서 전화로 사기범행을 하면서 이뤄지는데 소위 피싱책-전달책-수거책 등이 점조직으로 존재하고 이들을 뒤에서 총지휘하는 이른바 ‘총책’이 있다. 문제는 수사기관이 진짜 몸통인 총책은 잡지 못한 채 꼬리에 해당하는 수거책만 잡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보이스피싱이 근절되지 않는 결정적 이유다. 

수사기관은 보이스피싱 피해 신고가 들어오면 피해자와 접촉한 수거책이나 피싱책이 남긴 휴대전화 메시지 등을 단서로 수사에 착수한다. 그런데 총책까지 수사망을 확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수사 실정이다. 총책이 대부분 중국, 대만, 필리핀 등 해외에 거주하면서 외국인 국적으로 활동하는 탓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수사기관이 총책을 잡지 않고 수거책 등 하부 조직원 검거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데, 그마저도 허술한 수사 기법으로 정확한 범죄 증거를 밝혀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IP 주소만 같다고 범죄 입증 못 해

최근에는 검찰이 특정 보이스피싱 조직과 동일한 IP(Internet Protocol) 주소를 사용했다는 혐의로 수거책 A씨를 재판에 넘겼으나 재판부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8월 19일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은 수사기관, 검사 등을 사칭해 3억6000만 원가량 피해를 입힌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피싱책으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검찰은 A씨가 이 사건에 가담한 다른 조직원들이 사용한 것과 동일한 IP 주소를 썼다는 점을 근거로 A씨를 기소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IP 주소는 동일한 시기에 다수의 사람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이 속하지 않은 다른 범죄 집단이 같은 IP 주소를 사용했을 개연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설령 A씨가 해당 범죄의 가담자라 하더라도 단순한 통장 모집책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A씨에게 모든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A씨를 변론한 정헌수 법무법인 써밋 변호사는 “보이스피싱 조직은 VPN(가상사설망)을 이용해 IP 주소를 세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사관은 범죄 조직의 VPN 사용 여부에 대해서는 따로 조사하지 않았다”며 “그렇기에 재판부도 IP 주소가 같다는 점만으로는 A씨를 같은 범죄 조직의 일원이라고 확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에도 서울동부지방법원 재판부는 보이스피싱 피싱책으로 활동하다 검거된 중국인 유학생 B씨와 C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초 이들은 보이스피싱 조직으로부터 지시를 받아 사기 피해자로부터 2000만 원씩을 받아 해외로 송금한 혐의를 받았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당시 ‘빌려준 돈을 대신 받아오라’는 말만 따랐을 뿐, 보이스피싱인 줄 몰랐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에 검찰은 “B씨와 C씨가 여러 해 한국에 체류해 보이스피싱이 만연한 실정을 몰랐을 리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결국 “검찰 증거로는 피고인들에게 범죄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하기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이례적으로 기존 수사 관행과 처벌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외국에 있는 주범은 체포하지 못하면서 하부 조직원만 붙잡아 처벌하고 끝낸다면 범죄 예방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보이스피싱 범죄의 경우 중국 등에 있을 주범이 실제로 잡히는 경우가 거의 없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고, 취약계층을 겨냥하는 보이스피싱은 엄단해야 하지만, 말단 행동책만 붙잡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적시했다. 재판부 지적처럼 보이스피싱 범죄는 하부 조직원이 처벌받더라도 총책이 구인광고 등을 통해 얼마든지 수거책을 모집할 수 있기에 총책을 잡지 않고서는 범죄 근원을 뿌리 뽑을 수 없다.

알바하려다 범죄자 누명 쓸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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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이 활개를 치면서 선량한 시민이 억울하게 보이스피싱 가담자로 몰리는 경우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일거리를 잃은 사람이 많아지면서 보이스피싱 범죄에 걸려드는 사례도 늘고 있다. 

5월 D씨는 생활비 마련을 목적으로 단기 일자리를 찾던 중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해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 졸지에 금융사기범으로 몰렸다. 보이스피싱 사기꾼들이 ‘마스크 검수 알바’라고 속여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한 뒤 보이스피싱 인출책으로 이용한 것. 범죄 조직은 D씨에게 현금 전달이나 돈 세탁을 지시했다. 

D씨에 따르면 범죄 조직은 보이스피싱 피해자로부터 가로챈 돈을 받아 총책이 있는 중국으로 보내라고 D씨에게 지시했다. D씨는 시키는 대로 ‘마스크 구입비’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계좌에 입금된 600만 원을 현금입출금기에서 뽑은 뒤 업체 측에 ‘돈을 인출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후 D씨는 자신이 거래한 은행으로부터 ‘전기통신금융 사기로 인한 지급정지’ 안내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해당 은행에 문의한 결과 D씨는 자신이 받은 600만 원이 보이스피싱 피해자금으로 신고된 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문가들은 보이스피싱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사이버범죄 수사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보이스피싱 사기 수법이 날로 진화하는 만큼 그것에 맞춰 수사기관도 첨단 수사 기법을 도입하는 등 수사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윤 박사는 수사기관 간 공조도 강조했다. 그는 “보이스피싱 총책이 주로 해외에 거주하기 때문에 특정 수사기관이 단독으로 수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은 물론이고, 총책이 있는 국가와도 합세해 수사 내용을 공유화고 협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간동아 1254호 (p20~22)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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