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3

2020.08.21

국내 증시 고객예탁금 2배 증가, 하락폭에 유의할 때

조만간 과열권 진입할 가능성 엿보여…주식 투자, 버는 것만큼 지키는 것도 중요

  •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

    seok.won.choi@sks.co.kr

    입력2020-08-15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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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증시가 한여름 날씨만큼 뜨겁다. 7월 들어 불과 한 달 반 만에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 둘 다 15% 이상 올랐다. 8월 들어 코스피 상승폭은 더욱 두드러졌다. 불과 2주 만에 8% 넘게 올랐다. 주요국 증시 중 가장 빠른 상승세다. 

    글로벌 경제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신음하고 있고, 대부분 국가에서 올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시가 급등하자 한쪽에서는 거품 논쟁도 벌어진다. 예상되는 기업 실적에 비해 주가가 너무 높은 수준까지 올라갔다는 주장과, 세상이 달라졌기에 주가가 더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첨예하게 맞부딪히는 상황이다.

    K-방역 자신감과 부동산 규제로 개인 주식투자 급증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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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개월 전만 해도 상황은 180도 달랐다. 코로나19가 중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자 증시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3월 하순 주요국 증시 대부분은 지난해 말 대비 10~30% 떨어졌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코스피 기준 33% 하락해, 한국은 크게 떨어진 국가 중 하나였다. 글로벌 팬데믹으로 교역과 이동이 멈추면서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이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후 글로벌 증시가 안정되기 시작하자 우리 증시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였다. 현재 국내 주가는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과 반도체 경기의 슈퍼 호황을 바탕으로 크게 올랐던 2018년 상반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내 증시가 회복한 가장 큰 이유는 각국의 공격적인 통화·재정정책과 이에 따른 글로벌 증시의 안정 때문이다. 전염병 창궐로 올 상반기 글로벌 경제가 1930년대 대공황에 필적하는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자 주요국 정부는 정책금리를 극단적으로 낮췄고, 수차례에 걸쳐 경기 부양책을 마련했다. 이로 인해 풀린 돈이 증시로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역시 정책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0.5%로 낮췄고, 이미 세 차례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결국 국내 증시는 속도가 더 빠르긴 하지만, 공격적 정부 정책을 등에 업은 글로벌 증시의 상승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19로 경제, 사회, 문화의 변화가 산업 구조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도 증시 상승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 나타난 이른바 기술주 및 성장주의 가격 급등은 바이러스가 출몰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의 소비 행태와 기업들의 생산 방식이 빠르게 바뀌리란 기대를 반영한 결과다. 비대면, 즉 언택트(Untact)는 이제 영구적인 트렌드가 됐다. 언택트를 가능하게 하는 각종 4차 산업혁명 기술은 ‘신기하지만 굳이 필요는 없는’ 것에서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것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애플의 시가총액은 국내 증시 전체 시가총액의 1.5배, 아마존은 1.3배까지 치솟았다. 전기차를 만드는 테슬라는 자율주행차라는 무기를 바탕으로 주가가 급등했다. 이미 글로벌 ‘원톱’으로 자리 잡은 이들 기업이 변화한 환경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큰 매출과 이익을 올릴 것이란 기대를 바탕으로 한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언택트 소비가 급격하게 늘면서 온라인 유통을 영위하는 기업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게임업체 주가도 크게 올랐다. 배터리 업체나 바이오 등 변화된 세상에서 주도권을 쥘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에 포함된 기업 주가도 큰 폭으로 올랐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배터리 업체인 LG화학의 시가총액이 코스피 3, 4위로 치고 올라온 것은 미국에서 나타나는 성장주 가격 급등 현상의 ‘코리안 버전’이라고 하겠다.

    글로벌 경제 회복의 한계 들여다봐야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특히 국내 증시가 주요국보다 더 많이, 더 빨리 오르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우선 ‘K-방역’의 힘이다. 국내 방역 시스템이 다른 국가보다 우수한 성과를 나타낸 점이 국내 투자자들의 자신감으로 이어졌다고 판단된다. 실제 주요 선진국이 일정 기간 경제활동을 봉쇄한 것과 달리 한국은 전면적인 봉쇄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이 사태를 극복해나가고 있다. 비록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도 마이너스로 예상되지만, OECD 국가 중 가장 선전할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작은 타격은 정부 재정 건전성 유지와 경기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경제가 더 유리한 위치에 있음을 시사한다. 

    다음으로 급격한 자금 이동을 들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내에서 개인투자자의 직접 주식투자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이 자금은 지금도 여전히 국내 증시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실 개인투자자가 주식시장에 공격적으로 뛰어든 것이 이번만은 아니다. 20년 전 IT 버블 당시에도 유사한 현상이 있었다. 그 외의 경우에는 주로 자산운용사 등을 통한 간접투자가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는데, 이번에는 개인들이 다시 무서운 속도로 국내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올 들어 현재까지 개인투자자들은 47조 원을 국내 주식 매수에 쏟아 부었고, 매수를 위한 대기 자금인 고객예탁금도 지난 연말 25조 원에서 8월 현재 50조 원대로 늘어났다. 매수 및 대기 자금을 합치면 불과 8개월 만에 70조 원 이상이 주식시장으로 유입된 것이다. 

    개인이 대거 주식시장에 직접 참여하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다. 우선 저금리로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19 충격에 따른 증시 급락이 투자 심리를 자극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정보가 풍부해졌다. 전문적인 기관투자자와의 정보 또는 분석 비대칭성이 줄면서 개인 투자자의 자신감이 높아졌고, 이에 자산운용사에 돈을 맡기는 대신 직접 주식을 사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도 주식시장으로의 자금 이동의 주요 이유다. 과거 국내에서는 금리가 낮아져도 주가가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부동산 시장이 과열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세금 증대를 비롯한 정부의 각종 규제로 부동산 투자의 불편함이 커지고, 기대수익률이 낮아지자 주식시장으로의 자금 이동을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정부 역시 주식 투자를 지원하고 있다. 공매도 금지와 주식 투자에 유리한 양도소득세 개편은 주식 투자의 상대적 매력도를 높여줬다. 

    다만 최근 주가 급등으로 몇 가지 위험이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점은 우려된다. 무엇보다 나쁜 글로벌 경제 상황이 오히려 공격적 정책 기대로 이어져 증시 자금 유입을 부추기는 역설적 상황이 걱정된다. 전문적인 예측 기관들은 글로벌 경제가 올해 큰 폭으로 마이너스 성장한 뒤 내년에 회복하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내년 글로벌 GDP가 2019년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한다. 물론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변수로 작용하겠지만, 설사 개발에 성공한다고 해도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에서 소비와 투자가 과거 수준으로 되돌아가긴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미중 갈등과 보호주의도 위험 요인이다. 시장에서는 이 이슈를 오래되고 이미 노출된 재료로 치부하지만, 교역 위축과 가치 사슬(Value Chain) 변화는 글로벌 경제, 특히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큰 위험이다. 여기에 더해 현재 주가 상승이 상당 부분 미국 성장주를 주축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 11월에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 관련 불확실성도 위험 요인으로 봐야 한다. 최근 지지율이 낮아지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대신 민주당의 바이든 후보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고 나아가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는 ‘클린 스윕’ 가능성도 높아졌는데, 이 경우 미 증시는 민주당의 법인세 인상, 반독점 이슈 제기 등을 긴장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다.

    상승장에는 모든 악재가 묻히는 법

    8월 5일 코스피지수가 1년 10개월 만에 2300선을 돌파해 2311.86을 기록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8월 5일 코스피지수가 1년 10개월 만에 2300선을 돌파해 2311.86을 기록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국내 증시의 가격 부담도 우려된다. IT 버블 당시 코스닥 시장과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중국 증시에 개인투자자금이 몰리면서 나타났던 과열은 버블 붕괴 후 장기간에 걸친 증시 침체로 이어졌다. 증시가 오를 땐 모든 악재가 묻히지만, 하락할 땐 반대 현상이 나타나는 법이다. 

    물론 현재 국내 주가가 과도한 거품이라고 평가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단기에 많이, 빨리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기업의 장부 가치를 기준으로 한 증시 전체 가격은 역사적으로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이다. 다만 지금도 여전히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과열권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 즉, 지금부터는 오르면 오를수록 하락 시기에 하락폭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증시에서는 돈을 버는 것만큼이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도 반드시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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